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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 08. 2016

나의 위로

당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결국



신기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일 같았다. 종일 오르락내리락했던 기분이 고작 분위기 하나로 이렇게 쉽게 풀려버리다니. 따끈한 차 한 잔에 달달한 쿠키 한 조각. 한적한 골목 사이에서 발견한 어느 아늑한 카페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의외의 것들이 누구도 달래지 못한 감정을 금세 낫게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나 보다.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 나를 달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


어릴 적, 나는 사람을 통해 위로받는 방법밖에 알지 못했다. 때때로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세상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가 해주는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말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뜨거운 위로를 받게 되는 만큼 그 반대의 영향도 컸다. 늘 좋은 말만 오갈 순 없는 관계 속에서 더 상처받게 되는 일도 간혹 생겼다. 그런 경험들이 생기고 나니 누군가의 한 마디가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였고, 쉽사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시기,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떻게 서로의 감정을 100% 똑같이 느낄 수 있겠니. 너 역시도 누군가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울 거야. 나쁜 감정들을 빨리 털어버릴 수 있는, 다른 일들도 찾아보는 건 어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말이야. 결국 너를 가장 잘 아는 건 너니까."



그 방법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상은 조금 달라졌다. 퇴근 후 곧장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대신, 언제부턴가 아늑한 공간에서 혼자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 해 생일, 나는 제법 큰 돈을 들여 처음으로 나를 위한 선물을 샀다. 어딜 가든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벼운 노트북이었다. 답답한 감정도, 금세 훌훌 털어버릴 수 있도록 꽤 오랜 시간 그 노트북과 꼭 붙어살았다. 어디서든 감정을 정리하고,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영화나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되게 좋아. 너도 한 번 해봐."



비슷한 시기, 나의 오랜 친구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일본 영화 마니아인 그녀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영화관 어플을 켜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영화표를 끊곤 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없을 경우엔 전시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린 시절, 별 것 아닌 소소한 물건을 사러 갈 때도 늘 함께였던 우리는, 이제 스스로를 달래는 각자의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물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것은 여전하다. 다만 따로 또 같이, 모습을 조금 바꾸었을 뿐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홀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를 하나 포장해온 후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폭신폭신한 침대에 엎드려 오늘의 감정을 정리한다. 그게 글을 쓰는 것이든 읽는 것이든, 옛 추억이 담긴 노랠 듣는 것이든 영화를 보는 것이든, 방법들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게 됐다. 세상이 내게 친절하지 않다 여겨지는 날일지라도 '내가 나에게 친절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도 얽히고설켜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차분히 정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누군가가 채워줄 수 없는 나만의 방법, 글을 쓰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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