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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07. 2015

향기로운 물건

미련하리 만큼 버리지 못하는 것들


마음에 쏙 드는 풍경이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네모난 알림 창이 떴다. 저장할 공간이 없으니 사진을 지우라는 메시지였다. 그 날 하루만 해도 세 번째. 금세 꽉 차 버리는 사진첩, 하루를 못 가는 배터리. 미루고 미루던 것을 이젠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가까운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본 후, 매달 내야 할 요금이 별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닫곤 그 길로 새 핸드폰을 장만하러 갔다. 화면도 훨씬 큰 데다 용량까지 3배. 마음에 쏙 드는 새 모델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점원이 전에 쓰시던 기계는 반납하실 거죠,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아니오, 대답하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몇 만원 더 할인받으실 수 있는데 왜 안 하세요? 다들 반납하시는데. 어차피 둬도 쓸 데 없어요."


그는 계산기를 두들기며 얼마나 더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조근조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액정도 깨끗하고, 앞면 뒷면 모두 준수한 편이니 A등급으로 쳐 드릴 수 있다고, 그럼 거의 그냥 가져가시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뽁뽁이에 둘둘 감아 쇼핑백에 잘 넣어달라고 하자 진짜 쓸 데 없으실 텐데, 또 한 번 중얼거렸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제 더 타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위험할 수도 있고. 엄마 말 이해하지?"


6살 무렵, 엄마의 오랜 설명에도 나는 막무가내로 울고 있었다. 어르고 달래 봐도 소용없었다. 수리하고 또 타고 수리하고 또 타고를 반복하며 자그마치 8년을 몰아온 자동차를 폐차하고 드디어 새로 사자, 마음먹었는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인형을 좋아하는 또래들과는 달리 엄마 손을 붙들고 이건 무슨 차, 저건 무슨 차 맞추기 좋아했던 터라 차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건 사실이었다. 헌데 폐차의 의미도 잘 몰랐을 그때, 엄마 말을  듣기는커녕 차가 없으면 안 된다, 차가 없으면 안 된다, 반복하며 울기만 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 차를 1-2년간 더 타야 했다. 그땐 녀석이 차 타는 걸 무지하게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고 했다.


"오물오물 여러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네가 그러더라고. 저 차 타고 엄마랑 어디 갔었고, 친구 누구누구랑 같이 저 멀리도 나갔었고, 아빠 퇴근 시간 맞춰 남산에도 갔었다고. 차도 위에 주차된 차를 보면서 한참을 뭐라고 뭐라고 얘기했었다니까. 꼭 그 차여야 했나 봐.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친구 같은 거였겠지, 너한테."


20년도 더 된 지금, 나는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때 그 버릇이 어디 갈 리 없다. 여전히 오래도록 함께 한 것들을 선뜻 버리지 못한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하물며 2년 간의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핸드폰인데 깎아준다는 말에 홀랑 넘길 리 없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 값이면 그냥 팔지, 사진은 N드라이브에 옮기면 되잖아, 했지만 반납하고 왔으면 왠지 눈에 밟혔을 것 같아, 애늙은이 같은 대답을 했다. 집에 돌아와 옛 핸드폰을 충전한 후, 가장 맨 뒤에 있던 문자를 하나 둘 읽어보았다. 누군가가 보내온 메시지만큼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라 아주 예-전 것들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땐 이 사람과 참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구나, 지금과는 조금 다른 말투를 썼네,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런 고민도 했었구나, 낯설지만 왠지 반가운 기록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불과 한두 달 전, 처음 세상 빛을 본 게 금세 옛 것이 되어버리고, 여건만 된다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싹 바꿔버릴 수 있는 요즘. 새 것이 주는 편리함에 매료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고 그대로 있어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그 마음 때문에 이번에도 옛 것을 버리지 못했다. 이따금씩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마주치게 되는 물건들은 그 어느 것보다 생생히 그때를 담고 있어서였다. 나의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버렸지만 물건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 있는 듯이, 누군가와 주고받은 메시지, 순간순간 적어둔 메모, 그때 들었던 음악들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시간들을 우연히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박한 재미가 있는지. 어린 시절 주고받던 손편지를 펴보듯 꺼내 읽다 보면 지금의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때 참 아팠지만 잘 견뎌냈네, 행복했던 그때, 후회 없이 잘 보냈네, 하며 저만치 미뤄두었던 여유를 갖게 된다. 내일 뭐 해야 되더라, 생각하기 바쁜 요즘, 이 시간은 제법 큰 휴식을 안겨주었다.


스르르 잠이 들락 말락, 노곤한 상태가 되자 점원의 무뚝뚝한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걸 어찌  쓸모없다 말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미련하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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