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법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면서 유전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점점 늘어나는 흰머리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대머리는 피했지만, 흰머리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 가지 위안이 된다. 일흔을 넘기신 두 분 모두 아직 머리숱이 많으니, 나도 그 나이까지는 대머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두 분 모두 백발이신 덕분인지 나 역시 점차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염색을 하시지만,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염색을 포기하시고 백발 그대로 살아가신다. 어머니의 성격을 닮은 탓인지, 나도 염색을 몇 번 시도하다 귀찮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관리만 잘하면 백발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아직 흰머리가 한 가닥도 없는 한 살 아래 아내를 볼 때면 부럽기도 하다.
백발은 어쩐지 노인의 상징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실제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한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내 건강과 노화 상태일 것이다. 내 몸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운동을 하는지, 몇 시간 동안 자는지—이 모든 것을 관리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지나치게 무신경한 태도 또한 옳지 않다. 식사, 운동, 휴식이라는 삼박자의 균형을 이루는 생활 습관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올해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소음 걱정 없이 집에서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긴 것은 내 건강 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집에 런닝머신을 들여 놓아 걷고 싶을 때나 뛰고 싶을 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에 살 때는 런닝머신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래층에 피해를 줄까 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2층에 설치한 런닝머신에서 아내가 운동을 해도 1층에서는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닫고,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겨울철 추운 날씨나 한여름 강렬한 햇볕을 피하며 집 안에서 운동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 후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무거워진 몸으로 돌아올 때면, 집에서 쉽게 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진다.
점점 늘어나는 흰머리와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자연스럽게 노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서재에서 서울대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님의 책,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유튜브에서 정 교수님을 볼 때마다 ‘아는 건 정말 많지만, 말은 참 재미없게 한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책도 비슷한 느낌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책에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르지만, 책에 담긴 내용이 워낙 방대해 전부 내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1년 전에 읽었는데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지 않은 것도 그 방증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 읽고 끝내기보다는 집에 소장하면서 필요한 내용을 찾아보는 용도로 추천하고 싶다.
최근 다시 읽은 부분은 ‘3. 제대로 움직이기’ 중 걷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열심히 걸으면 내가 백발이 되는 걸 늦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걷기 예찬론자인 나로서는 걷기의 과학적인 효능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렇다면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 할까? 2021년 서울 시민의 하루 평균 걸음 수는 4,898보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걸음 수가 많아질수록 만성질환의 위험이 급격히 줄어들다가 8천~1만 보를 넘어서면서 그 효과가 완만해진다고 한다. 하루 1만 보 걷기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온몸에 염증이 생기고 즉각적인 인슐린 저항성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즉, 인간은 움직이지 않으면 급속도로 노화한다는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이 대목에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는 스트레칭 같은 간단한 운동이라도 자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책에서 걷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발췌해봤다.
“바빠서 걷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걷지 않기 때문에 몸과 마음 건강이 좋지 않고, 분주하기만 하니 효율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을 경험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 있는 것을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걷기 등 신체 활동이 주는 활력과 집중력, 인지 기능 개선은 우리를 오히려 시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나 역시 걷기의 집중력 향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직장에서 능률이 떨어지거나 앞으로 한두 시간 더 집중해야 할 일이 있을 때, 1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오면 다시 일을 이어나갈 에너지가 생긴다. 짧은 산책이지만, 내 뇌는 충분히 쉰 것처럼 속아 넘어간다. 이런 습관은 직장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 걷는 습관을 통해 내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바뀌는 역노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 드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