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당했다.
강남역에서 약속 장소로 가다가 한 아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 저기요, 제가 지금 밤새 지갑이랑 핸드폰을 다 잃어버려서요, 정말 죄송하지만 돈 좀 빌려주시겠어요? 부산 갈 차비만 좀 빌려주세요.
- 제가 아가씨만한 딸도 있고 정말 급해서 그래요. 부산 도착하자마자 연락드리고 송금할게요. 도착하면 6시쯤 될거에요. 아니면 제가 시계라도 담보로 맡길게요.
… 아주 의심을 안했던건 아니다. 다만, 이사람이 정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계는 한눈에 봐도 조악한 레플리카 같아서 받지 않았다.
- 얼마나 빌려드리면 될까요?
- 부산 가는 차비가 5만 3천 원이에요, 어휴 정말 감사드려요.
atm기에서 5만 원을 인출하고 지갑에 있던 5천 원을 꺼내서 빌려준 뒤, 종이에 내 이름과 계좌 번호를 적어주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강남역에서 수서역까지 가는 지하철 요금은 넉넉하실지 걱정했다. 서울 길이 어려우실텐데 택시라도 타실 수 있도록 좀 더 넉넉하게 돈을 빌려드리면 좀 더 편하게 도착하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날도, 다음 날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물론 돈도 갚지 않았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돈이 아까워서보다는 선한 마음이 배신당해서 울적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렇게 쉽게 돈을 빌려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도움받기도 힘들어지겠지. 아빠는 단돈 5만 원에 첫 사기를 당했다면서 인생 경험의 대가를 싸게 치르었다고 하셨다. 나는 겨우 5만 원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조금... 아니 제법 많이 잃어버렸다. 가족 팔아먹는 건 사기의 전형인걸까. 구걸보다 사기치는게 더 자존심이 덜 상하나.
- 아빠 나쁜 사람들은 다 벌받았으면 좋겠어.
- 그런 놈들이 더 잘먹고 잘사는 세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