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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24. 2016

노부부의 분식집

다른 곳보다 온도가 조금 높은 가게


낮 12시. 오늘은 뭐 먹을까, 팀장님의 한 마디에 막내들이 바짝 긴장하게 되는 시간. 이직 후 이 부담스러운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사옥이 있는 동네는 인적이 무척 드문 곳이라 음식점은 물론 별다른 가게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도 찾아보기 힘들다. 식권을 내고 식사할 수 있는 곳이 10군데가량 있긴 하지만 정작 우리가 자주 찾는 곳은 5-6군데 밖에 되지 않아 그날 그날 돌아가며 먹는다. 전 회사가 있던 가로수길은 번쩍번쩍한 가게들로 골목이 꽉 차 있었는데. 바글바글, 사람들 틈에 섞여 요즘 가장 핫하다는 가게에서 생전 처음 맛보는 음식들을 먹어보던 게 불과 1달 전이라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웠다. 바로바로 잡히던 택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그 좋아하는 디저트도 버스를 타고 15분가량 걸리는 이태원이나 이촌으로 찾아가야 했다. 그래도 이 동네가 싫지만은 않은 건 가로수길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조금은 더 따뜻한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구, 어서 와요. 오늘은 좀 늦었네.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이곳은 회사가 지정해 둔 음식점 중 가장 많이 찾게 되는 곳이다. 테이블은 딱 네 개, 수용 인원 또한 15명이 채 안 되는 협소한 공간이지만 옹기종기 모여 여러 가지 메뉴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한쪽 벽에는 손으로 직접 쓴 메뉴들이 쭉 적혀있는데, 떡볶이부터 칼국수, 제육덮밥, 돈가스, 만둣국, 오므라이스까지 웬만한 건 다 있다. 더 신기한 건 이 다양한 음식들을 주인아주머니 혼자 뚝딱 만들어내신다는 거다.


자, 제육 둘, 오므라이스 하나, 떡볶이에 튀김 섞어서 하나요~


아저씨가 메뉴를 적은 종이를 직접 가져다주시면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료를 다듬기 시작하신다. 귀가 어두운 아주머니를 배려해 아저씨는 항상 메뉴를 꼼꼼히 받아 적으신다. 음식이 만들어질 동안, 자그마한 접시에 반찬을, 컵에는 따듯한 물을 정성스럽게 채우신다. 두 분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가진 않지만 아주머니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저씨는 곧바로 알아채시곤 한다. 아주머니가 허둥지둥 무언갈 찾는 몸짓을 보이면 요 앞 슈퍼로 달려가 필요한 재료들을 금세 사 오신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게 이런 걸까. 두 분의 젊은 날은 어땠을까. 아마 서로를 참 많이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참 부러워하는 그런 사이였을 것이다.


이번 주 어느 점심에도 이곳을 찾아 온기 가득한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던 우리에게 아저씨는 곱게 깎은 배를 건네주셨다. 배가 아주 달아. 모자라면 더 말해요. 둘이 먹긴 안 그래도 많았거든.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과일을 밖에서 먹어보긴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하나 둘 집어먹는 동안 그새 아주머니는 한 개를 더 깎아 테이블에 얹어주셨다. 그리곤 가장 예쁘게 생긴 배를 골라 아저씨에게 건네셨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우셨던지. 갑작스레 뚝 떨어진 기온으로 입맛이 없었는데,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점심도 후식도 아주 배불리 먹었다.


그날,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던 길. 또 한 번 아저씨와 마주치게 되었다. 잠깐 바람을 쐬기 위해 나오신 듯했다. 늦었네요. 추운데 조심히 들어가요. 정답게 말을 건네셨다. 오늘 하루도 참 바삐 보냈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이 느껴질 때. 열심히 준비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못했을 때. 따스한 온기를 품은 이 가게를 지나게 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가게 안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서 있던 거리까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가게였지만, 그 공간에 머무는 두 분의 마음은 결코 자그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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