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요.
기존에 가입되어 있던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려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원정보가 삭제되어 다시 회원가입을 했다. 요즘 어느 사이트에서나 제공되는 간편 로그인 서비스도 안돼서 아이디, 생년월일, 이메일 등을 일일이 입력해야 했는데, 1996년 2월 23일 찾기위해 한참이나 스크롤을 내렸다. 문득 어릴적 기억 언젠가,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소은아 신문을 보면 마지막 장에 띠별 운세가 나오잖아, 엄마가 태어난 연도가 점점 위로 올라가. 이러다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그때는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법 뼈가 있는 말이었다.
연나이로 내일 모레 서른, 잊고 살다가 가끔씩 떠오른다. 나는 서른쯤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더라. 무얼 이루고 싶었더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추상적인 목표도 있었고 ‘독립을 하고 싶다.’, ‘얼마 정도를 모으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있었다.
최근에 그중 가장 큰 사건인 독립을 해냈는데, 주변에서 (본가와 회사가 가까운데) 왜 독립을 했냐고 너무 많이 물어봐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요즘 너무 바쁘기도 하고 집이랑 친해지는 것이 1순위라서 잠시 잊고 살았지만, 나에게 독립은 목표가 아니라 중간 과정이었다.
1. 먼저 하루하루 계획한 것들을 모두 해내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라도 아껴보고 싶었다.
2. 자녀와 나이 차이가 적은 부모가 되고 싶기도 하고 아버지의 정년 퇴직 시점(축의금 회수)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신혼 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가끔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반주도 하기 위해 신혼 기간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 개인적인 로망이 결합되어 서른쯤엔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럼 28살은 혼자 살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3. 혼자 살면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과 루틴 등을 확보하고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고 싶었다.
결론은 자취하기 정말 잘했다. 첫 한 달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이 정도는 이겨낼만 했다.
첫 1-2주, 가장 힘들었던건 숨이 막힐 것 같은 새벽의 정적과 외로움이었다.
처지를 비관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사실 진짜 1도 없다) 혼자 벽에 기대서 많이 울었다.
같이 사는 가족이 없으니 소리내어 울어보기도 하고, 그러다 지쳐서 눈물이 안나기도 했다.
그런데 3주쯤 되니 아침이 되면 모든게 괜찮아진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히려 활기를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매 순간이 기적같이 소중해졌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 수 있었던 양조위와 장만옥의 시간들을 ‘화양연화’라고 표현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처럼
낯선 곳에서 무언가 시작하면서 매순간 무너지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려하지 않고 일어나는 지금이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윤정부덕분에 서른까지 1년 벌었다. 차근차근 목표했던 것들을 잘 이루어 나갈 것-!
먼저 s언니한테 추천받아서 요새 가장 자주 듣고, 지금도 듣고 있는 라이브 영상
나한테는 아무도 없거든.
일요일 오전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 걱정없이 여유롭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소소하지 않은 행복이라는 것!
독립하고 나니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고 생각할 시간도 많아졌다.
독립 2주차에 겪었던 사건 중 하나가 전자레인지를 분실한 것이다.
일도 너무 바쁘고 체력적으로도 너무 지쳤을 때, 자다가 전자레인지 기름 냄새가 너무 열받아서 현관문 밖에 전자레인지를 내놨는데
누가 가져갔다.
뭐 당근으로 나눔하거나 팔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작별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자취 첫 달에 돈이 많이 깨져서 걱정 중인데, 너무 지팔지꼰이라 할 말도 없다.
뭐 덕분에 쿠팡에서 귀여운 전자레인지를 주문했고 집 인테리어랑 어울려서 만족!
아. 이 사건을 법전공자한테 말하면
점유이탈물 횡령인지, 절도인지, 절도의 고의는 있었는지 따져보는게 너무 웃기다. 나도 따져보긴 했지만,
3주차는 집들이도 많이 했고, 어쩌다보니 집에서 지인과 술을 먹기도 했다.
덕분에 매일 혈중 알콜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었었고, 초인적인 힘으로 일정을 다 소화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는 대화는 삶의 새로운 자극이 된다.
선물도 많이 받고 다들 예쁜 마음이 담긴 걱정도 많이 해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 뿐 -!
다음에 또 놀러오면 더 맛있는 음식 많이 해주겠다며 엄청 플러팅했다. 핳
다들 내가 설거지 싫어하는거 알고… 청소도 정리도 다 해주고 가서 너무 고마웠지만, 다음엔 손님답게 편하게 머물다 가주길 바라… 무능한 호스트가 된 기분이란 말입니다…
가장 처음 집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손님이 되었던 우리 유신이.
여름 밤에 취한채로 집앞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가는데 습한 공기조차 기분이 좋았다.
여름 밤 + 유신 + 맥주 = 환상
취해서 고양이랑 교감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취객 상대하느라 힘들었을 냥이 미안-!
유시니가 사준 머신으로 처음 추출한 커피는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혼자 호들갑떨다가 엎어버렸다. 키키
곰발바닥 같은 러그의 장점 : 무엇을 흘려도 티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지 않은 날에는 클린 식단!
닭가슴살 + 양배추 + 두부 + 계란 넣고 볶다가 굴소스랑 간장, 소금으로 간하면 짭조름하구 맛있다.
그릭 요거트는 하두 많이 먹어서 그냥 쿠팡으로 1kg 시켰는데, 이것도 금방 다 먹을 것 같다.
방울토마토, 고구마, 삶은 계란은 간식으로 주워먹기 편해서 항상 구비해두려하는데 쉽지 않다.
그리고 출근 전에 홈트한 뒤, 샤워하고 나가면 기부니가 좋거든요-! 즐거운 루틴이 생겼다.
컨트리보이 푸가스 너무 맛있다.
카카오피칸도 너무 맛있다.
치아바타도 맛있다.
한번은 컨트리보이에서 빵 사들고 나오자마다 봉투열어서 왕 먹는데,
양산쓰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맛있어요?”라고 물어보셨다. (민망)
매일 생각나서 짜증난다.
지금도 사러가고 싶은데 오후 약속때문에 타임어택 걸려서 참는 중
떡볶이를 별로 안좋아해서, 여고 다닐때도 떡볶이집 자주 안갔었는데
호르몬이 미쳐가지고 친해진 n이랑 이수역에 있는 애플 하우스를 갔다.
요새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중…
n은 참 다정한 사람이다.
혼자 사는 내가 미숙해보이는지 이것 저것 챙겨주려고 한다. 그 마음이 조금은 부담되기도 하지만, 다정한 사람이 갖는 힘은 대단해.
고맙고 위로가 된다.
주말에는 워터밤도 다녀왔다.
입을 옷 없어서 집에서 부엌가위로 청바지 잘라놓고서 맘에 안든다고 던져버렸다.
내 인생 재밌게 해주는 t언니, s언니 진짜 너무 고마워-! 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나랑 가장 급속도로 친해진 c
만나면 자꾸 웃는다.
처음에는 하는 말이 너무 재밌어서 웃었는데
언젠가부터 앞니가 귀엽게 느껴저서 얼굴만 봐도 웃는다.
나한테 맨날 깨작거린다고 하면서, 만나면 샐러드나 커피만 먹는다.
오히려 좋지만.
팀 점심 회식때 먹었던 오마카세.
비오는 날이라 그런지 고등어는 비렸고 샤리 간도 안맞고 구성도 좋지 않았다.
좋은 재료였지만 조화가 아쉬웠다. 그래도 가성비를 따지면 부족하지는 않았고.
아니면 그냥 내가 기분이 안좋았었나,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다 역시.
요새 회사 분위기도 엉망이고 팀 분위기도 너무 지친다.
일은 좋은데 사람이 너무 힘들다. 아!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제야 말하지만 100만 원 정도가 부족해서 2달 정도 투잡을 뛰었었다.
적금을 깨거나 주식을 팔거나 마통을 뚫거나 부모님한테 아쉬운 말하기는 싫으니 방법이 없었다.
다들 그만두라고 또는 돈 빌려준다고 할까봐 비밀로 했었는데,
그만둔 후에 말해도 아쉬운 말을 많이 하길래 말 안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주는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단순 노동만 하니 스트레스가 풀렸다.
커피 향도, 마들렌 향도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런데 점점 본업과 집안 일이 밀리기 시작하니 버티기 힘들기도 하고, 이제는 집중해서 해야할 일도 있어서 더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서 오히려 회사에서 사람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가끔 마들렌 사러 가야지!
그리고 카페 알바 끝나자마자 네일 받으러 총총
네일을 주기적으로 받지는 않지만, 못하게 하니까 괜히 하고 싶었었다.
그럼 안녕, 7월도 별탈없이 지나가길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