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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01. 2015

가장 어려운 대상

그들에겐 별 것일 수 있으니


꺼내놓기 쑥스러운 일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아, 만화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일들을 그림으로 남겨둔 낙서 정도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늘 한 장으로만 끝나던 그림을 여러 장에 걸쳐 그리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무척 따르던 담임선생님이 전근을 가시면서부터였다.


[ 잘 읽었어. 일기를 읽어 보니 네가 어떤 아이인지 더욱 궁금해지네. 이 부분에선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거든. 한 번 읽어보면 좋겠구나. 다음엔 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세히 적어줄래? ]


4학년에 올라간 후, 처음 제출하는 글이었다. 자리 위에 고스란히 놓여있던 일기장엔 무심하게 찍힌 '참 잘했어요' 도장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는 세심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어째서 혼자 적은 일기를 검사받아야 하는 걸까, 늘 의문을 품고 있던 나는 솔직한 일기보단 적당한 일기를 적어 내곤 했다. 지적받지 않을 만한 소재들을 골라 정답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두 번째 서랍 속 열쇠고리가 달린 노트에 진짜 이야기를 적어뒀다. 늘 두 번씩 썼던 셈이라 매주 일기를 제출하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는데(방학 땐 정말 괴로웠다.) 저 코멘트를 받은 날, 그날 떠올린 생각들을 이제 솔직하게 적어봐도 괜찮으려나,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솔직한 이야기를 적어 내다보니, 일기 끄트머리에 쓰여 있을 선생님의 코멘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기장이라기보단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편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선생님도 이야기 중에서 그게 제일 좋았어! 다음 시리즈도 읽어봤니? 거기서도 어떤 이야기가 좋았는지 얘기해보자. 아, 네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봐도 좋겠다. 일기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뭐든 적어도 괜찮아. ]


선생님의 이 한 마디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글짓기 대회에도 나가보잔 권유 덕에 비교적 많은 종류의 글을 써 볼 수 있었고, 글이 주는 재미를 일찍 깨달았다. 그때부터 즐거운 일이 있든 슬픈 일이 있든 늘 두 손엔 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걸 더 이상 겁 내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내 글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영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하루하루가 매일 기대되고 즐거웠으니.


만약 처음부터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다음에 겪었던 일들이 조금은 덜 힘들게 느껴졌을까. 4학년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아침이었다. 늘 선생님이 서 있던 자리에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사정이 생겨 앞으로 내가 담임을 맡게 되었어, 그 사람은 어리둥절한 아이들에게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새로 온 선생님은 그야말로 '때리는 게 답이다'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 반 아이들은 얌전하다 못해 생기를 잃었고, 반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다른 반 선생님들은 '4학년 1반 만큼만 해봐라. 쟤네들 잘하는 거 안 보여?' 버릇처럼 말했지만 정작 우리 반은 그 말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모두 '여기만 아니면 좋겠다' 생각했을 테니까.


"oo이 괴롭힌 사람 누구야. oo이 내쫓고 자기들끼리 교실에 모여서 논 애들 누구냐고!"


그날도 담임 선생님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oo이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아이로 종종 엉뚱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무척 착한 아이였다.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왔는데 무슨 영문인지 선생님은 격양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아이들은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 쪽으로 화살이 날아왔다.


"야, 거기. 몰려다니는 너네. 너네가 그런 거지?"


앞 혹은 뒷동에 살고 있어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친했던 우리 쪽을 가리켰다. 가장 마음이 여렸던 한 친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 저희요? 저희 아니에요. 저희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oo이가 복도에서 놀고 있었던 거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우리는 그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바닥을 맞아야 했다.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는지, 장애를 갖고 있던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뒷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우리는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후, 한동안 억울한 일만 생기면 이상하게 눈물부터 쏟아져 나왔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린아이가 겪기엔 너무나 큰 변화였던 것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려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그때, 유일하게 찾은 방법이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전근 가신 선생님의 집으로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학교 생활은 어떠니?, 다정한 질문에 다 좋아요, 선생님도 좋고, 친구들도 좋아요, 그렇게만 대답했다. 행여나 걱정하실까 그저 다른 이야기만 잔뜩 쏟아냈다. 선생님은 매번 전화를 끊기 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네 글을 이제 매주 볼 수 없어 아쉽구나, 선생님 없이도 잘할 수 있지?라고. 그 한 마디가 힘겨웠던 그때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이들 싫어해?"


멍하니 옛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친구가 물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그네 앞쪽엔 10살, 11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축구공을 튕기며 놀고 있었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 어려워."


친구는 피식 웃었다.


"어른들이 어렵지, 무슨 애들이 어려워."


그땐 잘 몰랐다. 왜 아이들이 어렵게 느껴졌는지. 얘들아, 너네 어디 학교야, 자연스럽게 질문하는 친구와 달리 나는 왜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 행동이나 말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어서,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영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평생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내 속에 있던 무언가를 찾아 준 고마운 사람도 있었지만 매를 들고 있던 모습만 떠올라도 억울하고 답답해지는, 원망스러운 사람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만난 두 사람이 끼쳤던 영향은 제법 컸다. 그걸 동시에 겪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자주 보는 직업을 갖고 있진 않지만 어딘가에서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이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다. 우리에겐 아주 사소한 일도 그들에겐  별 게 될 수 있고, 아이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기에. 어쩌면 어렵게 느껴질 만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대상은 어른이 아닌 우리 아이들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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