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아주 많이 먹는 두 소년이 있었습니다. 둘 다 또래 친구들보다 덩치가 매우 컸습니다. 친구들은 그 두 소년을 ‘왕밥’이와 ‘두밥’이라고 불렀습니다. 왕밥이는 급식을 먹을 때 한 번에 많은 양의 밥을 퍼왔고, 두밥이는 정량의 밥을 두 번 퍼와서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밥을 많이 먹는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소년은 서로 친해졌고, 식당에서 늘 마주 보고 앉아서 같이 식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밥이가 두밥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나처럼 한 번에 밥을 많이 퍼오는 게 어때? 두 번 가기 귀찮지 않아?”
그러자 두밥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냥 두 번 퍼와서 먹는 게 좋아. 혹시 내가 처음부터 많이 펐다가 뒷사람이 못 먹으면 어떡해. 나는 사실 음식이 남았을 때만 두 번 먹는 거야.”
하지만 음식이 모자란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두밥이는 언제나 두 번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두밥이의 깊은 마음에 왕밥이는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급식은 먹고 싶은 만큼 담되, 남기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기 때문에 왕밥이는 한 번에 많이 담을 수 있는 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왕밥이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변함없이 한 번에 밥을 많이 퍼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영양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배식 규칙이 바뀌었습니다. 그건 바로 정량의 밥과 반찬을 배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더 먹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음식을 받은 후, 음식이 남을 때만 더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왕밥이는 두밥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배식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음식을 한 번 더 받아와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놀림이 섞인 말투로 왕밥이를 이제 ‘두밥 투‘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모든 친구들에게 정량의 밥과 반찬을 배식하려면, 영양사 선생님과 조리사들이 동원되어서 배식대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정량 배식을 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었지만, 노동량이 늘어나 힘이 듭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영양사 선생님은 정량 배식 대신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자율적으로 담되, 한 번만 담을 수 있도록 규칙을 다시 바꿨습니다. 새로운 규칙이 생기자 ’두밥 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왕밥’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담아왔지요. 그러나 음식을 두 번 담을 수 없게 된 두밥이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곧 결심했습니다.
음식을 식판에 가득 담아온 왕밥이는 두밥이의 식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네가 음식을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담아온 것은 처음 봐.”
친구들은 그때부터 두밥이를 ‘왕밥 투’라고 부르며 놀렸습니다. 두밥이는 새로운 배식 규칙을 따르면서 배부르게 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만, 친구들에게 ‘왕밥 투’라고 놀림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두밥’이라는 별명은 남는 음식을 더 먹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데 기여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좋아했지만, ‘왕밥 투’라는 별명은 욕심만 가득한 사람 같아서 싫어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왕밥 투’가 된 두밥이는 식판에 담아오는 음식의 양을 점점 줄였습니다. 이윽고 정량 배식을 받던 그때와 똑같은 양의 음식만 담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왕밥이가 물었습니다.
“그것만 먹고 배가 고프지 않아?”
“배가 고픈데 그냥 참아보려고.”
많은 나날이 지나도, 두밥이가 담은 음식의 양은 정량 배식할 때와 같았습니다. 왕밥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겨우 그것만 먹고 배고프지 않아?”
“그냥 살이나 빼볼까 하고.”
친구들은 그 소년을 더 이상 ‘왕밥 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정량만 받아온다고 해서 ’정밥‘이라고 부르다가, 곧 자신들도 모두 ’정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별명 부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원래 두밥이었던 소년은 ’두밥‘, ’왕밥 투‘, ’정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없어졌고, 결국 평범해졌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또 여러 나날이 지났지만, 왕밥이와 과거에 두밥이라고 불린 소년은 여전히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습니다. 밥을 아직도 많이 먹는 왕밥이는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정량의 밥을 한 번만 먹는 두밥이는 제법 홀쭉해졌습니다. 친구들은 이제 그 소년이 두밥이였던 시절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늘 같이 밥을 먹어 왔던 왕밥이만이 그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도 두밥이처럼 살을 좀 빼볼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이내 고개를 절제절레 젓습니다. 반면에 두밥이는 왕밥이를 보며 내가 살을 너무 뺐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난생처음 홀쭉해진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바로 당분간 급식실의 운영이 중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급식 대신 당분간 외부에서 도시락을 받아서 학생들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왕밥이는 어쩔 수 없이 정량의 도시락을 먹게 되어 불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두밥이는 정량의 식사가 이제 익숙했기 때문에 불만 없이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왕밥이는 눈에 띄게 덩치가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자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해졌습니다. 친구들은 누가 왕밥이고, 누가 두밥이었는지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소년들이 정량의 도시락만 먹는 ’정밥‘이가 되었으니까요.
학교에 납품하게 된 도시락 가게 사장님은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해 반찬들을 맛있게 만들어 도시락에 담았습니다. 도시락은 급식보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어느덧 그 누구도 언제부터 다시 급식이 시작될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다시 급식이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딱 한 명, 한때 ’왕밥‘이라고 불렸던 소년만 빼고요.
“도시락이 맛은 있지만, 나는 배가 고프다구.”
왕밥이는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을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하는 친구들은 아무도 왕밥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두밥이도 왕밥이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밥이는 오늘따라 밥맛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밥이에게 기쁜 소식이 들렸습니다. 학교에서 급식실을 다시 운영하면서 도시락 주문을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밥을 많이 먹을 수 있게 된 왕밥이는 기뻤지만, 맛있는 도시락 대신 다시 학교 급식을 먹게 된 소년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급식을 먹게 된 첫날, 왕밥이는 예전처럼 음식들을 많이 퍼왔습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과거에 ’왕밥‘이었던 사실을 기억해냈습니다. 급식을 한 술 떠먹은 왕밥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만큼 맛이 없습니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생각하며 다시 한 술 떠서 먹습니다. 역시 맛이 없습니다. ’그동안 맛있었던 도시락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왕밥이는 가득 퍼온 음식들을 다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급식실 여기저기서 ’맛없다’는 불평이 들립니다. 결국 왕밥이는 밥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습니다. 왕밥이가 밥을 남긴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첫날만 그런 게 아니라 둘째 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음식 맛이 예전만 못했습니다. 왕밥이는 이제 정량만 떠오게 되었습니다. 밥을 많이 떠와봤자 남기기만 할 뿐이니까요. 결국 왕밥이도 예전에 두밥이가 변한 것처럼 ‘정밥’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