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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15. 2015

공평해서 아쉬운 순간

적당한 사랑보다 듬뿍 주는 사랑을 


[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올 한 해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마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는 길.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연말을 맞아 모 쇼핑몰에서 보낸 문자인가 싶어 발신자를 확인했더니 한동안 보지 못한 지인이었다. 나보다 3살이 많아 항상 편하게 반말을 쓰곤 했는데, 어색한 존댓말과 딱딱한 내용을 보니 다수에게 보낸 문자구나, 싶었다. 아마도 그는 뚝 떨어진 기온에 옷깃을 여미며, 잊고 지냈던 몇몇 얼굴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도 생각이 났나 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곧 만나기로 한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와 약속 시간을 재차 확인하고, 밥을 먹고, 공연을 보고, 그렇게 잠이 들기 직전이 되어서야 늦은 답장을 했다. 하루 종일 그 문자를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적이 별로 없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회에 막 발을 들였을 때까지만 해도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안부를 물었다.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한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의 이름을 선택하여 꼭 한 번씩 문자를 돌리곤 했는데 인원이 적지 않았던 터라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대개 비슷비슷했다. 잘 지내? 못 본지 오래됐네. 이번 달 안엔 꼭 봐야지, 그렇고 그런 말들. 꼭 해야만 하는 일처럼 그렇게 꾸준히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관계가 유지될 것 같은 마음에서였다. 때때로 상대방으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를 받게 되면 '이 친구도 한 명 한 명한테 보내느라 고생 좀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잠깐이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안부를 묻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줄었다기보단 꼭 보내야 할 대상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문자 하나를 보낼 때에도 이 문장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고 있나, 꼭 한 번씩 생각해보는, 다소 피곤한 성격이라 그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렸다. 상대방과의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면 이 말도 하고 싶고 저 말도 하고 싶고, 이것도 묻고 싶고 저것도 묻고 싶고- 고작 문자 몇 통 돌리는 데 몇 시간씩 걸리기도 했다. 때때로 좀 미련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들에게서 온 답장 속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싶은 내용들이 잔뜩 적혀 있었으니까. 그래, 그건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다수에게 적당히 사랑받기보단 소수에게 듬뿍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 되어간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기보단 몇몇 소중한 이들에게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고 싶다. 이게 좋은 변화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에 비해 느껴지는 만족감이나 행복감은 더 크다. 함께 나누는 사랑의 크기가 커져서일까. 정성이 듬뿍듬뿍 들어가서일까. 나는 분명 편애를 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대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그리고 누구보다 그걸 성실히 실천해왔다 생각하지만- 때론 그 공평함이 서운함을 만들기도 했다. 적어도 우린 좀 더 특별한 관계라 여겼는데- 그때 받은 문자에서도 비슷한 걸 느꼈나 보다.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동일한 메시지를 받았기에, 그 문자에서 큰 온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같다. 모든 관계가 공평할 순 있어도 동일할 순 없을 텐데, 각각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안부 또한 같기는 어려울 텐데. 그렇다고 그에게 고맙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다. 어른스럽지 못한 내 모습도 참 별로였다. 하지만 솔직히 그랬다. 공평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2015년이 3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 다른 어떤 날보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언제 한 번 보자, 빈 껍데기 같은 말만 주고받았던 지인들이 하나 둘 생각난다. 아마 마지막 주가 되면 나는 꼭 해야만 하는 일처럼 또 한 통 두 통 문자를 보낼 것이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일수록, 마음을 오래 주고받은 사람일수록 문자 한 통을 완성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하다. 그래도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는 나도, 그걸 꾹꾹 눌러 읽어 볼 누군가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 대해, 우리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는 내게 이토록 좋은 사람이라고, 자주 보자는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서로가 가장 행복한 날, 가장 슬픈 날 만큼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그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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