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03. 2016

이상형 '발견'하기

당신은 어떤 면에 반하나요?


오지랖이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님에도 소개팅 자리는 참 자주 만든다. 두 사람에게서 비슷한 면이 보이거나 잘 어울릴 것 같단 포인트를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만나볼래, 먼저 묻는 편이다. 1달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중학교 시절부터 쭉 함께해 온 친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얘길 가만히 듣고 있던 지인은 군대 동기 중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애가 있어, 말했고 곧바로 자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단 둘이 만나긴 부담스러워하는 타입들이니 술자리를 가장한 소개팅을 하자고.


내 친구 둘, 지인과 군대 동기까지 해서 모두 다섯 명이 모였다. 생각보다 일찍 자리가 만들어졌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어떤 일 하세요, 그 일 야근 많다던데, 처음 만난 사이에 흔히 주고받는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도 좋고 흐름도 좋았다. 지인은 잘 될 거 같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둘을 의식한 것이 분명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쯤에서 각자 이성에게 반하는 포인트를 말해보는 건 어때요?"


대답을 들어보기도 전에 그는 잔뜩 신이나 보였다. 친구는 먼저 얘기해보라며 순서를 양보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여성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모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성스러운 모습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라니.


"야리야리한데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를 쓴다거나 어느 모임 안에서 리더십을 보여준다거나 뭐 그런 거에 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좀 이상한 포인트인 것 같긴 한데 그동안의 경험을 쭉 돌아보니까 그러네요. 지금 여자친구도 되게 무뚝뚝하거든요. 여성스러운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상남자스럽죠. 물론 외모는 여성스러운 걸 선호합니다만, 반전 있는 걸 좋아하나 봐요. 전엔 애교 많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1년째 연애 중인 그는 여자친구 얘길 꺼내자마자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다들 뭐야, 야유를 보냈다. 말을 끝마친 그는 내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런 비슷한 종류의 질문이 나올 때마다 늘 비슷한 대답을 하곤 했다.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남자', 내 이상향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한 문장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이었다. 야, 그럼 소개팅으론 절대 못 만나겠는데 입 맞춰 이야기했다. 소개팅이야 1-2번 밖에 해본 적이 없어 이렇다 할 얘깃거리도 없었지만 순간,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그런 면을 가지고 있었나 의문이 생겼다.


진취적인 사람, 자신감 넘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건 분명했지만, 실제 사랑이 시작되는 포인트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동아리 사람들끼리 다 같이 MT를 갔을 때 묵묵히 자기 일을  찾아하던 모습, 출출하단 후배들 말에 닭볶음탕을 맛깔나게 만들어주던 모습, 심각한 일이 있어도 허허 웃어넘겼던 그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쌓여 반하게 됐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PT는커녕 사람들 앞에서 간단한 발표를 하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서기보단 묵묵히 자리는 지키는 쪽에 가까웠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 반하게 될 줄이야.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소개팅이 어려운가 봐. 그동안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자꾸만 잣대를 들이대게 되니까. 그걸 가지고 맞네 아니네 다 따져보게 되잖아. 다른 매력적인 모습들도 많을 텐데. 그 기준만 들여다보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 내가 어떤 새로운 포인트에 반하게 될지 모르는 건데. 이래서 다들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제일 좋다고 하나 봐, 그치?"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편견 어린 시선을 모두 걷어낸 '기대 없는' 만남을 의미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소개팅이라고 해서 불가능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을 아무런 짐작 없이 그저 지켜보는 것. 그게 만남에 있어 필요한 가장 첫번째 단계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이따금씩 보이는 몇몇 모습들에 '엇' 싶은 순간들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된다면, 시작된 거라고 봐도 좋다. 사랑이.


매거진의 이전글 몰라서 미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