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 16. 2016

서점 풍경

그날, 내 손을 스쳤던 책들



어떤 책 좋아해요?



나의 물음에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책의 이름을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그 책을 꼽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이후에도 같은 단어를 자주 쓴다거나 좋아하는 문구가 겹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비슷한 부분에서 뭉클하고, 비슷한 부분에서 멈칫하나 보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작은 부분이었지만 나는 그게 무척 반갑고 좋았다. 그래서인지 다가올 그의 생일, 자연스럽게 두 가지 선물을 떠올렸다. 직접 고른 책과 직접 쓴 편지.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할까. 이미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퇴근 시간을 종잡을 수 없어 인터넷으로 이 책 저 책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 서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직접 읽어 보다 보면 마음에 툭, 걸리는 책들이 금세 찾아지리라. 다행히 그날은 8시 전에 모든 업무가 마무리되었다. 생각해보니 최근 서점에 들른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면 근처 서점에 있을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일이 더 많아져버린 요즘, 이 발걸음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도 서점은,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는 듯 구석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책 속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장 바글바글한 베스트 코너를 지나 신간 에세이가 꽂혀 있는 책꽂이로 걸음을 옮겼다. 낯선 표지들을 쭈욱 훑어보던 중 몇몇 익숙한 문구들과 마주쳤다. 엇, 저번에 그 친구가 SNS에 올렸던 책이네. 이 부분은 그때 그 친구가 사진으로 보내준 적이 있는데. 한 권 두 권, 찬찬히 살펴볼수록 각각의 책들은 그 사람을 꼭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이래서 이 책을 좋아했구나. 그래, 이 책은 네가 좋아할 만 해. 빠른 속도로 신간을 훑어보던 그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분이 내가 들고 있던 책과 같은 것을 집었다. 그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딸, 네가 저번에 말한 책 이거 맞니? 아빠도 한 번 읽어보려고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책이 맞는 모양이었다. 읽어본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냉큼 계산대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엔 한 시라도 빨리 그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 읽고 난 후, 부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맞은편으로 한 커플이 다가왔다.



- 이거 읽어봤어? 내가 저번에 말했던 거.


- 아, 읽어보는 중이야.


- 여태? 저번에도 읽어보는 중이라며.


- 보고 있어. 내가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어딨냐.



티격태격, 여자는 입을 삐쭉였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한 책이 그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 책을 추천해주는 여자라면 대략 이런 성격의 사람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부분에서 멈칫했을지 모르지. 그랬다면 왜 그 부분에서 멈칫하게 되었는지 묻고 싶기도 했다. 어쩜 우린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는지도. 책 한 권으로 인해 처음 보는 그녀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참 동안 한 코너에 머물던 나는 최근 다시 읽기 시작한 오래된 책 하나와 지인이 거듭 추천해 준 또 다른 책을 사기로 했다. 책을 고르는 동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몇 번이고 떠올려보게 됐다. 이런 글을 썼었고, 이런 글에 웃었고, 이런 글에 감탄했었지. 책을 선물할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책을 좋아할까, 떠올리다 보면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까지도 생각해보게 됐다. 같은 문장에서 웃었으면. 같은 문장에서 뭉클했으면. 그리고 가장 첫 장에 적어둘 자그마한 메모를 볼 때마다 어느 한 때를 함께 보낸 서로를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계산대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그에게 어떤 메모를 쓰면 좋을지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날 잊고 지내던 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서성였을 코너, 그녀가 퍽 마음에 들어했을 신간, 당신과 내가 그냥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을 페이지. 서점에 가면 그날의 내가 보였고, 그 언젠가의 당신이 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