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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08. 2015

아빠의 젊은 날

그때의 아빠가 그랬고 지금의 내가 그렇듯


"우리 강아지들 어디 갔나. 자나."


잠이 들락 말락, 몽롱한 상태가 되면 현관 쪽에서 나는 익숙한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시곗바늘은 어김없이 10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아빠는 서류가방을 거실 소파에 올려두고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방으로 들어왔다. 오른쪽 손에는 항상 전기구이 통닭 두 마리가 들려있었는데 어찌나 꼭 끌어안고 왔는지 한겨울에도 여전히 따듯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오면 아빠는 맥주 한 캔을 톡 따곤 냠냠 쩝쩝 먹고 있는 우릴 한참 동안 웃으며 바라봤다. 볼따구에 쪽, 뽀뽀를 해주는 날엔 '악! 술냄새 난다~' 칭얼거렸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딸, 미안~ 아빠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했어."


피는 못 속인다고, 이젠 아빠의 그 말을 고스란히 내가 한다.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 잔 했어, 얼렁뚱땅 넘어가곤 한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삼남매 중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나는 좋아하는 술 종류도, 주량도 무척 비슷했다. 마시고 또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기는커녕 점점 더 하얘지는 것까지 똑 닮았다. 아빠와 동네 횟집에서 술 한 잔 기울이고 들어가는 날이면 엄마는 아이고, 오늘도 둘이 얼마나 마셨는지 가늠할 수가 없네, 말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1주일에 한 번은 꼭 그런 시간을 가졌는데 7년 전, 이제 복잡한 서울은 싫다며 삼남매를 열심히 키운 부모님은 조용한 주택으로 이사를 가셨다. 오고 가는 데만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제법 먼 거리. 공기 좋고 아늑한 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더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다, 늘 생각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반으로 훅 줄어버린, 그것 하나가 못내 아쉬웠다. 야근 후 집에 돌아오는 날엔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따끈한 통닭을 나눠먹던 밤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아유, 아가씨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야. 요즘은 아빠랑 자주 안 오네. 잘 계신대요?"


그런 날은 아빠와 자주 들렀던 집 근처 숯불 바베큐집을 찾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매번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주셨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 부녀의 안부를 먼저 물으셨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즐비한 동네에서 꽤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트럭에서 파는 통닭구이가 사라져버린 후, 우리의 빈자리를 채워준 곳이었다.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구워낸 바베큐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쭈욱 들이키면 그 날의 스트레스가 훅! 날아가버리는 느낌이었다.


"네, 그럼요. 잘 지내셨어요? 서울엔 2주나 3주에 한 번씩 오셔서 예전만큼 시간이 많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전화로 여기 오고 싶다, 말씀하셨는데 다음엔 꼭 같이 올게요!"


"아유, 말씀 만이라도 고맙네~ 요 근처가 죄다 회사잖아요. 퇴근하고 혼자 오는 아버님들이 참 많은데 아가씨랑 아버님은 단 둘이 와서 한참을 얘기하다 가던 게 생각 나. 그게 참 보기 좋았어서 우리 바깥양반도 가끔씩 두 분 얘길 한다니까. 다음에 서울 오시면 꼭 같이 와요. 내가 맛있게 구워줄게."


두 아들 모두 장가보내고 집 근처에 바베큐집을 차린 아주머니, 아저씨 부부는 시집가기 전에 부모님이랑 더 많이 많이 얘기 나누고 더 많이 많이 시간 보내요, 항상 당부하시곤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가게를 찾는 날은 두 마리가 훨씬 넘는 넉넉한 양에 서비스까지 아낌없이 주셨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느 한 때를 떠올리시는 것도 같았다. 아마도 내가 가진 추억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맛있잖아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아가씨도 일하니까 이제 잘 알죠? 우리 아버지들이 그렇더라고. 힘든 하루를 그걸로 다 씻어내는 거 같어. 가끔씩 과음해도 그냥 모른 척 눈감아주는 것도 다 그런 거 때문이지, 뭐."


평균 11시 퇴근에 주말 출근도 밥먹듯이 하는 학교 동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도 늦은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동생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고 한다. 직장 생활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어떻게 하면 버텨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녀석, 어떻게 하긴. 너랑 네 동생 얼굴 떠올리면 저절로 그렇게 됐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코 끝이 찡해져 왔다. 우리 아빠도 분명 그랬겠지, 가끔씩 아빠가 젊었던 시절,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조금이나마 전해 듣게 되면 그걸 어찌 버텼나, 생각이 들었다. 둘도 아닌 셋씩이나 되는 자식들 생각에 꾸역꾸역 견뎌냈을 아빠에게, 퇴근 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짧은 밤은 무척이나 달콤했을 것이다. 그 힘으로 또다시 이른 아침, 뚜벅뚜벅 일터로 향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제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아빠의 지난날들을 말없이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통닭을 먹는 우리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날의 아빠를 오래도록 안아주고 싶다.


하루를 살아가는 힘은 그리 대단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다. 가족의 온기 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 아빠가 그러했고 지금의 내가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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