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에 대한 이야기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 하몽에 와인을 곁들여 마시면서 평소 좋아하던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한 편을 읽었다.
너무 많은 책을 읽었는지 영화를 봤는지. 나름의 반전이 있는 소설이었는데 초반부에 다 예상한 내용 그대로 소설이 마무리되었다.
치매에 관한 내용. 스토리는 진부했고 치매에 관한 서술은 흥미로웠느나 이미 안소니 홉킨스의 ‘더 파더’라는 영화를 본 후 라서 ‘치매에 걸린 노인을 수발하는 가족의 힘듦이 아닌, 당사자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을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는 아직 살아있는데 한니발의 아역을 연기한 가스파르 울리엘은 몇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연기도 잘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가진 배우라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당신은 꽤 오랜시간 동안 이 모습 그대로 남아있겠지요.
이십대 초반에는 외모를 치장하고 물질적인 것들을 갖기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십대 중반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이제는 겉모습보다 내면이 더 빨리 나이들어 간다고 느낀다. 이러다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육신은 남아있고 영혼은 사라지지 않을까. 처음보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으니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내면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느순간 현명해지고 성숙해지는 것보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큰 숙제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선택이 이상적인 선택인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나 자신에게 대화를 요청한다. 이상과 이성, 모두 가져가고 싶다.
결론은 더 재밌는 책을 읽고 싶다. 이번 책도 제법 흥미로웠지만 더 좋은 책을 갈망해. 다자이 오사무나 무리카미 하루키, 헤르만 헤세, 서머싯 몸, 알베르 카뮈와 모파상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 떨림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줄 책이 없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 보다 부러운 사람은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첫 경험이 가장 강렬하다. 그래서 두 번째 경험하려고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 실망한다. 행복에도 내성이 생기는 가혹한 삶.
평범하고 상대적인 ‘악’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엄마가 흉 잡힐 얘기 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고부 갈등과 직장내 갈등과 같은 흔한 클리셰는 써도 되지 않을까? 흉 잡으려면 모든 것들을 흉 잡을 수 있는 세상에 흉 잡힐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면 가식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인가. 난 부족한 것 투성이라 무슨 얘기만 하면 다 흉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