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염(미상~기원전 209년)은 진나라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수로서 동생 몽의와 함께 진시황제에게 충신으로 크게 총애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몽염
장수 집안출신 몽염
몽염의 조상은 원래 제나라 (현재 산동성) 출신이었습니다. 몽염의 할아버지인 몽오가 진나라의 왕을 섬기고 관직을 받았으며, 몽오 자신도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아버지 몽무도 초나라의 왕을 사로 잡기도 하였습니다. 몽염은 이전에 초나라를 공격해서 큰 공을 세웠고, 초나라의 유명한 장수 항연(항우의 할아버지)을 죽였습니다.
진시황제는 몽염에 대한 신뢰가 매우 컸으므로, 30만 대군을 끌고 변방을 방어하며, 만리장성을 쌓는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진시황제는 몽염과 동생 몽의를 몹시 존중하고 신뢰했습니다. 궁궐 내의 일은 몽의에게, 궁궐 밖의 일은 몽염에게 맡겼으며 둘 다 충신으로 평이 자자 했습니다.
사구정변과 형제의 죽음
전편에서 본 바와 같이 진시황제가 순회도중 사구에서 병으로 급사하자, 수행하던 환관 조고, 왕자 호해 그리고 승상 이사가 음모하여, 황제의 죽음을 비밀에 부칩니다. 맏아들 부소는 몽염과 함께 변방을 지키고 있을 때, 그들은 가짜 황제 조서를 만들어 부소에게 자결을 명하고 몽염에게도 그렇게 하였지만, 몽염이 이를 의심하고 자결하지 않자 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일전에 진시황제는 조고가 능력이 있다고 여겨 그를 등용하였고, 조고는 호해를 모셨습니다. 이후에 조고가 큰 죄를 지었을 때, 진시황제는 몽의에게 조고를 처리토록 하였고, 몽의는 법대로 처리하여 사형죄에 해당한다고 여겨 환관명부에서 조고를 삭제하여, 관직을 뺏았으나, 진시황제는 조고의 능력을 아껴 복권시켜준 바가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조고는 몽의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진시황제의 죽음 후 수도에 돌아와 호해를 태자로 세움으로써 조고는 권력을 얻었으나, 몽염과 몽의 형제가 다시 힘을 얻게 되면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웠습니다. 조고는 호해를 찾아가, 몽의는 예전부터 호해가 태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거짓으로 고하자, 호해는 몽의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호해는 몽의를 죽였습니다.
몽의를 죽인 호해는 바로 몽염이 갇혀있는 곳에 사자를 보내 몽염을 죽이도록 합니다. 몽염은 몽의와 같이 억울함과, 자신의 충성됨을 황제에게 전할 것을 사자에게 요구하였으나, 이세황제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사자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고 단언을 하자, 그 자리에서 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몽염은 죽음에 이르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죄는 죽어 마땅하다. 만리장성을 쌓아 지맥을 끊어 놓았으니, 이 죄로 인해 죽을 만하다고 합니다. 다분히 풍수지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다르게 얘기합니다. 사마천이 만리장성을 보니, 산악을 깎고, 계곡을 메워 길을 만들고 하는 일 들이 백성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진나라가 막 중국을 통일하였을 때, 곳곳의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백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곤궁한 백성들을 돌봐야 할 텐데, 진시황제를 도와 만리장성 등과 같은 힘든 고역을 가중하였으니, 죽음의 형벌을 받은 것도 마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몽염의 죽음이 지맥을 끊은 탓이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이천 년 전 강력한 왕권국가 시대에서 조차 백성의 고충을 느끼고 괴로워한 사마천의 인본주의적 사고가 깊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폭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에서 일어난 반란군으로 인해 진나라는 순식간에 멸망합니다.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 그들을 위로하기보다 자신의 탐욕과 이익을 위해 백성을 탄압하고 강제 노역에 내몰았던 왕조의 너무나도 빠른 시간의 몰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