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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17. 2016

몰라서 미안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


팀이 배정됐다.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은 나를 포함 넷. 아트 둘, 카피 둘이다. 주로 아트 시디님과 일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했다. 눈치껏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출근 날짜가 조금 미뤄져 막바지 작업에만 합류됐던 한 프로젝트는 이미 컨셉이 모두 정해진 상태였다. 거기에 맞춰 바리에이션을 치는 일이 사실상 첫 업무였다. 그날 정신없이 제안서를 마무리하고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더니 어느새 새벽 3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시곗바늘을 보고 나서야 '아 나 다시 광고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아트 시디님은 나보다 7살이 많은 남자분이었다. 입사 전, 몇 번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문체에서 풍겨졌던 이미지가 실제 모습과도 일치했다. 수더분하고 여린 분 같았다. 필요한 건 없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살갑게 챙겨주었다. 3개월 전 결혼한 그는 요 근래 10시 전에 퇴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식적인 첫 출근날도 12시가 다 되어서야 모든 업무가 정리됐다. 다들 집에 갈 준비를 하던 그때, 동기 하나가 풉 웃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 시디님 출근 준비하시네."


한창 신혼인 시디님은 말끔하게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연신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집에 가는데 뭘 그렇게 꽃단장을 하세요, 하자 너네 나 보지 말고 일해, 파티션 사이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신혼이라 그런지 출근할 때보다 더 열심히 꾸민다고. 그 모습이 어딘가 귀여워 보였다. 남자들도 저렇게 신경을 쓰나 보네. 여자랑 별반 다르지 않구나. 서둘러 준비를 끝낸 그는 나 먼저 간다, 인사를 하고 황급히 회사를 빠져나갔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아직도? 왜 끝나는 시간을 몰라."


불과 2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6시 땡 하면 퇴근할 수 있는 회사에 다녔다. 팀으로 돌아가는 일이 몇 개 있긴 했지만 대개 각자가 맡은 업무를 모두 끝마치면 선배들 눈치 보지 않고도 먼저 퇴근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자유로웠고, 어찌 보면 개인주의적이었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아침에 조금 더 집중해서 일하면 무리 없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런 나완 달리 그는 퇴근 시간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광고회사 AE. 카피라이터 못지않게 무척 바쁜 일이었다.


"부장님이 아직 안 가셨어. 제안서도 조금 더 정리해야 하고. 먼저 자. 오늘은 보기 힘들겠다."


"오늘 광고주 회식이라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 상황봐서 연락할게."


친구와 한참을 놀고 들어와도 여전히 퇴근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밤 12시가 다 돼가는데 아직도 몰라, 한숨 섞인 말투로 툴툴거리면 미안해 말곤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늦게 봐도 괜찮다고 해도 그는 잘 모르겠어, 먼저 자, 대답할 뿐이었다. 융통성 있게 시간을 조정할 순 없는 건가- 그때 그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새벽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시디님을 보자 지난 2년 간 그가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답답했을 사람은 내가 아닌 그였을 것이다.


[나 이제 퇴근! 첫날부터 야근이라니. 괜찮아?]


늘 칼퇴만 하던 내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내내 걱정했던 그는 하루 종일 나를 신경 써줬다. 점심은 뭘 먹었는지, 사람들은 어떤지, 회의 준비는 잘 돼가는지 종일 나를 다독여줬다.


[상황이 이렇게 뒤바뀔 줄 알았음 좀 덜 칭얼거렸을 텐데. 미안해. 할 말이 없다. 흑.]


내 대답에 괜찮아, 이제 생활패턴이 같아졌으니까, 큭큭 웃을 뿐이었다. 중간 중간 저녁이라도 함께 먹으려 회사를 몰래 빠져나왔던 일, 밤새 제안서를 만든 날에도 나들이 가고 싶단 내 말에 꾸벅꾸벅 감겨오는 눈꺼풀을 이겨내려 애썼던 일-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스쳐지나갔다. 결국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우리 관계를 위해 그동안 얼만큼 노력해왔는지. 그제야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줬음을 나는 알았다.


누군가와 다투게 될 때, 우리는 흔히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한다. 내 입장이 돼 보면 그런 말 못 한다고, 내 입장이 돼 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그동안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꽤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론 하나도 이해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종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 끝나 대신 괜찮아?라고 물어줄 걸. 왜 안와, 툴툴 거릴 시간에 힘내라고 말해줄 걸. 직접 겪어보기 전에 미리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서로가 서로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주고 있는가를,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그렇다면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지금보다 조금 덜 다투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진작 알지 못했던 나는 이제서야 늦은 반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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