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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좋아 Oct 01. 2024

[단편소설] 땅 판 돈 1

땅 판 돈을 자식들에게 증여하는 이야기

딸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운전대를 잡았다. 토요일 점심때 서울 안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인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에 도착한 우리는 차 댈 곳을 찾으러 주차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했다.

“다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짜증과 비아냥이 섞인 말투로 내가 말했다.

아내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차창 밖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나가는 차 한 대를 발견하고는,

“여보, 저기.”, 하고 소리를 지르며 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아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주차를 할 수 있어서 아내와 백화점을 돌며 끓어오를 짜증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보, 아버님 무슨 과일 좋아하지?”

평소라면 1층부터 훑고 지나갔어야 하는데, 아내는 곧바로 식품 코너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글쎄.” 나는 축지법을 쓰는 것 같은 아내의 뒤를 바짝 쫓으며 말했다.

“아니, 자기 아빠가 뭐 좋아하는지도 몰라?” 아내의 말에 살짝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가 어떤 과일을 좋아했는지 생각해봤다. 언뜻, 고향의 밭 가장자리에 있던 감나무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가을철에 주렁주렁 열린 감을 따서 껍질을 벗기고 말려서 곶감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어릴 적에 형과 나, 동생은 아버지가 만든 곶감을 겨우내 먹곤 했다.

“곶감.”

내 말을 듣고 아내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거 말고 더 비싸고 좋은 과일 생각나는 거 없어?” 아내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애플망고를 만져보며 말했다.

“그냥 이따가 내려가면서 휴게소에서 지역 특산물 같은 거 사면 안 돼?”

“이걸 우리 집에 가져가는 거면 그냥 내가 결정하지. 자기 아빠한테 드리는 건데 본인이 신경 좀 쓰지?” 아내가 딸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칠 때처럼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니다. 그냥 한우로 사야겠다. 형님이랑 아가씨는 뭐 들고 오려나.” 아내는 정육 코너로 방향을 틀었고, 나는 말없이 뒤따랐다.


아내는 한우 선물 세트만 결재하고 배고프다는 나를 뒤로한 채, 곧바로 주차장을 향했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학원을 마친 아이를 태워 곧바로 고속도로로 향했다. 영문도 모르고 할머니 댁에 가게 된 아이가 왜 가는 거냐고 물었다.

“응,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아영이 보고 싶으시대.” 내가 아이에게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는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방학이 되면 나의 고향집에서 열흘씩 보내곤 했다. 여름 방학이면 사촌들과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멱감으며 놀고, 겨울 방학 때는 물을 가둬서 얼린 논에서 썰매를 타며 놀았다. 나도 어린 시절에 형과 동생이랑 그렇게 놀곤 했다. 아이가 나의 어린 시절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향집에 보낸 것이다.

“아니, 할아버지가 우리 식구랑 큰아빠네 식구, 고모네 식구까지 다 내려오라고 했어. 무슨 할 말이 있대.”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 아이가 되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의미로 곁눈질했다.

“응, 할아버지네 논이랑 밭 있잖아. 아영이도 알지? 너도 거기서 겨울에 썰매 타고 놀았잖아. 그 땅에 무슨 공장을 짓는다고 팔게 되었대. 그래서 가족회의를 한다고 할아버지가 모두 모이랬어.” 아내가 말했다.

“그럼, 미영이, 재영이 언니도 오는 거야?” 아이가 물었다.

“당연하지. 미영이랑 재영이도 온대. 고모네 하루도 온대. 다들 벌써 출발했을걸?” 아내가 아이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땅을 판다는 얘기는 얼마 전 형에게 처음 들었다. 산업단지를 만든다고 토지를 수용한다는 연락을 받은 아버지는 형과 먼저 상의했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던 아버지는, 힘에 부쳐 농사를 포기하거나 늙고 병들어 죽는 마을 사람들의 땅을 조금씩 조금씩 사들여서 제법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땅에 농사를 지어서 형과 나, 그리고 여동생의 대학 교육까지 뒷바라지했다. 아버지는 이제 손주가 네 명이고, 여든을 갓 넘겼으며, 아직 건강하지만 농사일이 점점 힘에 부쳤다. 형은 좋은 기회이니 땅을 무조건 팔라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버지 연세에 그 넓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마을 근처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땅을 팔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문의만 들어오고 실제로 마을 사람들 중 땅을 판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기력이 쇠퇴하지 않은 터라 아버지는 결코 땅을 팔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의 설득에 아버지는 결국 땅을 팔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세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읍내 세무사에게 들렀더니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아버지 소유인 상태에서 땅을 팔면 시세 차익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내게 된다. 땅을 팔기 전에 토지 지분을 아들, 딸에게 미리 증여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며느리랑 사위에게 지분을 증여하면 증여세만 내면 되고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서 절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며느리들과 사위에게 토지 지분을 증여하기로 마음먹었고, 필요한 서류를 떼오라고 말한 것이다.


“얼마나 주시려나? 아주버님에게 뭐 들은 것 없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래봐야 시골 땅이야. 그거 얼마나 된다고.” 나중에 아내가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기대감을 낮추고 싶었다.

“잠시나마 난생처음 땅 주인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설렌다.” 아내가 말했다.

“왜, 우리 아파트 있잖아. 그거 절반은 당신 거잖아. 아니다. 반의반이구나 절반은 은행 거니까.” 내가 말했다.

“이상하게 아파트 땅은 실체가 있는데도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모르는 사람들하고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가? 내 것처럼 안 느껴져.” 아내가 말했다.

“형한테 뭐 하나 들은 거 있어.” 내가 아내를 힐끔 보며 말했다.

“뭔데? 뭐라고 했는데?” 아내가 나를 향해 몸을 틀었다.

“휴게소에서 밥 먹으면서 말해줄게.” 배가 고팠던 나는 첫 번째로 보이는 휴게소로 빠져서 들어갔다.

나는 설렁탕에 밥을 말아서 허겁지겁 먹었다. 아내는 국물이 매콤해 보이는 육개장을, 딸아이는 돈가스를 먹었다. 아내는 내 앞에 앉아서 정강이를 앞발로 툭툭 건드렸다. 내가 바라보자 아내는 눈을 치켜떴다.

“지분의 상당 부분은 엄마에게 증여한대.”

“어머님께로?”

“응, 엄마한테.”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해?” 아내는 내게 역정을 냈다.

“왜?”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핸드폰을 보며 돈가스를 먹던 딸아이도 엄마의 언성이 높아지자 긴장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머니 고기 잘 안 드시잖아. 한우 괜히 샀네.” 아내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형네 차가 대문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루 한구석에 형수님이 사 온 걸로 보이는 포도 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아내는 그제야 시어머니가 포도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찡그린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그 위에 백화점에서 사 온 한우 세트를 올려놓았다. 나는 형과 아버지에게 인사했고, 아내는 형수님과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조카 미영이와 재영이는 이란성 쌍둥이인데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어릴 때는 서로 똑같아 보였는데, 커가며 달라 보였다. 조카들은 내게 인사하더니 곧장 아영이에게로 갔다. 10대 여자 사촌들은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했다.

좀 이따 여동생네 식구도 왔다. 매제는 한 손에 아들 하루의 손을 잡고 있었고, 동생은 한 손에 포도 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포도를 본 아내는 순간적으로 아까와 비슷한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큰 웃음을 보이며 동생에게 인사했다.

“아가씨, 왔어요? 우리도 방금 왔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하루는 여자 사촌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했다. 남녀의 문제를 떠나서 하루는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아이였다. 하루는 제 아빠 뒤에 서서 사촌들 쪽을 바라봤다. 아영이가 하루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자 하루는 매제의 뒷꽁무니에서 슬며시 나왔다. 동생은 아내가 사 온 한우 위에 포도 상자를 올려놓고는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한 방에 모여 놀았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다른 방에 모여 앉았다.

“떼오라는 서류는 다 떼 왔지? 도장도 가져왔고?” 아버지가 방에 빙 둘러앉은 며느리들과 사위에게 물었다.

다들 서류와 도장을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내가 여기서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까, 나중에 각자 지분만큼 통장으로 입금될 거야. 증여세도 나올 텐데 그건 받은 돈에서 알아서 내라.”

며느리들이 ‘네’하고 대답했다. 아내는 얼마나 받게 되는 건지 궁금해서 죽겠다는 마음을 꾹 숨기며 함구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말을 이었다.

“각자 얼마나 받게 되는지는 서로 몰랐으면 좋겠지만, 만약 알게 되더라도 별수 없다. 그냥 모른 척 살아. 싸우지들 말고. 그리고 너희들에게 주고 남은 돈은 모두 다 너희 엄마에게 줄 거다. 아무래도 너희 엄마가 나보다 더 오래 살 테니. 그러니까 앞으로 엄마에게 잘해라.”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나는 시집와서 이제까지 너희 아버지가 주는 돈으로 너희들 키웠다. 이 집에 50년 가까이 살았어도 내 앞으로 된 재산은 한 개도 없었어. 나는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없었어. 땅 팔고 남은 돈은 내가 다 움켜쥐고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 이 어미에게 잘해라. 다들 알겠지?”

어머니는 지난 세월의 고생을 아버지로부터 모두 보답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주름진 얼굴이 환해지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어머니의 웃음은 모두를 웃게 했다.

“엄마, 축하해. 우리 엄마 뒤늦게 부자 되셨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축하드려요.” 아내도 웃으며 말했다.

“배고픈데 이제 저녁이나 먹자.” 형이 말했다.

“동서가 고기 사 왔던데, 같이 구워 먹으면 되겠네.” 형수님이 말했다. 그날, 가족들은 마루에 둘러앉아 아내가 산 한우를 맛있게 구워 먹었다. 어머니는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맛깔난 된장찌개를 내왔다. 아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입으로 들어가야 했을 한우가 온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쓰린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날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밤에 우리 형제는 아버지가 담근 인삼주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식구대로 사랑방, 건넛방, 다락방으로 흩어졌다. 늘 그렇듯이 형네 식구가 사랑방, 우리가 건넛방, 동생네가 다락방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어머니는 자식과 손주들을 먹이기 위해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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