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Jun 10. 2023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를 아시나요

이 길고 희한한 단어는 어떤 생물의 이름이다. 바로 다음 사진에 있는 녀석이다.      



화려한 무늬의 이국적으로 생긴 물고기다. 그런데 갑자기 물고기 얘기는 왜 하냐고? 딸아이가 한글을 떼는 데 이 친구(?)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부터 딸아이는 <바다 탐험대 옥토넛>이라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있는데, 마침 옥토넛 캐릭터들을 활용한 한글 배우기 동요가 있다.      


동요는 아주 명랑하고 간결한 멜로디에, 기역, 니은, 디귿 등 한글 자음으로 시작하는 바다 생물이 등장하여 쉽고 재미있게 한글을 뗄 수 있게 해준다.     


기역은 고고고 고래상어, 니은은 노노노 농게, 디귿은 도도도 돌고래, 하는 식이다. 이렇게 주욱 피읖까지 가다가 히읗 차례에 이르러서는 돌연 귀여운 엄포를 놓는다. (영상의 1분 18초부터)



‘히읗은 어려우니까 잘 들어야 해!’     

이제 물고기 이름이 나올 차례다.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하하, 어렵다고 했지? 다시 한번 잘 따라 해봐~’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길고 독특한 이름이 멜로디와 착착 달라붙어서 아주 신난다. 딸아이의 성화에 하도 많이 듣다 보니 나와 남편까지 흥얼흥얼거린다. 거의 의식의 흐름대로 노래가 나온다.      


매트에 누워있다가도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쇼파에 앉아 멍 때릴 때도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어린이집 등원 길에도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무슨 주문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생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네임드였다. 세계에서 제일 이름이 긴 물고기일 뿐 아니라, 하와이에서 지정한 공식 물고기라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 따름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001514)     


하와이의 대표 물고기가 이역만리 아시아의 아이들이 한글을 익히는 데 쏠쏠한 도움을 준다니, 참 글로벌한 일이다. 태평양의 깊은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는 이 사실을 알까?...   

  

말이 나온 김에 옥토넛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동물 캐릭터들이 탐험대를 결성해 위기에 빠진 바다 생물을 구해주는 내용으로, 꽤 재미있고 유익한 만화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     


주요 캐릭터들이 아주 귀여울 뿐 아니라 대원으로서 맡은 지위와 역할도 상당히 사실적이고 그럴듯하다.  

   

바나클(북극곰) - 탐험대장

콰지(고양이) - 부관

대쉬(개) - 사진사

셸링턴(해달) - 해양생물학자

페이소(펭귄) - 의사

잉클링(문어) - 교수님(해양학자)

트윅(토끼) - 엔지니어     


왼쪽에서 네 번째인 셸링턴은 해달이라지만 내 눈엔 아무리 봐도 원숭이다..


이렇게 살뜰하게 구성된 대원들에 더해 가상의 생물인 ‘베지멀’도 있는데, 베지터블과 애니멀의 합성어인 이름처럼 반은 채소, 반은 동물인 존재다.     



꼭 귀여운 무처럼 생긴 이 아이는 요리사로, 물고기과자를 만들어 뿅뿅뿅 쏘면 위험한 바다 생물이 환장해서 달려든다. 그 사이에 다른 대원들이 곤경에 처한 생물을 구하는 그런 레퍼토리다.      


이 베지멀들은 평소엔 말을 못 하는 것 같다가도 필요할 땐 굉장히 하이톤으로 뭐라뭐라 말을 한다. 그리고 마음이 여려서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그 자리에서 픽 쓰러져 기절해버리는데, 그게 은근히 웃기고 귀엽다. (물론 금방 일어난다)     


한 달 전의 어린이날은 온통 옥토넛 천지로 끝났다. 단종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탐험선도 당근마켓에서 구해다 줬을 정도다. 그 후로 아이는 매일매일 옥토넛 놀이를 하면서 만화도 똑같은 걸 맨날 본다. 질리지도 않는가 보다. 아무래도 엄마를 닮아 덕후의 기질이 있는 듯하다.      


매번 자기가 바나클 대장이고 엄마나 아빠는 콰지나 페이소를 시키는데 만화에 나온 거랑 똑같이 대사를 쳐야 해서 힘들다. 여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장면과 대사를 잊어먹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지없이 딸아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티비 볼 때만이라도 엄마 아빠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AI의 시대라는데 역할놀이 해주는 로봇이 출시되면 정말 대박일 것 같다. AI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와 AI 옥토대원이라니, 상상만 해도 반갑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식 자랑은 돈 내고 하라고 했건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