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헤어질 결심 (2022)
마침내.
불륜이 영화의 소재라서 불쾌하면 안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사실 많은 불륜 영화는 불륜을 권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화양연화’, ‘라라랜드’, ‘비포시리즈’ 모두 웰메이드 영화지만 불륜이 소재이다. 그러니까 불륜이라는 소재가 함의하는 바는 불륜을 합리화하거나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진정으로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다 본후 포스터를 보니
산, 안개, 바다, 모든 것을 올곧게 보는 탕웨이와 한참을 헤메는 박해일.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느낀 바가 어쩌면 감독의 의도와 일치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 헤어질 결심
누군가에게는 헤어질 결심이 비겁한 도망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헤어질 결심이 사랑에 대한 고백이자 살기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극중 박해일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형사이다. 그런데 탕웨이와 사랑에 빠져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살인의 진범인 탕웨이에게 증거를 없애라는 조언을 하게 된다.
그 조언을 하는 동시에 박해일은 헤어질 결심을 하게되고 탕웨이는 박해일을 사랑하게 된다.
박해일은 자신의 자부심, 자존감,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택했다. 탕웨이는 그런 사람에게 들은 ‘증거를 없애라는’ 말을 절절한 사랑의 고백으로 해석했다.
현실 사회에서 사랑하는데 이별을 고하는 자는
비겁한 도망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사랑과 사연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박찬욱 감독이 보여준 새로운 사랑의 형태에 잔잔한 울림을 느낀다.
2. 자살의 방법
박해일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방 한 구석의 벽에 붙여놓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탕웨이는 박해일의 미제 사건이 되어 그에게 기억되기를 시도한다.
그녀는 밀물이 시작할 때 쯤 바다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웅덩이를 판 뒤 그 속에 들어가서 물이 차기를 기다린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자신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미제 사건이 되고 싶은 바람일 것이며
둘째는 혹여나 시체가 발견되더라도 극중에서 ‘피냄새’를 싫어하던 박해일을 배려한 자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자식도 없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경우 그 사람이 불행해질 것이 분명하니 사랑하는 사람도 가질 수 없는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다.
불꽃같은 사람인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3. 인공 눈물의 의미
안개 때문인지, 수면 부족으로 안구 건조증을 갖고 있는 건지, 박해일은 집중하고자 할 때 또는 시야가 흐려질 때 인공 눈물을 눈에 넣는다.
그가 인공 눈물을 넣는 순간 카메라 속의 시점은 박해일의 시야로 전환되어 흐릿했던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는 최연소 경감이고, 사건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지만 첫 사건인 탕웨이가 저지른 살인 사건의 수사를 망치고 두 번째로 등장하는 사건인 살인 사건은 탕웨이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사건 역시 탕웨이가 진범이 아니지만 확증 편향을 갖고 탕웨이를 의심한다.
그는 모든 것을 바로 보려고 노력하지만 탕웨이를 만난 뒤 사실 관계를 바로 보지 못한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불면증 때문일까.
4. 불면증
확실한 사실은
그는 잠이 오지 않아 잠복 근무를 하기보다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자라즙, 도라지, 돌팔이 의사로 부터 얻는
야매 치료법은 불면증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을 괴롭히는
불면증의 원인을 없애는 것이 먼저 아닐까.
나도, 많은 사람들도 사실을 올곧게 보기를 힘들어 한다.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합리화하기도 하고 인과과관계가 역전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점들을 꼬집는 영화가 아니었나.
스크린에 올라가는 글자들을 보며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오랜만에 본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금요일 또는 주말 심야 시간대에 텀블러에 가져 간 와인을 홀짝 거리며 혼자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제 주관적인 감상평이자 견해이며, 감독님이 의도했던 바와 다른 해석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