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엄마와 가을 추억 쌓기
10월 초 날씨가 너무 좋았던 가을이었다.
하늘도 높고, 뭉개 뭉개 구름도 예쁘고, 바람도 시원해 집에만 있기 아까운 날씨였다.
가을꽃구경 약속으로 바쁜 엄마는 서울 근교의 갈 만한 곳을 찾다가, 날씨도 좋은데 집에서 뒹굴거리는 내가 안쓰러운지 슬며시 다가오셔서 물으신다.
"어디 갈래?"
나는 선뜻 대답을 못 한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이지 길치다. 아는 길도 헤매기 일쑤라 어디를 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낯선 곳에 가면 예민해지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가 못난 딸이 된 것만 같다. 엄마를 데리고 멋진 곳에 '짠~' 하고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이런 순간이 아니면 언제 엄마와 여행을 다니겠나 싶다. 회사 다닐 땐 시간이 없어서 못 갔고, 지금은 백수라 돈이 없어서 멀리 갈 수 없지만, 꼭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서울 근교에 괜찮은 곳들이 많지 않을까? 검색을 하다 보니 봉산에 편백나무 숲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김밥을 사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은 설렘 그 자체였다. 일하는 언니들에게도 엄마랑 놀러 간다고 자랑을 해보고, 마치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시작은 즐거웠는데...
역시... 길을 잘 못 들어서 편백나무 숲은 보지도 못했다. 허허허
할 수 없이 봉수대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며 무릎은 아팠지만, 정상에서 본 풍경은 힘든 걸 잊게 할 만큼 멋있었다.
내려오는 길, 슬슬 배가 고파졌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로 가득 찬 중국집이 눈에 들어와, 기대하며 들어갔다. 엄마는 짜장면을, 나는 짬뽕을 시켰는데, 한 젓가락 먹고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면만 대충 건져 먹고 서둘러 나왔다.
맛집은 아니었다... 허허허허
엄마와 찍은 사진을 가족 채팅방에 올리니, 언니들이 부러워한다. 함께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엄마와 단둘이 보낸 시간은 내게 고맙고 소중했다.
편백나무 숲도 보지 못했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느냐 무릎도 이프고, 기대했던 중국집도 실패했지만, 엄마와 함께한 하루는 그 모든 걸 덮어줄 만큼 따뜻하고 즐거웠다. 처음 가 본 동네의 낯섦과 조금씩 길을 헤매며 구경한 그 시간이 어느새 여행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다음엔 어디 갈까?" 엄마가 나지막이 물으신다.
그 주말, 둘째 언니와 형부, 조카들과 함께 코스모스 구경을 갔을 때, 꽃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엄마가 얼마나 귀여우신지. 활짝 웃는 엄마를 보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환해진다. 그다음 여행도,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순간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