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맞는 것도 좋아하고.
금요일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길래 비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직도 비는 오지 않는다.
흐린 날 물을 머금은 듯한 무거운 공기와 바람이 나를 감싸는 듯한 기분이 따듯하다.
비 오는 날은 한바탕 비를 맞고 돌아와서 샤워를 하면, ‘마음의 돌’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마음의 돌’은 내가 6살 쯤 정의내린 답답함이다.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할 때, 마음에 돌이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는 200ml의 우유를 벌컥 벌컥 마시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우유를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음의 돌은, 가슴이 시리고 무겁고 초조하고 우울하고 외롭고 불안한 무언가의 집합체가 아니였을지.
오늘도 비는 오지 않았다.
엄마는 책을 참 많이 읽으셨고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노안이 와서 책읽기가 불편해지시니, 오디오 북을 항상 듣고 계신다.
그 이유 때문이지, 성격이 좋지는 않으시지만 가끔 뛰어난 혜안을 보여주시고는 했다.
그 중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고 사는 어머니의 말 한 마디는,
“네가 덜 외로워서 그래.” 라는 말이다.
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다. 그냥 외로운 사람이다.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외롭다.
외로운데 사람은 만나기 싫다.
그래서, 엄마한테 이렇게 살아도 될지 물어봤다.
- 엄마 나 이렇게 살아도 될까? 친구도 얼마없고, 누가 만나자는 연락도 별로 반갑지 않고, 소모적이란 생각이 많이 들어. 그냥 혼자 있는게 좋아.
엄마는 산책 중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해 주셨다.
- 네가 덜 외로워서 그래. 외로웠으면 먼저 약속 잡아서 사람도 만나고, 누가 만나자는 연락도 반가워했겠지. 넌 별로 외로운 사람이 아닌거야.
모든 것이 그렇듯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결코 작지 않은 깨달음이 왔다.
난 외로운 사람인데 타인을 만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핍 때문에 외로운 사람이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담지 못한 언어적 의미에만 집중하면 타인을 만나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해답은 타인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결핍을 채워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이런 내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음에도 가끔 바보같은 판단을 한다.
누군가가 나의 외로움을 사라지게 해줄 수 있다는 착각.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인데.
잘못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무엇보다 지치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찾아온다.
안하면 0인데, 잘못하면 적어도 -50이다. 흘려보낸 시간 즉, 기회 비용, 시간으로 환산 가능한 돈, 내가 쓴 마음과 노력 등등.
바로잡기 위해서는 두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는 주식을 회복시키는 것과 같달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주 말을 건다. 실수를 하지 않기위해.
아니야 너 또 후회할 걸?
넌 다른 사람과 달라, 그 사람이 입은 옷이 내 옷이 아니라고.
제발,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 라고.
세상에 항상 현명하고 바른 판단만 하고, 자기 절제를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며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