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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Apr 20. 2018

[책방창업 4] 이상하고 나쁜 관행, 권리금

갈 곳을 잃은 작은 가게 II

가게 자리를 구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또 다른 부분, 바로 ‘권리금(權利金)’이었다. 


권리금은 임차인(세입자)이 직전 임차인에게 내는 관행상의 돈이다. 해당 부동산에서 장사가 잘되어 수익이 보장될 것을 기대하여 내는 돈으로, 설비에 대한 비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리금을 특별히 규정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권리금을 얼마로 해야 한다’는 원칙 또한 없다. 해당 지역, 점포의 관행, 거래 당사자 간의 흥정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보증금보다 권리금이 훨씬 더 많기도 하다.

세를 얻은 가게가 재개발에 포함돼 철거되면 마지막 임차인은 권리금을 회수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그래서 권리금은 ‘폭탄 돌리기’라고 불린다).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돈이기에 임대인(집주인)에게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 

그야말로 권리금이란 법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얼마를 주고받아야 하는지 원칙조차 없는부르는 게 값인이전 세입자가 다음 세입자의 주머니 속 돈을 꺼내가는이상한 관행인 셈이다.


그래, 한껏 양보해서 권리금이 세상에 등장한 그 취지를 생각해서, 정말 입지가 좋고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이어받거나, 같은 업종의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시설과 노하우를 전수받는다면 뭐 수긍한다고 치자. 하지만 문제는 그 의미가 변질되어 버린 경우가 더욱 많다는 사실이다.

같은 업종을 이어받아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명성과 손님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리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가게의 업종이나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1층이라 자리가 좋으니까’ ‘인테리어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것 같으니까라는 이유를 든다. 

1층을 선점했던 이전 세대가 그 상권의 값어치를 자신의 덕으로 돌려 그것을 금액화하여 받아내겠다는 억지 심보가 아닌가. 인테리어를 이유로 권리금을 요구하는 것 또한 황당하다. 인테리어라 함은 자기 가게의 목적에 맞는 편의를 갖추기 위해 투자한 매몰비용이라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왜 그것을 다음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세입자끼리 주고받은 권리금을 명시하는 계약서가 존재하고(국토교통부), 권리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을 정의하고 원칙을 정한 법률은 없다.


나는 이 불합리한 관행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소하고 싶었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고 문제 삼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직전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주고 일을 시작한 자영업자들에게 권리금은 꼭 다음 세입자에게 받아야 하는 돈이므로, 굳이 문제를 삼아 없애야 할 이유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런 까닭에 이 관행의 굴레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고.


창업 기간 중 알게 된 한 공방의 사장님은 직전 세입자로 인해 권리금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직전 세입자가 자신도 앞 세입자에게 500만 원을 주었다고 우겨서 결국 권리금으로 500만 원을 직전 세입자에게 입금한 후 계약을 진행했는데, 추후 집주인 등 점포 인근의 사람들을 통해 알고 보니 2층인 그 자리에는 애초에 권리금이 없었고 직전 세입자가 처음으로 만들어내 돈을 받아낸 것이라는 알게 된 거다.

뒤늦게 직전 세입자에게 연락했지만, 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고, 그마저도 그 이후에는 연락두절이 됐다고 했다. 이처럼 세입자가 팔 걷고 나서서 나도 권리금으로 돈 좀 벌어보자라는 심보를 부리면 해당 점포의 자리는 악순환처럼 권리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게 분명하다.


권리금에 이리저리 치이며 돌아다니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가게를 시작하는 이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인중개사들조차도 권리금에 문제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 들어가셔서 화이트톤으로 가게 예쁘게 꾸며두시면, 나중에 나가실 때는 지금 권리금보다 더 붙여서 남겨서 나가실 수도 있어요. 그렇게 가실 수 있게 꼭 챙겨드릴게요.”라며 돈놀이를 부추기는 게 아닌가?

공인중개사사무소가 적극적으로 관여해 판을 불리거나 큰 이득을 취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중개사가 내게 권리금을 700만 원이라고 주선해준 1층 자리가 있었다. 위치, 평수, 보증금, 월세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권리금이 마음에 걸렸다. 한데 그날 밤 똑같은 매물이 ‘한방’에 권리금 500만 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내가 문의하기 전에 같은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등록한 게시글이니 나와 상담 직후 가격이 떨어진 것은 아닐 터였다. 배신감이 들었다. 만약 내가 700만 원에 흔쾌히 오케이하고 가게를 시작했다면, 그들이 뻥튀기한 200만 원은 이전 세입자와의 협의로 중개사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내가 권리금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다음날 다시 전화를 해서는 이전 세입자를 잘 설득해서 450만 원까지 권리금을 낮추었으니 얼른 이 기회를 잡으라고 했다. ‘바닥권리금’이라 더 이상은 낮출 수 없다며, 마치 250만 원을 깎아준 것처럼 거짓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권리금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구나’ 더 깊이 깨달았다. 그 공인중개사사무소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권리금 항목.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권리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다보니 자리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권리금이 없는 1층이지만 보증금과 월세가 합리적인 곳, 그런 곳은 정말 세상에 없는 걸까. 그냥 세상의 관습에 굴복하고 권리금이 있는 곳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야 하는 걸까. 딱 봐도 장사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게들도 다 권리금을 달라고 하는데,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나쁜 관행으로 왜 우리 세대는 시작조차 하기 힘든 걸까. 많이 흔들렸다.  

     

저자본으로는 창업 공간을 구하는 시작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나는 권리금이라는 이상하고 나쁜 관행 때문에 세상의 많은 꿈과 가능성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 많이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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