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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31. 2015

좋아서 하는 일

2016년, 다시 시작합니다.


타고나길 아침잠이 많다. 일찍부터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날은 전날 밤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고, 그날 오후가 되면 매가리 없이 폭 꺾여버리고 만다. 가장 바이오리듬이 좋은 시간은 무조건 오후 12시 이후. 수면시간이 새벽 3시에서 오후 11시 정도일 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생각도 깊어지고, 세상이 고요해질수록 마음도 안정된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데 이만큼 좋은 시간은 없다.


그런 부분에 있어 디자인과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4년 내내 전공 참 잘 골랐네, 생각했다. 제때 결과물만 잘 제출하면 각자의 시간을 알아서 조정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과정을 모두 보여줘야 하긴 했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땐 잠시 강의실을 빠져나와 머릴 식혔고, 집중이 잘될 땐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그림을 그렸다. 그런 날은 아예 몽땅 몰아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런 일이 많아져 자연스레 야작을 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야작을 좋아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를 빠져나갈 시간, 식당에서 저녁까지 두둑이 챙겨 먹고 어슬렁어슬렁 강의실로 돌아와 재료를 꺼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노을 지는 것도 보다가,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도 보다가, 그렇게 여유롭게 작업을 시작했다. 반복 재생되는 노래와 함께 뜨끈한 커피, 군것질거리를 잔뜩 쌓아두고, 시간의 제약 없이 작업하는 게 좋았다. 오로지, 오롯이 내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보내고 이른 새벽, 지하철을 타고 돌아올 때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간, 가장 바삐 움직였고, 가장 생기가 도는 시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하루 중 분주하게 일하는 시간이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이러한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가장 빡세다는 제작팀에 막내로 들어가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10시에 퇴근하고, 주말도 평일처럼 살았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다행히 억지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이거 아니면 안 돼, 자꾸만 고집이 생기는 일이었다. 잘하고 싶었고, 욕심도 많았다.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고 싶었다. 가장 다행스러웠던 건 함께 일하는 선배님들이 모두 올빼미형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아침엔 뭘 해도 집중이 안되니까 회의는 무조건 오후, 전날 야근이면 다음날은 오후 출근도 OK. 인턴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수면시간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무언갈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제안서를 만드느라 꼴딱 밤을 새운 날, 알람을 하나도 듣지 못해 오후가 되어서야 회사에 도착했을 때도 우리 팀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막내라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마음 만은 편했다. 나름대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업무시간이 9시-6시인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보다 활동시간에 적응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딱 30분 거리. 다들 가까워서 좋겠다, 말했지만 늦어도 7시 반엔 일어나야 했다. '노력하면 당신도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 길들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버릇이란 게 참 무서웠다. 오전 11시가 지나야만 차츰 집중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후가 될수록 머리가 맑아졌지만 최상의 상태가 될 때쯤이면 슬슬 퇴근 준비를 해야 했다. 야근이란 게 별로 없는, 8시도 야근이라 부르는 칼퇴가 보장된 회사였기 때문이다. 6시 10분만 돼도 회사는 텅 비어 있었다. 그것 또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분이었지만 정작 나는 잘 느끼지 못했다. 이제 시작이다, 싶은 시간에 퇴근을 해야 했으니. 곧 익숙해지겠지, 아침 일찍 일어나 업무를 하고, 굳이 밤새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꼬박 1년 반이란 시간이 지났다. 나의 스물아홉은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새해를 1달 정도 앞뒀던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바빴던 그때, 전혀 생각지 못한 전화였다. 고민해보고 연락 줘요,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지만 종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내 마음속엔 이미 모든 결정이 나 있었다. 이틀 동안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하고, 월요일 아침, 꽁꽁 담아두었던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꽤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사수님에게 그동안의 고민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잠자코 있던 사수님은 여가 시간도 없어질 거고, 야근도 밥 먹듯이 할 거며 안 그래도 잔병 많은 네 몸이 더 나빠지기만 할 거라고 했다. 전날 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며 이 평범하고 편안한 삶을 놓을 수 있을까, 수 없이 생각했는데, 그건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나 보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야근은 퇴근 후 당신의 가족들에게 오늘 하루의 일을 웃으며 말해주는 것.

ㅡ박재규 '내 삶의 힌트' 中



야근은 죄가 없다. 칼퇴도 그렇다.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고는 사실 중요치 않았다. 각각의 사람들에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대란 게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게 하고자 하는 일을 모두 바꿔버릴 만큼 중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그만큼의 열정이 없는 내가 문제였다. 그 조건이면 괜찮다, 주변의 말에 솔깃해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내가, 그래서 저녁 있는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내가 문제였다. 결정을 내리는 데 항상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시 카피라이터가 된다'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게 있을까. 징징거리며 후회할지도 몰라, 지인의 절반 이상이 입 맞춰 이야기했지만 괜찮다. 그 시간마저 내겐 소중할 것 같다.


유독 길게 느껴졌던 스물아홉.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거 같이 아팠던 그때도,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그때도 결국은 흘러 흘러 저만치 갔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이제 서른이 된다. 무수히 많던 선택의 기로를 지나 지금 이곳에 서 있다. 늘 머릿속에만 그려뒀던 새로운 길을, 이제 한발 한발 걸어가보려 한다. 지금은 그저, 다 잘 되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해피 뉴 이어. 지금 이 순간, 세상 모든 이들이 가슴 뛰는 시작을 맞이하길. 아팠던 기억은 덤덤해질 때까지 마음속 어딘가에 깊이 묻어두고, 좋았던 기억만 꺼내 하나하나 정성스레 들여다보길. 2016년, 그 기억들이 당신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 굳게 믿길.






2015년 10월 17일.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 '작가'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저완 결코 어울리지 않아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어요. 글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때였거든요. 그날 저녁, 카페에 앉아 뭘 쓰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작가의 서랍에 이런저런 소재들을 채우기 바빴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단비 같은 존재'말고는 브런치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하겠네요. 뚜렷한 취미 하나 없던 제게 이곳은 정말 그런 공간이었어요.


그날 이후, 일주일에 2-3개씩 꼬박꼬박 글을 쓴 것 같아요.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아도, 사실 제 글을 꾸준히 읽어줄 누군가가 있을 거란 기대감은 아예 갖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저 글을 쓰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날은 다음날 제출해야 할 숙제를 다 끝마치지 못한 느낌이라 그걸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어요. 우선 좋았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적어보자 생각했어요. 브런치를 만나기 전, 자그마한 노트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메모해두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그럼 신기하게 다 괜찮아지는 것 같았어요. 나쁜 일이 생겨도 금세 나아지는 느낌. 그런 기억들이 오늘을 살게 하고, 또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나 봐요. 그렇게 혼자 뒤적거리던 소소한 기억일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게 되다니. 아직까지도 잘 믿기지 않아요. 라이킷을 눌러주시거나 잘 읽었어요, 댓글을 남겨주실 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콩닥거리는지. 늘 새롭고,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행복한 감정에 푹 빠져 지낸지 어느덧 3달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브런치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공간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도 왠지 브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단 생각이 듭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한 분, 아니 그런 분이 없으시더라도 아마 저는, 계속해서 무언갈 써내려 갈 거예요. 대단히 굴곡 있는 인생을 살아온 것도, 세상 경험을 많이 해본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긴 어렵고, 혼자 버텨내기엔 버거운 일이 닥쳤을 때- 따스한 문장들로 촘촘히 엮인 한 편의 글이 제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듯,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분명 누군가에게, 언젠가 꼭 그럴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요.


2015년 한 해, 정말 고마웠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이건 매해 마지막 날, 매번 깊이 새겨둘 새해 바람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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