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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좋아 Oct 04. 2024

[단편소설] 땅 판 돈 2

땅 판 돈을 자식들에게 증여하는 이야기

고향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와서 복도 끝 계단으로 향했다.

“그거 입금됐어.” 아내가 말했다.

“얼마나 주셨니?” 내가 물었다.

“그게...” 아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많아? 아님, 적어?” 내가 재차 물었다.

“... 적어. 생각보다는. 당신이 아가씨에게 한번 물어볼래? 형님한테는 내가 물어볼게.”

“그래서 얼만데?”

아내는 내게 액수를 말해줬다. 나는 제법 큰 돈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의 목소리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았어. 내가 이따 한번 물어볼게.” 나는 이따가 퇴근하며 동생에게 매제가 얼마나 받았는지 넌지시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퇴근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동생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서로 얼마 받았는지 몰랐으면 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나에게 동생에게 전화해봤냐고 물었다. 나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아직’이라고 답했다.

“형님은 두 배야, 두 배. 우리의 두 배를 받았다고.” 아내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이건 너무 하잖아.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큰아들이라고 두 배를 주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아내의 목에 핏대가 섰다.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그런가 보지 뭐.” 나는 애써 아버지를 대변했다.

“당신, 시댁에 뭐 잘못한 거 있어?” 아내가 따지듯 물었다.

“없어. 그런 거. 알잖아. 나 착한 아들인 거.” 나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 이 집 대출금에, 아영이 학원비에, 돈 들어갈 곳이 한둘이 아닌데. 당신 차도 바꾸고 싶어 했잖아. 괜히 좋다 말았네.” 아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형수님이 왜 우리의 두 배를 받았는지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형과 형수님이 결혼할 때, 아버지가 형에게 보태준 돈은 형수님의 친정에서 보태준 돈에 한참 모자랐다. 형수님네 친정은 꽤 잘 사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그 점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형수님에게 그걸 보상해주려고 한 건 아닐까? 이걸 아내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전화가 걸려 왔다. 바로 동생이었다. 

동생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언니 얼마 받았대?”

나는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옆에서 아내가 아가씨 얼마 받았는지 물어보라고 손짓, 발짓, 몸짓까지 다 하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아내가 받은 액수를 말하고, 재빨리 너네는 얼마 받았냐고 되물었다. 이번엔 동생이 뜸을 들였다. 그리고 동생에게 들은 액수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곧바로 얼마냐고 물었다. 그때 아영이가 와서 우리의 대화가 중단됐다.

“엄마, 나 배고파. 밥 줘.” 아이는 두 손으로 주린 배를 잡고 있었다.

“아영아, 엄마가 아빠랑 대화 중이잖니? 이따가 줄게. 네 방에서 공부 좀 하고 있어. 너 영어 학원 숙제 없어?” 아내가 아이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흥, 칫. 엄마는 맨날 공부하래.” 아이가 대꾸했다.

그 사이, 나는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거짓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사실대로 말하면 아내의 기분이 나쁠 테고, 거짓말을 하자니 아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입을 맞춰야 한다. 이번엔 나도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과 나는 둘 다 집이 있지만, 동생네는 전세로 살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맞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동생은 집에서 살림만 해서 그런가? 온갖 생각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답을 채근하는 아내에게 나는 엉겁결에 거짓말을 했다.

“우리랑 같은 금액이야.”

아내는 그 사실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네랑 아들네랑 똑같이 주는 게 말이 돼?” 아내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저녁을 차리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나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아영이 엄마에게는 너네가 우리와 같은 금액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동생이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첫 번째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다. 아내는 시댁에 가져갈 선물로 사과와 배 세트를 샀다. 알이 무척 굵고 실했다. 설 전날에 비교적 일찍 출발한 우리는 형제 중에 가장 먼저 고향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마루 한쪽에 선물을 놓았다. 나는 부모님께 인사하고 아버지가 판 땅이 어떻게 돼가나 볼까, 하고 마을 어귀로 걸어 나갔다.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공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땅을 파던 중장비들도 설을 쇠느라 멈춰 서 있었다.

‘이곳에 공장들이 들어서면 마을이 활력을 좀 되찾으려나?’ 우리 형제들처럼 젊은 사람들은 다 외지로 나가서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나는 나온 김에 어릴 때 눈썰매를 탔던 뒷동산에 올라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형과 동생네 식구들이 벌써 와 있었다. 형은 아버지와 이야기 중이었고, 여자들은 마루 한쪽에서 전을 부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루 반대쪽에는 아내가 사 온 선물 위에 형과 동생네가 사 온 걸로 보이는 한우 선물 세트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날 밤 우리 식구는 건넛방에서 잤다. 설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아내의 협박에 아영이는 일찍 잠들었다. 아영이가 잠들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말을 쏟아냈다.

“당신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왜 아가씨네가 우리랑 똑같이 받았다고 그때 거짓말했냐고. 아까 전 부치다가 형님에게 듣고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표정 관리 안 돼서 진짜 죽을뻔했어. 나 어떡해.” 아내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알면 기분 나쁠까 봐.” 아내의 울먹임 때문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나도 동생과 전화하며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가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기분이 풀렸다. 그 돈 없이도 우리는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아내와 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서 일하며 월급도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형보다 많이 받고 있다. 아파트 대출금이 많이 남았지만, 꾸준히 갚고 있고 퇴직하기 전에 다 갚을 수 있다. 자식이 한 명뿐이라서 형네보다는 아무래도 돈이 적게 들어간다. 그리고 동생네는 매제가 공무원이라 박봉에 외벌이로 아직 집도 못 사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어느덧 우리보다 형과 동생네가 돈을 많이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자기합리화인지 모른다. 아내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한들, 그래도 세 자식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것이 더 올바른 가치관과 처사라고 말할 것 같았다. 나의 형과 동생이지, 아내의 오빠와 동생이 아니니까.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서 어머니가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하는 걸 도왔다. 나는 좀 더 자다가 형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후딱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욕실은 한 개뿐인데 씻을 사람이 많으니 서둘러야 한다. 늦으면 겨울 아침 추위를 뚫고 마당에서 차가운 수돗물로 씻어야 한다. 부엌에 가보니 떡국 끓이는 냄새가 진동했다. 제기에 음식들을 담느라 아내와 형수님의 손이 바빴다. 마루에서는 아버지가 차례상 뒤에 놓을 병풍을 세우고 있었다. 이제 막 일어난 아영이와 형네 아이들도 차례로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생네 식구만 아직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락방 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말했다. 하루가 나오고, 그다음 매제, 그리고 동생이 나왔다.

“야, 너는 일찍 좀 일어나서 일손 좀 거들지. 언니들 일하고 있는데.”

동생네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시어머니가 연로해서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명절 때마다 친정인 고향집에 온다.

“아이, 친정에선 나도 좀 쉬자.” 동생은 내게 눈을 흘기며 욕실로 향했는데 조카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마당으로 갔다. 

차례상이 다 차려졌다. 먼저 아버지가 술잔을 채우고 남자들부터 차례상을 향해 절했다. 형과 내가 잔을 한 번씩 더 채우고 그때마다 남자들이 절을 했다. 아버지는 사위한테도 잔을 채우라고 권했다. 매제는 무릎 꿇고 앉아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모두 절을 했다. 다음은 여자들 차례였다. 보통은 어머니가 술잔을 한번 채우고 여자들이 절한 다음 차례는 끝난다. 어머니는 자신의 순서가 끝나자 차례를 마무리하려는 아버지를 제지하고 아내를 향해 말했다.

“아영이 엄마도 한번 따라 봐라.”

“네? 저요?” 아내는 놀라며 형수님을 바라봤다.

순서가 있다면 형수님이 우선일 텐데,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어머니 말대로 무릎 꿇고 앉아서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동안 보기만 했지, 처음 해보는 거라 손이 많이 떨려 보였다. 아내가 채운 술잔이 차례상에 오르자 여자들이 다시 절했다. 나는 어머니가 형수님에게도 시키려나 생각했는데, 이대로 차례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차례상에 둘러앉아 떡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형과 아버지는 차례상에 있던 술을 음복했다. 형이 나에게도 권했으나 나는 아내에게 주라고 손짓했다. 아내는 본인이 따른 술잔의 술을 기꺼이 마셨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아니나 다를까 막혔다. 아영이는 뒷좌석에서 잠들었고, 조수석에 탄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꺼낸 말이 형수님과 동생의 뒷담화였다.

“지난번 봤을 때보다 형님은 살이 더 찌고, 아가씨는 더 마른 것 같지 않아?”

“난 잘 모르겠는데. 형수님은 워낙 먹는 걸 좋아하니까. 경은이는 하루 키우느라고 힘든가 보지. 걔는 하루한테 친구 만들어준다고 엄마들 모임이란 모임은 빠지지 않고 다 나가나 보더라.” 나는 아내를 힐끔 보며 말했다.

“아냐, 확실히 형님은 더 뚱뚱해졌고, 아가씨는 더 말랐어. 두 사람 다 관리 좀 하지.” 아내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적당히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아내가 두 사람에 비해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받은 돈이 더 적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내는 뜬금없이 화제를 바꿨다.
“어머님이 왜 나만 차례상에 술을 올리라고 한 것 같아? 형님은 빼고 말이야.”

“글쎄, 당신이 한 번도 안 해봐서 시킨 것 아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난 어떤 통쾌함을 느꼈어. 형님이랑 아가씨는 제치고 나한테만 술을 올리라고 한 것 말이야. 마치 어머님이 땅 판 돈 나머지는 다 너에게 주마, 하는 약속 같이 느껴졌단 말이야.” 아내는 희망찬 연설을 하는 대선 후보처럼 허공에 손짓하며 말했다. 어젯밤 울먹이며 말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의심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이번에는 아내 편을 들 수 없었다. 아내가 그 돈을 받게 된다는 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영이를 만났다. 아영이와 같이 집으로 들어온 나는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후딱 옷을 갈아입었다. 냉장고를 열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레토르트 어묵탕이 눈에 띄었다. 날씨도 추운데 잘됐다는 마음에 얼른 꺼냈다. 나는 조리 방법을 잘 읽고 그대로 따라서 하기 시작했다.

“아빠 그거 하는 동안 난 티비 좀 볼게.” 아영이가 소파에서 리모콘으로 티비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여자 아이돌 가수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식사 준비에 몰두하느라, 그리고 아이돌 음악 소리에 묻혀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내는 거실에 발을 내딛자마자 티비를 보고 있는 아영이에게 한소리를 했다.

“너 누가 티비 보고라고 했어? 얼른 티비 꺼.” 아내는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 학원 갔다 와서 잠깐만 보는 거야.” 아영이가 항변했다.

“내일모레 중학생인 애가 어떻게 하면 공부할지를 생각해야지, 맨날 티비만 봐서 어쩔래? 너 영어 학원 숙제 없어?” 아내는 특유의 빠른 말로 몰아부쳤다.

“독재자.” 아영이가 티비를 끄며 말했다.

“너 대학 들어갈 때까지 계속 독재할 거야. 그런 줄만 알아.”

“누가 대학 간대? 이제부터 나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야.” 아영이는 정말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

“얘가..., 너, 대학 안 가기만 해봐. 그럼 네 인생도 끝이야. 이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내도 언성을 더 높이며 말했다.

“왜? 엄마, 아빠 죽으면 이 집 내가 물려받을 거 아냐? 서울에 집 한 채 있으면, 알바라도 하면서 어떻게든 먹고 살겠지. 나 말고 이 집 물려받을 다른 사람도 없잖아.”

“허, 참. 얘가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너 대학 안 가면 이 집 너한테 절대 안 물려줘. 팔아서 엄마, 아빠가 다 쓰고 죽을 거야.”

“치사하게, 자기도 할아버지한테 땅 판 돈 받았으면서.” 아영이는 아내에게 눈을 흘겼다.

“너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아내가 아영이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됐어. 두 사람 다 그만. 아영이는 방에 들어가. 당신도 이제 그만해.” 나는 더 이상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줄 수 없어 중재했다. 아영이는 씩씩거리며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아내는 그런 아영이를 보며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에... 흑흑, 세상에...” 아내는 울먹이기만 할 뿐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보글보글 끓던 어묵탕이 냄비 뚜껑을 들썩이며 넘쳐흐르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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