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뽀솜
가을마다 어땠을까 돌아보면 뭔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책을 그냥 한가득 쌓아둔 채로 제목이 보이게 만 두고는 그렇게 읽는둥 마는 둥.. 요즘엔 아예 쌓다가 말고 책장 앞에 앉아 제목만 본다. 넷*릭스에서 제목만 보는 게 괜한 일이 아니었잖아? 볼 것이 없고 볼 여력도 없이 사는데... 이건 아니지 싶은데 힘이 안 난다.. 안 났다.. 9월말에서 10월이 이렇게 진하게 다가오다니
초록색이 좋다. 아니 연두빛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그 5,6월이 좋다. 그런데 황금색이 펼쳐진 들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어렸을 때 추수하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가 얼마나 바쁜지 밤 늦도록 추수하는 그 시간이 배도 고팠고 도와야 할 것 같은데 뭘 마땅히 해야 할지도 몰랐던 거 같다. 벼 베는 그 기계 소리랑 불빛이 가을 밤에 종종 떠오른다.
그래서 그럴까 회사에서는 연말이 다가오면 올수록 할 일이 많다. 연간 보고니 마감이니 실적이니 뭐 이런 거 그런 것이 수확이려나.. 괜히 뭔가 더 결과가 있어야 할 거 같은 시기라 가슴이 답답하다. 아니 여름에 나름 잘 놀다가 슬슬 뭔가를 내 놓으라고 몰아치니 아주 힘이 든다. 끙끙거리며 시야가 좁아졌다가 이러다간 마음이 걍퍅해져 버릴 거 같아서 동생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본다. 징징징. 동생은 아주 웃기다고 한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징징거릴수가 있는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도망치라고 한다. (웃음)
해도 짧아지고 아침엔 아주 춥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을인데 난 겨울이다. 저 회사는 어떻길래 저 차림으로도 이 시기를 지낼 수 있을까 속으로 좀 부러워하다가 내 마음이 추워지니 그냥 출근을 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분지에다 큰 저수지까지 끼고 있어 안개가 짙게 끼는 동네라 살려주세요 하면서 기어가듯 운전한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순간에 누군가의 자동차 불빛을 보는 일은 아주 반갑다. 그 차 따라가면 좀 덜 무서우니까. 그래도 헤어질 결심 덕분에 안개는 좀 친숙해진 것 같다. 앞으로 눈이 걱정되지만 한글날을 맞이하여 히*텍도 개시했으니 마음아 쪼그라들지마 다시 봄까지 어떤 따뜻함 속에 들어갈지 기대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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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솜. 다들 멋진 이야기를 쓰던데 저는 뭔가 신변잡기 잡히는 대로 쓰기 ㅋㅋㅋ 마감날 쓰는 건 또 마음이 쪼그라드니까 미리 써버리고 행복해지기 희희
by.시내
하늘이 높아지고 햇빛이 조금씩 노오랗게 물들어갈때, 그 햇빛이 더 느리게 늘어질 때, 아침 공기가 가벼워질 때. 그리고 어김없이 마음이 허하고, 싱숭생숭해지면 가을이 왔음을 알았다. 가을이 오면 괜시리 어쩔줄 몰라서 산책을 부지런히 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 옛날. 지금은 어느새 가을이 되어있다. 나무들이 착실히 옷을 바꿔입는게 신기하고, 햇빛이 내리쬐는게 기분 좋지만. 아직 가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부족하다.
그래서 가을보단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지. 그래서 머릿속에 여름을 계속 떠올리는데 또 잘 생각이 안나서, 그 핑계로 영화를 두편 봤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썸머 필름을 타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어렸을때 정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에 너무도 산뜻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해버린다. 그래서 그 여운을 온전히 품고 돌아와야만 했던, 그래서 마음이 간질거리던 이야기였다. 올 여름 계속 보고 싶었던 썸머 필름을 타고는 사무라이 영화와 로맨스, 청춘, SF가 뒤섞인 이야기. 영화속에도 나오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모티브가 된 이야기가 분명하다. 영화에 대한 오타쿠의 열정을 뒤집어썼지만, 10대들의 뜨거운 사랑이야기였다. 마지막 부분은 너무 뜨거워서 조금 도망가고 싶었어.
그래서 내 여름을 다시 짚어보면, 자주 사람들과 모여있었던 것 같다. 사촌언니, 동생과 제주도에 가고, 워케이션으로 강릉을 가고, 교회에 아이들과 모여서 물총싸움을 하고, 다 큰 애들하고도 물총싸움을 하고, 강화도를 가고. 여름의 더위를 어떻게 견뎠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여름이었네!
다솜이의 글처럼 이제는 이제 허리숙여 일하며 수확을 해야하는 시기인가아. 수확을 다 하면 겨울잠 잘 수 있을까…
by. 탱
분명 얼마 전까지는 너무 더워서 하늘은 가을이지만 날씨는 여름이네 했었는데
이젠 정말 날씨가 쌀쌀해진 것을 보니 가을이 맞긴 한 것 같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쓰고 지우길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이번에는 평생 해본적 없는, 가을을 느끼며 느껴온 감정들을 쏟아내 보려 한다.
벌써 35번째 가을
가을이라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였던 것 같다.
첫 사랑과 헤어질 무렵이 가을이었던 것 같다. 그땐 너무도 쓸쓸하고 허무하고 어려웠다.
사실 그런 감정들을 정하고 '난 지금 기분이 이래'라고 단정 지어 말dms 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물론 가을이라 그렇지 않고 그냥 그때 그 느낌과 지금 가을을 느끼는 감정이 섞여서 기억이 외곡 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싸이월드가 유행하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가 미니홈피 노래로 내 상황과 기분을 나타냈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음악을 찾으려 애썼고, 내 감정과 맞는 음악들을 선택하려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음악들을 생각해 보면 나는 자신감 없고 우울했던 사람 이었 던 것 같다.
20대의 가을은 항상 치열했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고, 취업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이상하게 봄에 대한 기억들은 많이 있는데 가을에 대한 기억은 행사하고 술 먹은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30대가 되어 느끼는 가을은.......... 어렵다.
운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또는 내가 애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들이.
책임져야 할 것들, 그리고 내 행동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 들이
그리고, 자잘한 것들에 대해 마음 넓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나는 아직 열살 스무살 철없던 아이 같은데 어느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따르는 책임이 따르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들이 너무 아이러니 하다.
얼마 전 나의 중학교 시절 일기장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읽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곧 마주할 예정이다. 20년 전의 나와.
아직 순수했을 시절의 나와.
by. 경주
올해 여름은 헤어질 결심으로 가득찬 계절이었다. 지금까지 나름 영화 애호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인생영화를 물을 때 한국영화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생영화의 기준은 인생을 계속 봐도 지겹지 않고 내 일상을 흔들어 버려야 인생영화리스트에 들어올 수 있었기에 아주 편협하고 높은 허들을 넘은 한국영화는 없었다.
(TMI. 나의 인생영화는 토니 타키타니와 데몰리션이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고’(해준)
사실 개인차겠지만 나이를 먹으며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부분에서 2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계절감이 무뎌진다.
점점 계절 변화에 무뎌져 반바지를 입는 시기가 넓어졌다. 정말 찬기가 가시기만 하면 바로 반바지를 입고 찬기가 느껴져야 반바지를 벗는다. 아니 긴바지를 입는다.
변화에 무뎌진다는 건 삶의 외부 자극에 무던해지는 것 같아 마냥 나쁘진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무딘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노력하곤 한다.
‘그 새낀 내가 어딜 가든 쫓아오자나’(호신)
둘째, 다음 계절의 변화가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던데 10대는 10km, 20대는 20km... 뭐 이 진부한 예시가 어느새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계절을 가진 우리나라는 1년에 3번의 변화의 변화가 있어 연중 시간의 위치, 그 곳에 있는 나의 위치가 금방 체감되곤 한다.
마침내 가울이 찾아왔다.
홍시 – 문숙
너를 사랑하는 일이
떫은맛을 버려야 하는 일이네
물렁해져 중심마저 버려야 하는 일이네
긴 시간 네 그림자에 갇혀
어둠을 견뎌야만 하는 일이네
모든 감각을 닫고 먹먹해져야 하는 일이네
겉은 두고 속만 허물어야 하는 일이네
붉은 울음을 안으로 쟁이는 일이네
사랑이란
일생 심지도 없이 살아야 하는 일이네
결국 네 허기진 속을 나로 채우는 일이네
by. 임카
간밤에 창문을 열어둔 채 잠이 들었다가 흠뻑 감기에 걸렸다. 가을이다. 다신 안 올 것처럼 여름밤을 지새웠는데...
내 오래된 싸이월드엔 이렇게 시작하는 일기가 있다.
2010년, 혼란스러웠던 여름이 다 식어갈 무렵, 몸도 마음도 지쳐 엄마집에서 웅크리고 있던 날들. 그 해 여름 말고는 그 전에도, 그 후 지금까지도 힘들어서 엄마를 찾아간 적은 없었다.
하여간 유난스러운 여름이었다. 일기를 쓰던 날도 기억한다. 뭔가, 앞으로의 날들에 변화가 생기리라는 것을 직감하며 쓰던 밤.
계절이라는 가사가 마음에 맴도는 노래들이 있다.
왜 계절이지? 한 계절이 지나는 느낌은 뭐고 계절을 알게 된다는 건 뭐지?
늘 궁금하던 이 계절이라는 것은,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날들을 반복하며 뭔가 형체가 있는 것으로 내 안에 자리잡아 갔다. 하지만 여전히 잘 알 수는 없는 채로.
올 여름의 끝 무렵엔 시내와 부여에 갔다가 저고리가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연애라는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가 관계로, 길고양이로, 이별로, 떠난 친구와 반려동물로, 사랑으로 흘러가며 깊어지던 밤. 저고리가 주인장인 명재쌤은 자주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말을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과 짝꿍이었던 이 말은 체념이나 냉소가 아니라, 묘하게 힘이 있어 든든하고 따뜻한 위로가 됐다. 그 후로 종종 어떤 강박이나 초조함이 덮쳐올 때면 나도 모르게, 겪어야 할 일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여전히 잘 알 수는 없는 채이지만, 계절이라는 건 그런게 아닐까. 겪어야 하는 것. 내가 애쓰거나 말거나 오고 또 가는 것. 어떤 날은 창문을 열어두고 잠들어 감기에 걸리기도, 어떤 날은 성급한 옷차림에 땀을 삐질 흘리기도 하는 것처럼. 덤덤하지만 담대하게 겪어내고 또 즐기고, 그러다 다가오는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것.
지난밤에는 친구들과 저고리가에서 불을 피워놓고 늦은 밤까지 떠들고 놀다 다음날을 내내 으슬으슬 훌쩍이며 보내야했다. 이렇게 긴긴 이야기를 나눴던 건 오랜만이었던가(사실 중간에 도망가서 잠). 벌써 여름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있는, 가을밤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가을 같아서, 아 계절이 가고 왔구나 했다.
언젠가는 올 것만 같았던 순간
어둠 속을 앞서 걸어가는 너
그러니까 너도 알았던 거잖아
한 계절이 지나는 그 느낌을
김목인+빅베이비드라이버 <사려깊은밤>
by. 이성철
재채기가 시작됐고 가을이다. 비염인은 계절을 몸으로 가장 먼저 알아챈다. 잠을 깼다는것을 들키지 않고싶어 눈을 감고 누워있으려 하면 어김없이 재채기가 나온다. 늦잠을 들키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지 않다. 재채기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느끼는 계절의 감각이라면 내 의지로 계절을 느끼게 되었다.
오토바이를 탄지 2년이 넘어간다.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드라이브를 한 뒤에 오토바이의 매력을 알게되었는데, 그때 느꼈던 해방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가을이 지나가는 제법 추운밤이었는데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와 맥도날드에 가자고 나를 태웠다. 말에 오르듯 어렵게 탄 큰 오토바이는 타고나면 발이 땅에 닿지를 않았다. 맥도날드에 갈 마음으로 잠옷바지에 겉옷하나를 입고 나왔는데 ‘제발 어디까지 가는지만 알려달라’는 말에 친구는 ‘그냥 기다려봐’라고만 말할 뿐이었고 어느샌가 서울을 벗어나 점점 빛이 없는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커다란 바퀴가 달린 물체가 120Km로 바람을 가르는 느낌은 생각지도 못할 해방감을 주었다. 그렇게 친구 허리에 두른 손을 의지하며 두물머리에 도착했고, 그 새벽 느낀 해방감에 얼마 안가 친구가 추천해준 전기스쿠터를 사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 스쿠터로 갈아타버렸다.
겁이 많아 어린이 청룡열차를 타고 내려와 구역질을 하던 아이가 자라 바이커가 되었다. 날씨를 가림막 하나 없이 고스란히 느끼는 오토바이는 남들보다 몇 배로 계절을 느끼게 해준다. 오토바이는 라이딩 시즌이 있다. 여름의 태양과 아스팔트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는 일과 손과 온몸이 얼것 같은 한겨울의 찬바람은 오토바이 타기를 즐겁지 않게 만든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가 시즌이다. 내 작은 오토바이는 120km로 달릴 수 없다. 스로틀을 더 당길 순 있지만 당기지 않는다. 시속 70km로 달린다. 작은 엔진이 낼 수 있는 속도로,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달릴 때 볼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비슷한 풍경의 국도를 천천히 달리면 계절이 느껴진다. 시속 70km의 시간과 거리는 그만큼의 속도로 다른이들보다 먼저 계절을, 시간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도 괜찮다.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면과 계절을 몸으로 먼저 느끼기 위해 떠났다가 돌아온다.
내용과 상관없이 주제를 처음 듣고 떠오른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로 올해 여름을 보내본다.
<지난 여름 너무 야릇했었지- 이재민>
지난 여름 바로 이 자리에서
새빨간 장미 한 송이 치었죠
숲속엔 밤이 일찍 찾아와
그대 모습 너무 야릇했었죠
그래 밤이 무척 깊었어
그래 밤이 무척 깊었지
여름밤 모닥불에 불탔어
지난 여름 너무 야릇했었지
그대 모습은 영롱한 아침 햇살
그대 두 눈은 고요히 잠들었어
지난 여름 너무 야릇했었어
지난 여름 너무 야릇했었지
지난 여름 너무 야릇했었어
지난 여름 너무 야릇했었지
by. 산
앞으로 나의 이야기 공간들을 소산공원이라 부르기로 했다. 산책에서 배운 것들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니 여름 산책에서 만난 것을 말해야겠다.
일이 비교적 적은 여름은, 사무실에서 나와 오십분 정도 운전을 한 이후에도 해지는 걸 볼 수 있는 복 받은 계절. 무더위와 비를 피한 많은 날을 산책과 함께 했다.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이어폰을 챙겨 집을 나서면 바로 고양이 구역이 나온다.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2-3마리의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주차장 앞 폐가는 고양이들이 새로 태어나고 새로 죽는 공간이다. 여러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과 하얀 고양이뼈를 볼 수 있다. 파란 트럭 아저씨가 밤마다 밥을 준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꺾자마자 보이는 편의점 앞엔 동네 고양이 ‘코’가 있다. 코는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다. 종종 그 자리를 탐하는 고양이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인 듯하다.
집 앞 편의점 앞엔 매일의 다짐을 꺾게 하는 무빙워크가 있다. 가끔은 정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지나갈 때도 있는데 그래봤자 몇 시간 후에 다시 4층을 걸어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게 될 뿐이다. 현명한 나는 여름 편의점을 지나치지 않는 법을 익혔다. 이 집의 맥주와 와인 큐레이터는 나다.
편의점을 지나 더러운 거울 앞에서 갈림길을 마주치는데 나는 보통 서리하는 살구나무 앞을 지난다. 여름의 서리를 지나칠 수 없다. 또 굳이 좁은 길로 가는 이유는 할머니 구역1이 무섭기 때문이다. 할머니 구역에는 늘 바람 쬐는 할머니들이 쪼로록 앉아서 호박줄기며 마늘이며 마구 까고 있는데 내가 가령 나시라도 입고 지나가는 날에 시선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좁은 길을 차로 지나가고 있을 때 정말 1도 안 비켜주시면서 아이컨택을 멈추지 않는 약간 깡패같은 할머니들이다. 결국 눈을 깔고 할머니의 바퀴가 지나칠 때까지 얌전히 있어야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서리하는 살구나무 골목을 따라 왜삼층석탑길로 간다. 왜삼층석탑 앞을 지날 땐 무심코 큰길로 걷고 싶어지는데 그럼 강으로 가는 길이 위험해진다. 반드시 어둡고 좁은 길로 지나가야 무사히 강변에 닿게 된다. 강변에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강 주변 뚝엔 하얀 호박꽃이 핀다.
강변에 닿으면 퀴어프렌들리한 무지개다리가 있다. 나는 보통 그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의 오른쪽길인 산책로 2-2를 택한다. 웅이는 2-1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노을을 보는 날이 아니면 그 쪽 산책로는 나에게 약간 심심하다. 2-2엔 조금 더 많은 나무와 의자와 낚시꾼들이 있다. 2-2를 시작하자마자 낚시꾼들의 자전거가 줄 서 있는데 나는 이들의 찌가 흔들리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저 유유자적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 길을 따라 걷다보면 허접하고 우스운 분수가 있고, 좋아하는 커다란 나무 3그루가 있다. 무엇보다 촌장과 시인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냥 간판만 봐도 좋은 것이다.
2-3으로 넘어가려면 꽤나 각오가 필요하고 보통은 돌다리로 강을 건넌다. 이 쪽 길은 주차장 2개와 데크들이 잘 깔려있다. 여기는 건넛마을과 가까워 운이 좋다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둑 두고 술 마시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마을 할머니들은 우리 동네보다는 조금 친절한 것 같다. 무엇보다 좋은건 깨끗한 공중화장실이다. 맘 편하게 길에서 맥주를 마시게 돕는 친절한 길이다.
만약 돌다리를 건너지 않고 큰 다리 위를 지나게 되면 웅이의 고등학교 동창이 하는 이마트24가 있는데 여기에서 당연히 맥주를 사서 산책길의 반을 접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맥주도 폐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 웅이가 차를 끌고 간 어느 날이 맥주의 유통기한의 날이었고, 나는 냉장고에 있던 고추장, 된장과 각종 묵은 장아찌를 밖으로 꺼내고, 무려 2칸을 맥주로 꽉 채운 선물 같은 여름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맥주는 기가 막히게 금방 사라졌다.
건넛마을에서 2-1방향으로 직진하면 도시 쪽으로 향하는 강변길이 있는데 이 길로 가다보면 어느 순간 조금만 더 걸어볼까? 더 가까이 가볼까? 하며 포장마차나 생맥주 집으로 향하게 되어 가장 조심히 선택하는 길이다. 생맥주는 답도 없다.
산책의 목적이 흐릿해지면서 선명해지기. 여름의 산책이 끝나는 길엔 항상 취해있거나, 취할 예정인 것이었다. 그래서 여름의 일기에선 항상 술냄새가 났나.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술>
by. 빈
계절이 4개인 나라에 사는 것은 축복이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있어 봄이랑 가을을 느끼기엔 짧아졌지만. 저마다 계절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봄에는 꽃 피는 순서 맞추기. 도시에 살아도 꽃을 볼 수 있다. 목련이 피고 다음 노오란 개나리가 피고 나면 진짜 봄이 왔구나 한다. 그다음 진분홍의 진달래가 물들고 나면 바람불 때 마다 떨어지는 벚꽃을 만날 수 있지. 일부러 벚꽃 축제에 가지는 않는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나면 아카시아꽃이 피었다는 것. 아빠가 따오신 아카시아꽃으로 엄마가 전을 해주셨다. 영화 포레스트에 아카시아꽃튀김이 나와서 반가웠어.
여름엔 바다를 즐기는 것. 산보다 바다를 좋아한다. 스쿠버와 바다낚시를 즐기시던 아빠를 닮았나보다. 어릴 적 여름엔 항상 바다에서 놀았던 기억이 가득이다. 부모님은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사신다. 덕분에 만나러 갈땐 여행가는 기분이다. 아빠는 바다를 제대로 즐길 줄 아신다. 바다친구들을 잡고 인터넷으로 카약보트를 사셨다. 올 여름 보트를 산 기념으로 오빠랑 아빠랑 셋이 통영 바다를 갔다. 둘이 보트를 타고 반대편 섬까지 다녀오는 모습을 보니 괜히 좋고 든든했다. 한참을 물놀이 하다 발견했는데 아빠는 바닷물에 젖고 나서 부터는 계속 서계셨다. 알고 보니 바다에 들어가는 건 짜고 찝찝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어린 딸과 아들을 위해 열심히 놀아주셨던 것. 그 사실을 이제야 알다니 새삼스러웠다.
가을엔 구황작물을 먹는 일. 가을엔 단풍도 좋지만 구황작물이 많이 나서 좋다. 구황작물 매니아라고 소문이 났는지 사지 않아도 많이 생긴다. 그냥 먹는 것이 질릴 때쯤 이것 저것 다양한 요리를 해본다.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다. 통구이, 포타주, 베이킹. 요새는 소화가 잘 안되..
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겨울엔 한해 마무리를 한다. 매년 10페이지를 채우고 방치하지만 항상 다이어리를 산다. 만년 다이어리는 싫고 월간페이지와 주간페이지가 붙어 있어야하는 나만의 기준도 있다. 디자인도 꽤 열심히 고르는데 모아보면 매년 취향이 달라지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들고 겨울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여행을 간다. 내년에는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워본다. 연초에 세운 계획은 이미 잊은지 오래라 어땠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지는 게 한 해를 돌아보지 않아서일까. 올해는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겠다.
계절은 변덕스럽게도 변하지. 계절을 잘 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면서도 닥쳐야 하는 성격상 때를 놓쳐 계절을 즐기는 막차를 탄다. 아쉽지만 다음에 올 계절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