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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26. 2016

어떤 일 하세요?

직업에 대한 단상


나 진짜 때려치우려고.


묵묵히 회사를 다니던 동생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버겁다는 말은 했어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쉽게 꺼낸 적이 없는데 결론만 있는 문자에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답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결국 문자 대신 통화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11시가 넘은 시간 임에도 아직 퇴근 전인 것 같았다. 이번 주도 3일 연속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4년 전,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던 동생은 이 업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던 아이였다. 매번 열심히인 덕에 해외 광고제에서 몇 번 큰 상을 받기도 했다. 하루빨리 업계에 들어오고 싶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전화기 너머에선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언니 있잖아. 지금 '인생은 엄청 즐거운 거예요'라는 카피를 타이핑하고 있거든? 나는 매일 밤새 작업하느라 집에도 못 가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못 보고 사는데. 당장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그것도 내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인생인데. 이런 꿈같은 광고를 만들고 있다는 게 참 그렇다. 그 생각이 드니까 그냥 다 그만두고 싶어.


얼마 전, 우리가 제안했던 아이디어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나와 사수도 그런 카피를 수십 장이 넘게 썼었는데. 이 업계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나로선 모든 과정이 신기하고 즐겁지만, 동생에겐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감정인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실이 왠지 서글펐다.


대학 시절, 처음 멘토링 수업에 갔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누군가도 비슷한 말투로 말했었다.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던 그분은 10년 가까이 이 업계에 몸 담고 있었다. 반짝반짝한 눈으로 어떤 것이든 몽땅 흡수해버릴 것 같은 아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이런 말을 했다. 고생만 잔뜩 하는 이 일을 왜 하려고 그러니? 나야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지. 하루빨리 마음 고쳐먹어라. 그 당시엔 제법 큰 충격이었다. 힘들긴 하지만 재밌어. 너희도 한 번 해봐. 그 말을 내심 바랐던 것 같았다. 그날, 동생과 전화를 끊은 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쉽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그런 복잡한.


선배님은 지금도 재밌으세요?


이후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몇몇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적게는 1년, 많게는 15년이 넘게 카피라이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이 주로 대상이 된다. 가장 최근에 알게 된 선배님은 그 질문을 받자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하고 있지. 대단히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야근도 밥먹듯이 하는데, 굳이 붙잡고 있는 이유가 달리 있겠니. 너도 그런 거 아니야?


다행이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그 말을 떠올리며 동생과 30분가량 긴 통화를 했다. 이토록 지나치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까진 들지 않았을 거라는 게 동생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직 죽도록 일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속상하다고만 했다. 공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미안했지만 동생도 나도, 앞으로 이러한 감정과 이러한 상황에 공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최선을 다해 겪지 않았으면 했다. 이래서 좋아하는 것은 절대 일로 두지 말라는 말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하루의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무언갈 하며 보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좋아하는 것을 택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철없는 말이라고, 일은 일로만,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만 즐겨야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내 생각은 다른 쪽을 향해 있는 듯했다.


부디 이 마음이 10년 후에도 변치 않아 '꼭 해봐. 정말 재밌을 일이야' 망설임 없이 얘기해주는 선배가 된다면 좋겠다. 일이 고된 것은 겁나지 않지만, 직업의 이유가 '좋아서'보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가 되는 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떤 일을 하냐는 물음에 짙은 한숨보단 웃음으로 답할 수 있길, 어쩌면 이게 나의 평생의 꿈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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