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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06. 2016

느림보 인생

한 장의 증명서보다 한 편의 찐한 기억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고 싶다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휴학'이라는 단어와 마주한 그들의 표정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 보였다. 너 그렇게 어리지 않잖아,를 시작으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어학연수나 인턴 일정이 정해져 있는지 물었다. 그게 아니라면 별 의미 없이 1년을 보낼 게 분명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대부분의 휴학생이 갖고 있을 전형적인 '두 가지 보기'가 내 선택지엔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계획에 없던 휴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흔히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함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기 위함도 아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나의 하루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단지 그게 궁금할 뿐이었다. 학창시절부터 대학교까지 늘 무난하게 흘러가던 나날들. 어느 날 아침, 새삼 그 당연함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안정감이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무난하게 수업을 듣고 무난하게 학점을 받고 무난하게 졸업을 하겠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상할 수 있는 날들이 싫어서' 어찌 보면 그게 가장 솔직한, 휴학의 이유였다.


"그냥 막연하게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되는 건가? 한 달 내내 죽어라 글을 써볼 수도 있는 거고, 훌쩍 혼자 국내 여행을 떠날 수도 있는 거고. 훗날 그게 스펙이 된다면야 좋겠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괜찮지 않나.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로 멈춰 선다는 게 꽤 위험해 보이나 봐. '증거물'이 없으면 죄다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평생도 아니고, 딱 1년만 자유롭게 보내보겠다는 건데, 그게 그렇게 염려스러운 일인 건가."


내가 답답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자 친구는 입을 삐쭉 내밀며 대답했다.


"야, 누군들 안 그렇겠니. 근데 우리한텐 이뤄야 하는 것들이 있잖냐. 스물셋이나 넷이 되면 졸업을 해야 하고, 서른 넘기 전엔 결혼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그때 그때 주어진 단계들을 밟아가기에도 숨 가쁘다고. 남들 다 통과했는데 나만 제자리라고 생각해봐. 얼마나 불안하겠니. 그런 걸 걱정하는 거지. 네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10명 중 8명이 하면 그게 당연한 게 되는 거야. 학과장님 말씀처럼 우리 적지 않은 나이잖아. 계획이 짜여 있어도 불안한 마당에 완전 백지상태라며. 솔직히 그거 뻥이지?"


휴학계를 제출하는 날, 아무 계획이 없다는 말을 또 한 번 했지만 다들 에이, 말만 그런 거지? 되물었다. 이상했다. 나는 정말로 아무런 계획이 없는데. 그날도 동기들은 도서관에서 토스, 인턴, 어학연수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솔직히 다른 길을 택하는 게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 홀가분한 마음으로 캠퍼스를 벗어났다. 자,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이제 뭘 하면 좋을까. 과제나 학점 걱정은 당분간 저-만치 미뤄둬도 괜찮겠구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렇게 자유로운 건지 몰랐다. 어떤 걸 해봐도 점수나 증서가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것. 다들 그걸 가장 염려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삶, 생전 처음 겪어보는 삶 같았다.


"자, 막내 먼저 소개해볼까요?"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던 내가 자석처럼 처음 이끌려간 곳은 어느 작가분의 문학교실이었다. 그 먼 곳까지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매일 같이 들여다보던 트위터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글이 인연이 되었다. 지원 양식은 비교적 간단했다. A4 한 장 짜리 분량에 이름과 뭘 하고 싶은지만 적어내면 되는 거였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주제였고, 운이 좋게 기회를 얻어 왕복 4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물어 물어 찾아갔다. 그곳엔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교에서 화석이라 불리는 내가 가장 어렸다.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도 계셨다. 학교 선생님, 우체부, 통역사, 편집자까지 직업은 무척 다양하지만 단 하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무언가를 쓴다는 점'은 같았다.


"안녕하세요. 반장님이 말씀해주셨다시피 가장 나이가 어리고요. 모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고 있습니다."


내가 봐도 참 시시하고 재미없는 인사말이었다. 당시 나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게 나이와 학교, 전공 말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짤막한 소개가 끝나자 가장 멀리 앉아 계시던 남자분이 천천히 손을 드셨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 또 어떤 걸 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간략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저는 그런 것들이 더 궁금하네요."


질문을 되받아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 사람들은 30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각자의 소개를 했다. 그 시간은 나를 알리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에 대해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만 하던 것들을 차분히 문장들로 정리해보면서 아, 나 이런 거 좋아했었지, 맞아 이런 거 할 때 제일 행복했었어, 새삼 깨달았다.


그날 이후, 격주에 한 번씩 수업을 들으러 갔다. 과제가 주어지면 2주 간 나름대로 방향을 잡아 글을 써본 후,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과거에 있었던 의미 있는 기억들을, 또 누군가는 잊지 않았으면 하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기도 했다. 지금껏 알던 세상과는 사뭇 달랐다. 누구도 섣불리 평가하지 않았고, 서로의 삶과 생각을 가장 우선시 했다. 가르침이 아님 '나눔'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10개월가량의 과정이 끝났을 때, 우린 그 흔한 수료증 하나받지 못했지만 모두 마음속에 무언갈 안고 나왔다.


"문학교실? 꽤 오랜 기간 동안 했네요. 교육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한 면접에서 이 경험을 두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스펙 만을 위해 지원했던 곳이었다면 무슨 역할을 맡았고, 어떤 성과를 냈으며, 맡게 될 직군에 어떤 도움이 될지 암기한 듯 줄줄이 이야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런 기대감, 부담감 없이 찾아간 곳이었기에 어떠한 수식어도 달지 않은 '나'를 기준으로 모든 것들을 대할 수 있었다. 비록 문항별로 말끔히 정리된 증명서는 없었지만, 몇 페이지고 내 감정을 쭈욱 적어내려갈 수 있는 긴 이야기를 얻었다. 그건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을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적합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삶 전체에 대한 스펙을 만들어주었다.


스펙: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

ㅡ네이버 국어사전


그래서 나는, 통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펙'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많은 것들이 담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당장 증명서로 제출할 순 없데도, 당장 경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데도, 나 이거 진짜 해보고 싶었어, 그 마음 만으로 달려드는 것들도 학력, 학점, 토익 못지않은 훌륭한 스펙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하느라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다시 휴학 신청서를 내던 그 날로 돌아간대도 똑같은 선택을 내릴 것 같다. 그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글이라는 것에 이만큼 재미를 붙이지 못했을 테니까.


동기가 말했던 8명이 선택한 무난한 길, 그 이유 하나 만으로 무작정 그 길을 쫓아가고 싶진 않다. 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단 2명이 선택한 길이라고, 설령 그 두 길조차 다른 방향을 향해 있더라도 섣불리 틀린 길이라 판단할 순 없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세상의 시계보다 자꾸만 한 박자씩 늦고 있는, 느림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지만, 이 인생도 제법 괜찮단 생각이 든다. 아마 마음 가는 일을 또다시 만나게 된다면 몇 번이고 다시 속도를 늦출 것 같다. 마음이 똑똑, 말을 걸어올 땐, 그 시기에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자그마한 신호였다. 당장 구체적인 앞날이 그려지지 않더라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단 의미일 수 있다.


무난한 삶이 갑작스레 막막함으로 다가왔던 그때처럼 전혀 생각지 못한 변화들이 불시에 찾아올 거란 예감이 든다. 그럼에도 전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는 건 어차피 느림보 인생을 살아갈 나라서, 이 길도 사람들의 염려만큼 나쁘지만은 않아서, 생각보다 그다지 큰 일이 생기지 않아서다. 다만, 내게 주어질 단계, 단계들을 내 속도에 맞춰 온전히 느끼고 싶을 뿐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나는 느림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휴학계를 들고 망설이던 날 닮은 누군가가 혹시 지금 어딘가에 있다면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인생은 속도 만으로 판단될 수 있는, 그리 가벼운 것이 결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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