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알아낸 행복의 본질
누군가 아이를 낳아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아빠!
아주 오래된 광고 중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늦은 밤, 아빠가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데, 핸드폰 너머로 아기가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을 하자 너무도 감동적인 표정을 짓는 그런 광고.
그 광고가 아니더라도 SNS 상에서 아기가 처음으로 엄마 혹은 아빠를 말했을 때, 이걸 들은 부모의 감동 어린 리액션은 많이들 봐왔을 것이다. 나 역시 막연하게 그런 감동적인 순간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티거의 경우, 묵언수행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득도한 듯이 "엄마!" 하지 않았다. 이것이 엄마인지 옹알이인지 헷갈릴, "으아, 어아"를 수십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 번의 연습 끝에 "엄마"를 한 터라, 언제 첫 엄마를 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 육아의 본질이 그런 것 같다.
행복한 순간, 감동적인 순간 하나를 탁 꼽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매 순간 티거 때문에 웃고, 자주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이란,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남편이 검지손가락 하나를 뻗어 티거 앞에 들이밀었을 때, 이를 유심히 본 티거가 똑같이 검지손가락을 뻗어 아빠의 손가락 끝에 조심스레 맞대는 순간, 남편은 웃음을 터트리고, 이에 티거도 덩달아 웃고, 이 모습을 보는 나까지 웃게 되는, 그런 순간.
또 다른 행복은 이렇다. 잠들기 직전,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누운 티거가 작은 손가락을 뻗어 내 눈, 코, 입을 하나씩 가리킬 때, 그때마다 내가 "눈, 코, 입" 이야기해 주고 티거는 그걸 가만히 들을 때. 그런 티거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이건 티거 예쁜 손"이라고 하자 티거가 반쯤 감긴 눈으로 배시시 웃을 때.
이렇게 소소한 순간들이 일상 곳곳에 스며든다. 이 순간들은 너무 소소해서, 그 순간은 너무 행복하지만 돌아서면 쉽게 잊고 만다. 역사적인 순간, 극적인 순간은 아니니까.
그런데 최근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 순간들이야말로 행복의 본질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이라는 책인데, 거기서 행복에 대해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행복은 달려가면서 인고해야 하는, 그래서 끝내 어느 순간에 만나야 하는 목표가 아니에요. 오늘 하루하루 우리가 소소하게 느껴야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행복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일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혼 친구들이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냐고 물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냥 많이 웃어"라고 답하곤 했다. 이제 답을 정정해도 될 것 같다. 행복하다고, 매일 틈틈이 행복을 느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