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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침 한 시간

이른 아침 한 시간 동안의 자유에 대한 찬사 #도시인의 월든

by 우유좋아

해가 긴 여름에는 동쪽으로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빛을 보고 잠결에 몇 시쯤인지 짐작하곤 했다.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지만 침대에선 안경 없이도, 반쯤 뜬 한쪽 눈으로도 환해지는 창문이 보인다. 그러나 어느덧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자 일어날 시간이 되어도 창문은 환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내 생체 시계는 밤새 돌아 어김없이 깨어날 시간이 왔음을 알린다. 5시 반 정도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데 밤 10시 반 경에 잠자리에 드니까 대략 7시간 정도 자는 셈이다. 눕자마자 곧바로 잠들고 중간엔 깨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밤 11시 이후에 자면 아침 6시는 되어야 일어나니까 생체 시계라는 게 참 정확하다. 11시가 지나면 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대개 그전에 잠든다. 나이가 들면서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자는 것, 그 속에서 나의 자연스러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좋아졌다.


20대인 대학원생과 점심 식사 후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일찍 자면 밤시간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모르는 나만의 아침 세계가 있어.”

가족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건 아닌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차가운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고, 잠이 완전히 깨기를 기다린다. 그 후에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책을 읽거나, 동네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마당에서 정원의 나무나 화초들을 돌보기도 한다. 이제 겨울이 와서 추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식구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완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도 좋다. 초등학교 일학년 딸 아이가 “아빠, 잠깐 일로 와 봐.”, “아빠, 이것 좀 도와줘.”, “아빠, 나 잠들 때까지 방에 같이 있어 줘.”, 하며 나를 찾지 않는 소중한 나의 시간이다.


요즘 아침에 읽고 있는 책은 <도시인의 월든>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좋아하는 박혜윤 작가가 쓴 책이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숲속에 살며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썼다. 그녀의 전작인 <숲속의 자본주의자>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작이 작가의 삶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라면 이 책은 작가만의 철학으로 채색을 하여 완성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좋아하는 루소의 문장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을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다시 읽는 중인데 이른 아침엔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오늘 아침엔 작가의 네 식구가 모두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에 대해서 읽었다. 작가의 집에서는 초등학생, 고등학생 딸들도 각자 집안일을 당연히 한다. 집안일은 하찮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라는 작가의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도 딸에게 아침을 다 먹은 후 식기들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라고 말했다. 딸아이가 순순히 따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집안일을 좀 가르치고 시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도 집안일을 평생 함께 하는 삶의 일부로, 더 나아가 작가의 가족처럼 놀이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작가가 책에 소개한 소로의 <월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월든은 전에 읽어봤고 소장하고 있지만 몇 페이지인지 기억이 나진 않으니 작가의 인용을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노동하는 인간은 매일 진정한 본모습을 찾을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가장 인간다운 관계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시장에서 그의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계가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시간이 없다. 자신의 지식을 끊임없이 써먹어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무지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무지를 아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소로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직장으로 출근했다가 돌아올 때까지는 마치 엘레베이터를 타고 고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 서로 폐 끼칠까 봐 모두 숨죽이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처럼 답답한 적이 있다. 나에겐 혼자 깨어있는 이른 아침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른 아침,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에 나는 노동하지 않는 인간이 된다. 그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때로는 나의 무지를 기억하고, 가끔 운동을 하며 건강을 돌본다. 출근길에 다시 노동하는 인간이 되지만, 그것도 괜찮다. 지구는 자전하고, 내일 아침은 또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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