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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09. 2015

네 잘못이 아니야

세상이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었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야.]


스스로를 달래기 위한 핑곗거리로 생각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딨어, 더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 20대 초반의 나이, 노력하면 뭐든 다 이룰 수 있으리라 철썩 같이 믿었다. 당시 합격과 불합격, 성공과 실패에 있어 가장 굵직하게 경험한 것은 대학입시와 연애 정도였다. 다행히도 노력 끝엔 항상 어느 정도의 결과물이 보상처럼 따라주었다. 그래서 뭐든 되는 줄 알았다. 나만 잘하고 나만 열심히 하면 노력은 정말 배신하지 않는구나.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노력과 운대가 잘 맞은 덕에 큰 불만 없이 한 단계 한 단계 무사히 잘 넘어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최종적으로 저 친구를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60% 정도 내가 될 거라 생각했다. 결코 자만에 차 있던 건 아니다. 그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부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밤낮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자부했는데- 단 한 명만 채용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그때, 나는 최종적으로 선발되지 못했다. 모든 걸 다 미루고 그것만 바라보며 달려도 좋을 첫 꿈을 심어준 회사였는데,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만 수십, 수 백번 마음 졸였건만. 지난 시간들이 안타깝고 아쉬워 순간적으로 목구멍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다른 직군에서 최종 선발된 1살 터울의 오빠는 아무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누구보다도 내 심정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어떤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걸까, 분명 좋은 평가를 받았었는데, 뭔가 잘못된 게 있었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껏 잘했다 생각했던 것들도 온통 실수로 여겨졌다.


그게 살면서 처음 경험한 쓰디쓴 실패였다. 덤덤한 척 '괜찮아, 또 다른 기회가 오겠지' 했지만 늦은 저녁, 집 앞으로 찾아온 남자친구를 보는 순간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하루 종일 참고 있던 왠지 모를 억울함, 답답함, 아쉬움- 설명하기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필터링 없이 쏟아져나왔다. '열심히 했으니까 됐어. 그걸로 됐어.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옆에서 지켜본 나도 다 알고.' 그 말이 무척 고마웠지만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는 마음속 깊이 흡수되지 못한 채 빙빙 맴돌고만 있었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물이 없잖아, 잘한 게 맞다면 이런 결과가 돌아오지 않아야 하잖아, 내 속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할 수만 있다면 수학 문제처럼 점수를 내주길 바랐다. 이건 맞았고 이건 틀렸어, 차라리 그게 속 편할 것 같았다.


이후의 일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 비슷한 일이지만 약간은 다른, 그래서 어딘가 갈증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직군에 합격하여 제대로 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갈증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이 회사를 가야 할까,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 할까 주저하고 있을 때, 나를 단단히 붙잡아준 건 지금의 사수였다. 최선을 다해 피드백해주겠다, 선배로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모두 돕고 싶다, 한 마디에 입사 결정을 내렸다. 오랜 시간 대형 잡지사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짧은 문장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일명 '빨간펜 피드백'. 그럴싸한 문장, 혹할법한 문장을 쓰기 좋아했던 나는 그녀의 빨간펜을 거치며 '읽기 편한 글'을 목표로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졌다. 입사하고 처음 두세 달은 리라이팅만 죽어라 반복했는데 가장 싫었던 그 작업이 이젠 가장 고마운 일이 됐다. 주렁주렁 수식어 달기 좋아했던 버릇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그 무렵 첫 실패를 경험한 직후, 나의 6개월을 고스란히 지켜본 멘토님이 보내신 메일을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다. '중요 메일'에 꼭꼭 담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곤 했는데 그날은 이 부분이 유독 눈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결과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흘려보내 주기로 하자. 결과는 우리의 작은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엉뚱한 변수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인생은 원래 그렇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잘 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인생(혹은 운명)에 대응해 살아가야 한다.]


그 순간, 한 문장 한 문장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오롯이 전해져 왔다. 좋아하는 영화를 한 번 봤을 때와 두세 번 반복해서 볼 때, 귀에 걸리지 않던 대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장면이 한동안 아른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듯 한해 한해 새로운 문턱을 마주하며 이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니 굳이 피 튀기며 노력할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부단히 노력하되, 결과에 따라 지나 온 과정들을 무참히 무시해버리지 말 것,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결과 하나 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 말 것,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면 그 시간들은 크나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젠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때가 있었기에 성장했고 성숙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최종적으로 선발되지 못했던 그 시기. 회사에서 원한 사람이 내가 아니었던 건,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글을 쓰면서 디자인 툴도 함께 다룰 줄 아는, 나 같은 사람을 찾고 있던 건 흡사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한 데다 시기까지 잘 맞는다면 함께 가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기회를 찾아야지, 사회생활 경험이 눈곱만치도 없던 때, 학교 선배가 해 준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거겠지, 싶다.


세상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해도 크게 좌절하지 않아도 좋다. 스스로를 망가뜨릴 만큼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잘못'이란 있을 수 없다. 그 힘겨운 시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닌 '자신감', 실망이 아닌 얼른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또 다른 가능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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