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풍당 편] 사기열전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풍당(생몰미상)은 한나라 문제(한나라 5대 황제, 기원전 202년~기원전 157년) 시대의 인물입니다. 그는 효행으로 명성을 얻어, 정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풍당이 일하는 곳을 지나다가 풍당이 나이에 비해 낮은 직급인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풍당이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더니, 황제는 그가 과거 조나라 지역 출신인 것을 알게 되어, 조나라에서 유명한 이제 장군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나, 풍당은 조나라 장수로서 염파와 이목 장군이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목과 자신의 조부가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이목 장군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황제는 기뻐하며, 염파나 이목 장군과 같은 인물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당시는 흉노로 인해서 한나라가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풍당은 염파나 이목 같은 장수가 있더라도 황제께서는 중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을 했습니다. 이에 황제가 큰 모욕을 느끼며 대로해서 궁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흉노가 또다시 한나라를 침입하여 소란을 일으키자, 항상 흉노의 문제로 걱정을 하던 황제는 다시 풍당을 찾아 물었습니다. 어째서 염파와 이목 같은 장수를 자신이 쓸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한 알고 싶었습니다.
이에 대해 풍당은 예전에는 장수들이 출정할 때, 왕이 몸소 나와 전송하며, 궁궐 내의 일은 자신이 할 테니, 궁궐 밖의 일(閫外, 곤외)은 장수가 맡아달라고 한 것을 언급했습니다. 이목은 장수로서 변방에서 군대를 통솔할 때, 병사들을 상을 주는 것을 자신이 결정하고, 이목의 결정에 왕은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목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고, 조나라 군대는 날로 강해져서, 흉노뿐 아니라, 강대한 진나라의 침입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풍당이 왜 황제가 이목과 같은 장수를 활용할 수 없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당시 운중군 태수 위상은 이목과 같이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신의 재산으로 연회를 베풀어, 군대의 사기를 높였고 단합된 조직의 힘으로 인해 흉노가 운중군에 침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흉노가 한 번 침입했을 때, 위상은 전투에서 많은 흉노 병사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참전한 병사들은 농부 출신 들로서, 군대의 규칙 및 규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이 전투에서 크게 이긴 뒤, 전과를 막부에 보고했는데, 법관들은 한 마디의 말이라도 실제 상황과 부합하지 않으면 법과 규칙으로 제재를 가했습니다. 상에는 인색하고 형벌에는 엄중한 구조였습니다. 이에 따라 조금이라도 전과보고가 틀린 병사들은 제재를 당했고, 운중군 태수조차 적 병사의 수급을 보고 시, 여섯 명을 잘 못 보고하여, 지위를 잃고, 노역형에 처해졌습니다.
풍당은 운중군의 상황을 언급하며, 황제께서는 염파나 이목 같은 장수가 있더라도 중용할 수 없다고, 황제에게 직언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운중군 태수를 복권하고, 풍당을 나라의 병사를 관장하는 중요한 자리로 옮겼습니다.
사마천은 풍당의 장수 임용에 대한 담론을 음미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풍당은 황제를 위해 무례함을 무릅쓰고, 충언을 하였고, 황제는 이를 큰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바로 ‘문경치지’로 유명한 중국 역사에 최고의 명군 중 한 사람인 효문황제였습니다. 나중에 이 황제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일을 맡기지 말고, 맡겼으면 믿으라는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