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셀프 인테리어, 남들도 하니까 쉽게만 생각했으나 머릿속에 떠도는 공간의 느낌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참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20여 년을 부모님 집에서 살고 6년 정도 월세/전세 집에서 살아온 나는 내 취향을 담은 인테리어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벽, 조명, 가구, 바닥…… 모든 부분에 욕심이 났지만 인테리어의 ‘이응’도 그려본 적 없으니 막막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러던 중 최고요의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휴머니스트, 2017.10)라는 책을 읽었다. 표지에 실린 공간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던지는 질문이 마음에 들어서 서점에 갈 때마다 살까 말까 만지작거리던 책이었다. 드디어 이 책은 내 것이 되었다. 인테리어 관련 서적을 사려고 작정하고 서점에 갔던 건 아닌데 책방 인테리어를 앞두니 아무래도 마음이 쏠렸다. 많은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우연한 시점에 이 책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고 인연을 맺었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는 적절한 타이밍에 내게로 와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공간디렉터인 최고요 작가가 살며 가꿔온 집에 대한 기억, 공간에 대한 신념, 취향을 다져가는 방식을 담아내는 이 책은 ‘자신만의 취향으로 공간을 가꾸는 법’에 대한 전반적인 디렉팅에 가깝다. 인테리어 방법과 노하우를 나열해 소개하는 실용서가 아니지만, 공간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읽을 수 있어 외려 더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매력적인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이니, 작가가 썼던 방식들을 자연스럽게 내 공간에도 적용하게 됐다.
책방 인테리어에 실제로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살고 싶은 내 집, 상상스케치> 챕터였다. 상상스케치는 원하는 공간을 상상해 스케치하되 ‘공간감’을 더해 그려본다는 점에서 실측 도면과는 달랐다.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하며 내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역시 평면도 그리기였다. 공책에 네모난 상자를 그린 후, 책방에서 실측해온 공간 크기를 가로/세로/높이로 표시하고, 거기에 어떤 가구를 어떤 위치에 놓을지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을 떠도는 이미지가 정리되질 않았다. 아무리 여러 번 고쳐 새로 그려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고는 최고요 디렉터가 이야기한 대로 공간감을 더해 입체적인 도면을 스케치해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똑같이 네모난 상자에 가구를 배치한 그림인데, 공간과 가구에 입체감을 더해 그리니 이미지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상상 속 공간을 입체적으로 스케치하다보니 가구가 어떤 질감과 색깔을 가졌는지도 더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얼른 그 공간으로 가고 싶었다.
“벽과 바닥을 그리고, 창문을 그려 넣고 나면 머릿속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이미지들이 춤을 춥니다. 여기에 빛이 들어오니까 책상을 이쪽에 둬야겠다. 의자에 앉으면 왼쪽 뺨으로 햇살이 들고 거기서 바라보는 책장에는 좋아하는 물건들이 진열돼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커다란 식물도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스케치를 해보면 공간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이 답답하지 않게 느껴져요. 그리고 내 공간에 어울릴 것, 어울리지 않을 것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떠오릅니다. 그림을 못 그려도 상관없어요. 직접 그려보는 게 중요한 거죠. 공간을 한번 그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구석구석 어루만진 것처럼 느껴지고,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거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155쪽 중에서
<고요님 집은 어떻게 고쳤나요> 챕터는 책방을 꾸미는 동안 꾸준히 떠올렸다. 기존 공간의 안 좋은 면은 보완하고 좋은 면은 살린다는 내용인데, 이는 곧 공간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인테리어라는 과정이 있던 것을 싹 밀어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멋진 것들을 잘 살리고 보완해내는 과정임을 처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으로 책방을 다시 보니 아름다운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어 살릴 만한 것들이 있나 둘러보았다. 전부터 달려 있던 오래된 똑딱이 조명 스위치가 예뻤다. 떼어버릴까 고민하고 있던 개수대에는 커다란 화초를 넣어두면 멋들어질 것 같았다. 기존의 요소들을 그대로 두며 살리는 게 답이 될 수도 있었던 거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게 주어진 공간을 더 사랑하게 됐다. 오래 들여다보고 무엇이 매력인지 알게 되었으니 별수 있겠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지금 내가 가진 돈과 언제 이사를 나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두고 보았을 때 내가 원하는 컨셉에 맞는 공간이 중요할까, 아니면 이 집의 좋은 부분은 살리고 안 좋은 부분만 보완하는 것이 좋을까. 사람마다 고유한 매력과 각자의 멋짐이 있듯이 집도 지닌 잠재력이 모두 다른 것은 아닐까. 그걸 내가 알아봐주고 나라는 사람과 잘 어울리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127-128쪽 중에서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는 좋아하는 곳에 살지 못하는 사람을 그가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보내려는 물음이 아니라, 그가 사는 바로 그곳을 매력적으로 가꾸는 태도와 시선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질문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 질문을 안은 채 책방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이 공간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 좋아하는 곳에서 일하기 위해 가꾸고 애쓰는 과정, 그것이 바로 셀프 인테리어였다. 나는 작가로부터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정말 내 공간, 나의 책방을 좋아하게 됐다. 그리하여 묻는다.
당신도,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