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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Jun 06. 2018

[책방창업 5] 서점은 근린생활시설: 건축물대장

-건축물대장 열람으로 건물용도 확인

재개발과 권리금 등 상가 임대와 관련된 것들에 고통스러워 하던 와중, 다행히 재개발 예정이 아니며 권리금이 없고 보증금과 월세가 내 예산에 맞는 1층 상가를 구할 수 있었다. 오래된 상가지만 구석구석 내 손길을 더해 꾸려나갈 생각을 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바다까지는 거리가 있지만, 언제든 걸어서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공간. 해운대에서 마음에 드는 책방 자리를 발견하고, 하룻밤의 숙고 –숙고라 하기엔 너무 짧았던 고민- 끝에 다음날 오전 임대인(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두르는 감은 조금 있었으나, 내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이 공간을 놓친다면, 앞으로 몇 달을 더 헤매야 겨우 공간을 구하거나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임대인은 은퇴한 어르신이고 세를 놓은 상가와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신 까닭에, 연락을 드린 날 바로 다시 한 번 공간을 둘러보고 가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계약금을 걸러 가기 전에는 ‘민원24(www.minwon.go.kr)’에서 ‘건축물대장등초본’을 발급(열람)해봤다. 실제 계약하게 된 자리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든 부동산을 둘러보는 동안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곤 했다. 왜냐하면 모든 건축물에는 용도가 정해져 있는데(주택, 근린생활시설 등), 이중에 서점은 반드시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는 건축물에서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거나 공인중개사 분과 함께 자리를 볼 때 꼭 해당 건물의 정확한 주소를 기록해두었다가, 집에 돌아와서 건축물대장을 열람해보았다. 


(계약 안 한 곳들) 밖에서 볼 땐 분명 통유리에 시트지가 붙어 있었는데, 안에 들어와보니 나무 판넬까지 붙어 있었던 곳. ?!?!

검토해본 부동산 중 주택에 딸려 있는데 바깥쪽으로 큰 유리 미닫이문을 낸 1층 자리가 있었다. 아마 차고였던 공간을 개조한 것 같았다. 크기는 작지만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서 하루만 고민하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집에 와서 건축물대장을 열람해보니 그곳의 건축물 용도는 ‘주택’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원하고 돈을 낼 의사가 있어도 서점 영업을 할 수 없는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축물 용도가 한 번 정해졌다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집주인의 의사에 따라 해당 건축물 용도에 맞는 규격과 양식 등을 갖추면 용도 변경이 가능하다.


나는 그렇다면 집주인에게 해당 공간의 ‘건축물용도 변경’을 요청해보면 어떨까 공인중개사 분에게 여쭈었다. 하지만 건축물 용도 변경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건축사무소에 도면 작성을 의뢰하는 등 집주인이 부담해야 할 일들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작고 저렴한 공간을 임대하는 경우 월세 등 비용에 견주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되어 대부분 꺼린다고 했다. 결국 그 공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안 한 곳들)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나 혼자 알아서 둘러보고 가라는 곳도 있었다. 낮에도 많이 어두웠고 1층인데도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계약 시 유의해야 할 또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건축물 용도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무허가 건물에 계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근에 괜찮은 카페들이 있어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한 어느 동네를 도보로 탐방하다가 빨간 벽돌이 예쁜 1층짜리 건물을 발견했다. ‘이렇게 괜찮은 자리가 비어 있다니!’ 흥분해서 문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로 잽싸게 전화를 걸었다. 이전 임차인과 통화 후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데 그 자리가 ‘무허가 건물’이라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건물은 큰 상가 뒤편의 남는 자투리땅에 집주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용도로 지어 올린 구조물이었다. 처음엔 집주인이 단순히 개인 창고로 사용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상가임대를 내놓은 것이어서, 해당 건축물이 건축물대장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개인 작업실이나 사무실의 경우라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상가의 경우 물건을 사고파는 상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집주인이 설명했다. 무허가 건물임을 아는 주변 상인 등으로부터 민원이 들어가는 경우 한동안 영업이 정지되거나 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역시 임대인이 앞으로 그 자리를 상가로 계속 세를 줄 작정을 하고 건축물을 신고하고 용도를 설정하지 않는 한 서점 영업이 불가능했다. 그 자리 역시 포기해야 했다. 




이런 모든 경우의 수를 제하고 다행히 내가 구한 자리는 건축물 용도가 ‘점포’로 지정되어 있어 서점을 열 수 있는 곳이었다. 앞서 서점은 ‘근린생활시설’로 지정되어 있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구청 건축과에 확인해보니 ‘점포’로 설정이 되어 있는 경우도 서점 영업이 가능하고 했다. ‘점포’의 경우 ‘근린생활시설’ 개념을 적용하기 전에 쓰던 용어이기에 ‘점포’가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한다는 것. 계약하려는 자리가 워낙 오래된 건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점포’로 용도 허가를 받은 것일 뿐 사업자등록과 영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무조건 옛날 용어가 표기되어 있지는 않다. 낡은 건물이지만 증축이나 용도 변경 등을 이유로 나중에 ‘근린생활시설’로 변경 표기된 곳도 있었다.)


근린생활시설은 주택가와 인접해 주민들의 생활에 편의를 줄 수 있는 시설물로, 제1종/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한다.


건물의 용도까지 확인을 마치니 머릿속에 책방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임대차계약을 앞두니, 역시 집주인이 여러 명과 동시에 계약을 했다든지, 갑자기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고 집주인이 도망을 친다든지, 등등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사기 사례들이 떠올랐고, 보증금을 떼이고 첫 창업을 망치는 온갖 상상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보여주는 동안 짧게 나눈 대화로는, 집주인은 보증금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도망을 칠 일도 없어 보이는 지긋한 어르신이었지만, 그런 느낌만으로 임대를 놓는다고 가게 문에 쓰여 있던 전화번호로만 연결된 한 사람을 덜컥 믿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진짜 이 공간의 주인인지, 이름과 신분이 명확한 사람인지 확인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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