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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Mar 05. 2018

[프롤로그] 취업 말고 창업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결심

스물아홉, 서울에서 부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두 곳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나는 결혼을 하고 먼 곳으로 왔다.


부산은 내가 살게 될 거라곤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도시였다. 어린 시절은 몽땅 경기도 안양과 산본에서 보냈으며, 대학 공부를 시작하며 처음 서울에 발을 디뎠다. 그마저도 그냥 학교만 다닌 게 아니라 서울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게 첫 책 <더 서울>이 됐다.


졸업을 앞두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시작했다. 사무실은 파주출판단지에 있었는데 집은 여전히 경기도 저 남쪽이라(심지어 예전보다 더 아래로 이사했다) 출퇴근에만 5시간이 걸렸다. 한 달을 통근해보고 결국엔 서울로 이사했다. 3년 후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회사를 옮긴 뒤에도 줄곧 서울에 살았는데, 두어 번쯤 엄마가 본가로 돌아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고, 나도 제법 고민했다. 본가에서 서울 마포구까지는 왕복 3시간 안쪽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었고(5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 다달이 나가는 월세만 모아도 1년에 한 번씩은 더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거란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내 나는 서울에 남기를 선택했다. 서울에 살며 누리고 있던 것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5년간 홍대 반경 안에서 살았던 시간에는 몹시도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작은 클럽에서 매일같이 열리는 공연과 거리의 버스킹, 낮은 조도 아래에 숨어 있는 밥집과 카페에서의 대화, 어느 오후의 한가로운 한강 산책… 그리고 골목골목에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책방들 탐방. 1년을 꼬박 기록하고도 내 안 깊숙이 담고 싶었던 서울 풍경들. 내가 사랑한 것들.


그러다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겨서 나는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났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시에서 취업을 해야 할지, 아니면 출판사들에서 외주로 일을 받아 프리랜서로만 생활할지, 그것도 아니면 창업을 해야 할지 도무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는 도시로 온 나는 지금까지의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다.


이곳에서의 나의 정체성이 잡히질 않으니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공부하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일을 찾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길어지는 생각은 어떠한 답도 내어놓지 못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 회사의 사보 에디터로 일할 수 있는 기회 앞에 서 있었다. 막상 그런 순간이 오니 ‘그냥 앞으로도 이렇게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살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이내 여러 자아가 다투기 시작했다.


잠 못 이루던 밤, 공책을 펼쳐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적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결국 모든 고민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로 가닿았다.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것, 나로 인해 비롯된 시공간을 만드는 것, ‘나’라는 한 인간이 온전한 브랜드가 되는 것. 공책에 그렇게 적으니 수많은 다른 질문들이 구름 걷히듯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그래, 창업을 하자. 내 공간을 열고, 글을 쓰고, 계속해서 책을 만들자.

모든 것에 내 이름을 걸고 책임지고, 온전히 나로, 나답게 살자.

내가 사랑했던 풍경들을 여기에 만들자. 이 도시가 오롯이 내 것이 되게 하자.


다시 어느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눈앞에 두었을 때야, 긴긴 고민을 정리하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는 오롯이 내 손길로 구성하는 시공간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책방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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