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와글2 1주차] 共同體,

by 소산공원
호두와트 친구들의 2022년 기록 프로젝트 '호두와글'은 매주 각자의 이야기와 일상을 기록하여 글로 남깁니다.



곱씹을수록 씁쓸한거말고 재밌는거를 들려주란말야

by.뽀솜


나를 만든 그룹, 모임, 공동체 어떤말이 어울릴까


아무래도 지금은 같이 밥먹고 사는 짝꿍과의 생활이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무언가 일테다. 그렇지만 금요일 밤 오X워치2를 하러 피시방으로 떠난 그대에게 할말은 없다. (호호) 그래서 이렇게 야근을 하고도 조용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토독토독. 때로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한 날이 올 줄이야. 언제나 시끄러웠던 거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부엌을 같이 사용하는 거에 대해서, 보고싶은 채널, 밥을 먹고 들어오는 지 아닌지 똑바로 연락하는 거로 투닥거리면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공간을 같이 쓰는 아무래도 제일 큰 공동체랄까.


내가 상상하는 이상의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도전해볼 수 있는 그런 모임은 ㅅㅅ, ㅅㄴ, ㄱㅎ로 이뤄진 크게보면 호두와트랄까. 얼마전 ㅅㄴ의 빼곡한 글을 읽으면서 일주일내내 같이 보던 시절이 떠올랐다. 밤도 많이 같이 지내면서 했던 수많은 얘기들이랑 훌쩍 동해로 남해로 떠났던 일 , 보고 먹고 마셨던 것이 또 나를 이루지 않았나 싶고 지금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내가 또 해볼 수 있는 지면을 얻었다! 나만이 독자일때랑 여럿이 독자인 것은 정말 확연히 다른데 오랜만이라 아직 나만 독자인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면 절대 상대방에게 필요한 걸 주지않는 그런 친구들도 있다.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그런 친구들인데 이제는 서로가 그러려니 하면서 간극을 좁힐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래도 나는 딱 맞는 퍼즐조각같은걸 찾고 있었나본데 오래된 종이 퍼즐의 팔랑팔랑 거리며 들뜨는 건 생각도 안하나보다. 만나면 좋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차게 식어버릴 때도 있어서 다시금 종이퍼즐을 떠올린다. 시절인연이라 옛날 얘기하면 재밌다가도 지금으로 돌아와서 얘기하다보면 돈돈돈만 있는데.. 물론 먹고사는데 중요하지만 더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달란말이야. 곱씹을수록 씁쓸한거말고 재밌는거!


그렇지만 가장 오래붙어있는 회사에서의 시간은 무시할 수가 없어서.. 그들과는 아직 데면데면하다. 아저씨들은 자기말만한다. 정말!! 무슨 말을 시작을 못한다. 끼어들틈도 없고 갑자기 아~~ 봇이된다.. 그러면 왜 아~~만 하냐고하는데 ?? 휴일을 더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래야 저 많은 시간동안 아름답고 즐거운 사람들의 이야기만 사탕처럼 먹어야지.





나도 그런거 해봤어요!

by. 탱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친구들과 많은 일들을 했다. 소위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시간이 지나 어느새 서른 이라는 나이가 되고. 전부 각자 하는 일에 충실하게 되면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 헸었다. 하지만 지금, 형태는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만나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민과 이슈 등을 챙기면서 살아간다.

사실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아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부터도 얼른 자리 잡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같은 관심사가 있는 몇몇이 모여 모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즐거웠다 같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

사실 건강상의 이유로 모든 활동을 반강제(?) 적으로 접어야 했던 다는 그냥 옛 추억쯤으로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하기로 해놓고 참여를 많이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관심사(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 멋진 일이다.

아직도 한창 청년활동을 하고 돌아다녔던 것들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가끔 청년커뮤니티 관련된 말이 나오면 입이 간질거린다 ‘나도 그런거 해봤어요!’ 하고 내적으로 소리치지만 조용히 미소지으며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친구들과 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있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 새로운 것들을 함께 한다는 것들이 즐겁다. 그때보단 조금 더 성숙해졌고, 그때보단 여러 상황이 바뀌고 힘든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분명히 그때보다는 서로를 생각하는 빈도수는 적어졌지만.

가끔이라도 나를 생각해주고, 내가 안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따뜻해지는 일인지 모른다. 가끔 회사생활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타지인 천안으로 직장을 잡아 내려오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친구도 없는 타지에 와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하고 싶다.

“청년 커뮤니티 한번 해 보는건 어때요?”하고 말이다.

이 친구들과 오래도록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




문병의 공동체

by. 산



재신아제 문안을 함께 다녀온 이동우 샘 인스타에서 이런 글을 봤네.

‘너를 잠시라도 잊을 때 마다 나는 금방 부족해지고 말았어.’


어떤 관계들은 함께 있으면 더욱 풍요로워지던데. 좋은 취향과 풍경을 나누고, 듣고 말하느라 몇 밤을 꼬박 세워도 모자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나는 느낌의 공동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말야.

우리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조금 어긋나는 느낌이 있어. 몇 번의 여행을 기억하건데 우리가 지낸 밤은 꽤나 서먹했거든. 함께 해야 하는 일을 나눌 때 마구 시끄럽다가도 밤이 되면 묘하게 어색해서 핸드폰만 만지던 우리들의 여행. 우리는 느낌의 공동체는 아니로구나! 그 날 밤에 조용히 생각했었지.


그런데. 동우샘의 글처럼 함께 있지 않으면 금방 부족해지는 관계가 있더라고. 나는 너희가 없었으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을까. 그걸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사막의 공동체? 갈증의 공동체? 이 편지를 쓰면서 어떤 단어가 적절한지 찾아나가 보려고.


처음에 나는 너희들을 개불의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었어. 왜 기침이 시작되던 그 해에, 돌아가면서 내가 수집발령을 내렸잖아. 배우 박정민의 친구들은 ‘성시발령(성남시청공원으로 모여)’이라고 부르던데. 나는 개불발령이라고 불러야하나. 아무튼 목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은 맥주랑 개불 밖에 없던 시절에 온갖 포장마차와 꼬질한 술집들을 다니며 개불과 계란탕을 먹어주던 공동체. 매일 매일 내가 밥이나 챙겨먹었는지, 책방 공사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 도와줄 것은 없는지. 바쁜 와중에도 장갑이며 페인트며 챙겨와 바리바리 살림을 도와주던 다정한 공동체.


그리고 너희들을 시작의 공동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어. 세상에 관심이 많고, 또 욕심까지 있어서 못 참고 일을 벌이고 마는 공동체. 어쩐지 사는 게 재미없다 싶으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들을 살펴보게 되었던. 그러다 몇 주 만에 만나 작당모의를 하면 ‘휴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숨통을 트던 공동체.


우리가 시작의 공동체일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거야. 그럼으로 우리는 포기의 공동체. 일단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하면서, 종내는 포기하면서. 누가 먼저 포기 선언을 하나 눈치 게임을 하면서. 그럼에도 이쯤하면 되었다 하고, 위안 삼는 공동체. 그렇지만 종종 놀랍도록 좋은 마감을 하는 일들도 있었어. 하지만 그것도 역시 우리에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기도 한, 포기를 사랑하는 공동체.


그렇지만 나는 우리를, 이 세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공동체, 서로를 자라게 하는 공동체라고 여기고 싶기도 해. 세상이 환멸스러워 무어라도 해야 된다고 여겨질 때쯤에, 해낼 일을 할 수 있게 서로의 이름이 되어주는 공동체. 세상을 읽는 공부를 하면서 느리지만 자꾸만 넓어지는 공동체. 서로가 사람일 수 있게 환대의 공간을 내어주는 공동체.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바싹 마른 사람이 되었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환대도 모르고, 안부도 모르고, 개불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겠지. 선물을 주고받는 방법을, 남을 돕는 방법을, 삶을 기획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았겠지. 너희들 덕분에 건조하지 않게, 보송하게, 촉촉하게 살아. 그래서, 우리는 부끄럽지만 서로를......적시는 공동체.

다시 말하건데 우리는 느낌의 공동체는 아니지만,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에서 빌려올 수 있는 구절이 있어.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읽고 쓴 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문태준, 『가재미』 중에서


물어볼 힘도 대답할 힘도 없지. 그럴 때는 그냥 옆에 가서 누우면 돼. 이 문병의 끝은 이렇지.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읽을 때마다 눈물을 참아야 하는 구절. 건강한 내가 아픈 그녀를 적셔주는 게 아니라 그 반대지. 지독해. 진짜 서정이란 이런 것이지. 마지막 사랑의 몸짓조차 그녀에게 양보하는 것. 나는 늘 받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것.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中>

나는 늘, 받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것. 옆에 가서 가만히 눕고 싶은 것. 아픈 시절 안에서 더 살게 해준 공동체. 그래서 우리는 문병의 공동체라고 부르면 좋겠어. 모두가 아픈 몸 안에서, 서로를 문병하는. 파랑같은 날들을 옮기는.


-22.10.09.△▲-





든든

by. 빈


공동체에 속해 있길 즐기며 밖에서 힘을 받던 때가 있었다. 직장, sns하기 좋은 동아리, 오래된 친구들 다양해.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 진심인진 모르겠지만 서로를 챙기는 것. 애쓸수록 생겨나는 친밀감.


관심 받는 것은 싫지만 나도 남들처럼 평균치는 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바보처럼 참고 살았었다. 그게 공동체를 유지하고 속하는 법?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터지고 나면 회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끝이 나고 말았다. 공동체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엉망이 되었지. 몸, 정신, 영이 삼단 분리가 된 느낌이랄까. 공동체가 흔들리기만 해도 좌절감을 느꼈으니..


인생의 대혼란파티 중이던 때에 호두 친구들을 만났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 그때 이 공동체를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내 모습도 있는 그대로를 봐주고 인정해주었다. 참고 버틸 필요가 없다.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될 뿐이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몸소 보여주고 말해주는 사람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딱 맞는 사람들. 오히려 좋아가 거의 진심인 사람들.

말랑말랑한 사람들이 내 마음을 더 튼튼하게 해주었다.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만나 술 마시고 했던 얘기 또 하고 울고 웃고. 그 시기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어. 너무 고마운 사람들. 아닌 건 끝내도 되. 그래도 되. 그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아! 라며 나의 끝을 실패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말해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래된 공동체를 끝낼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걱정이 많아 걱정인 나를 이해해주고 놀려주어서 내 단점이 아니라 그냥 내 모습으로 바라보게 해준 사람들.


또 호두공동체는 결이 비슷하달까. 책모임을 하고 플리마켓을 열고 우리 끼리 돈빌려 주고 갚는 자조금융도 하고. 그냥 뭐든 이런거 하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 할까? 하자! 가 되어버리는 친구들. 남들이 이런거 왜해? 라고 물어볼 만한 것들에 관심이 비슷하다. 이런 공동체는 또 못 만날거야.

과거의 내가 창피하고 불쌍하다는 연민에 빠질 때도 있다. 그 생각의 늪에 빠져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요새는 금방 헤어나온다.

주변에 든든한 사람들이 있고 덕분에 내 마음도 든든해 졌기 때문이지.


요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재밌고 돈도 잘 벌수 있을까. 돈 많이 벌고 싶다고 솔직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버는 일 불가능할까. 올해가 다 가기전에 호두와글을 쓰면서 생각 정리를 할 수 있었으면!





공동체를 생각하려다가

by.이성철



호두와글을 시작하며

얼마 전, 올해가 가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연초의 다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죄책감 마냥 붙어지낼 것을 알기에 누가 물으면 건강과 로또당첨 같은것들을 말하고 얼버무려왔다. 100일도 남지 않은 시간, 고민을 하다 ‘번지점프랑 글쓰기가 하고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땅 밑으로 꺼졌다가 잠깐 튀어오르는 기분을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읽은 뒤로 막연한 자신감과 자기긍정을 하기 시작했었나. 무시무시한 ‘번지점프와 글쓰기’를 무서워하며 계속하고 싶어해서 다행이다. 호두와글은 나와달리 무섭지 않고 쓰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사실 모름) 덜 떨수있을 것 같다. 조금 마음 놓고 뛰어내릴 곳을 발견한 것 같다. 그런데 첫 주제가 공동체라니, 아..번지점프가 하고 싶다.


공동체?

처음 공동체에 속했다는 감각을 기억하는 건 초등학교 2학년에 충남 서천에 작은 분교로 전학을 간 무렵이다. 경기도 시흥시 도일초등학교의 2학년 11반, 40여명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받고 부내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익숙한 크기의 교실엔 7명이 앉아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고 담을 넘어 논밭에서 연을 날리고 뱀을 잡고 바다에 가서 조개를 캐는 시간들. 해가 바뀌어도 옆교실로 이동할뿐 매일 아침 교실문을 열기만 하면 친구들이 있었다. 까무잡잡한 7명의 친구들과 하얀 내가 섞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며 우리는 보통의 장소를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냈고 그렇게 공동체를 경험했다.


7명이 채웠던 교실을 떠나 서울에 살아가며 다시 공동체를 생각한다. 너무 많은 존재가 살아가고 있고, 또 죽어가는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공동체인 도시. 누군가는 여전히 도시를 하나의 유토피아로 상상한다.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현대 도시들은 인간을 장소에서 소외된 비존재자로 만들 뿐 아니라 공산의 욕망에 종속된 노예로 만들어간다. 인간의 거주지로서 도시는 단순히 경제적인 욕구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안전의 목적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인간이 한 장소에 모여 거주한다는 것은 물리적 욕구 충족 이외에 집단의 이상과 동질성이 공유된 하나의 가치체계가 형성되고 그것에 동의하는 공동체가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보존하는 전통과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무엇이 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에밀 뒤르켐은 ‘마을과 촌락은 구성원들이 같은 가치 체계 안에서 하나의 관계성을 유지할 때 지속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 도시는 그렇지 않다. 공간의 영성과 초월성이 상실된 현대 도시는 개인과 집단의 욕망만을 표출하는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인들은 공생과 공존의 관계에서 경쟁과 배제의 관계로 돌아섰고, 공간은 상품화되어 최대의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경제적인 도구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이 곧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사회에서 장소는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거대한 힘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간에서 가치판단을 하고 구체적인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장소를 통해 우리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 공동체의 이야기가 녹아나는 장소가 필요하다. 사람다움을 상실한 도시에 필요한 것이 다시 공동체라고 진부하게 말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무거나 다 할수있도록 누가 건물 하나만 선물해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이런 모든게 너무 슬프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러니까 모이자고 말하는 친구들과 함께라 살아간다.

(이렇게 쓰는게 맞나요..?)





나의 공동체 연대기

by. 경주


문득 지역 공동체를 조직하고 기업화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내성적이고 사람 만나는 일에 에너지소모가 큰 내가 왜 이 일이 즐거운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의 삶 대부분은 곁을 내어주는 공동체가 있었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를 내어줄 수 있는 공동체를 수시로 찾았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나를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거나 무너져도 괜찮다는 조건없는 믿음을 받았다.

내가 한 경험들을 누군가도 하길 바라는 마음과 내가 경험했던 공동체들이 점점 더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위해 지금 속한 공동체의 고마움과 사라져버린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의 공동체 연대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나의 첫 공동체 ‘교회 공동체

- 내가 경험한 첫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였다. 부모님께서 교회를 다니셔서 태어나자마자 300여 명의 교인이 다니는 교회를 다녔고 초‧중‧고‧대까지 다니면서 대부분 교인을 20년 내외 알고 지냈다.

교회라는 곳은 항상 나라는 존재를 반겨주는 곳이었고 나를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좋지 않았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부터 청년부 형-누나들과 놀면서 간접적으로 세상살이를 배우기도 하고

밥이나 커피를 사주거나 같이 여행을 가는 등 아낌없이 물질적인 지원도 해주며 편안히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었다. 맞벌이로 항상 바쁜 부모님과 타지 생활하는 누나들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이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고 이 공동체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공동체를 항상 바라왔고 최근에 새로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그때의 형-누나들의 나이가 되었고 그들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교회 공동체는 나란 존재를 인정해주고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하는 곳 이었다.


나의 두 번째 공동체 ‘우리동네 협동조합’(사회적경제)

- 우리동네협동조합은 20대 중반에 사회적기업을 하고 싶어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을 하며 알게 되었고 대부분은 천안지역의 시민단체, 정치활동가, 사회적기업 종사자 등으로 구성되어있고 지역의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조직이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이 많다보니 청년의 지역살이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타지살이를 하며 불안한 와중에 창업까지 하는 최악의 시기를 겪을 때 조건 없는 지지를 해주고 물질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항상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네가 망하면 너 하나 일자리 못 만들어주겠느냐? 일단 해봐”라는 말이 지역에서 내가 무엇이든 시도해도 되겠다는 안정감과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조합 내 에서 진행한 공동체 은행 ‘사이금고’, 지역 정치참여와 연대 등을 통해 모임을 넘어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같이 만들어가면서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역할과 개념을 만들어갔다.

이 공동체는 나의 삶 혹은 지역살이에 버팀목이 되어 주고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의 세 번째 공동체 ‘호두와트 마법학교

- 호두와트 마법학교는 20대 중반 또래 지역 청년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고 지금 대부분 30대 중반이니 벌써 10년 정도 된 공동체이다.

처음에는 지역의 놀 거리가 부족해 영화모임, 요리모임 등 일회성 행사로 시작했지만 천호지 플리마켓(섬잔치), 공동체 은행(호두금고), 지역정치 연대, 호두학교, 정치학교, 천안청년정책네트워크 등 개인의 욕구에서부터 집단, 지역의 문제까지 활동이 확장되고 나의 세계가 확장됨을 경험했다.

그 과정 속 자유로운 상상들과 수많은 시도들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재밌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고 자립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공동체라는 미션을 가지고 10년 넘게 같이 고민할 동료가 있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다.

혹자는 그 많은 활동을 통해 무엇을 남겼느냐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남았고 사람을 남겼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수 많은 활동과 시간들을 정리할 수 없겠지만 한 문장으로 이 공동체는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또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속할까에 대한 궁금함은 가지고 있다. 전우익님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 이름처럼 같이 잘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동료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동료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by. 임카


공동체라는 얘기에 혹해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저자라는 말에 또 한 번 혹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뒀던 것 같다.


계절에 한번쯤 돌아오는 도서수집의 날에 여러권의 책들과 함께 우리집에 왔다.


'흑인'에다 '여성'이었던 벨 훅스가 제도권 안과 밖의 교육현장과 삶 속에서 가부장제와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한 경험들이 담겨있다.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는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백인우월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고, 어떻게 감춰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폭로하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아가 패배감과 무기력에 지지 않고 함께 섬기고 배우며 희망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실은 협소한 경험 속에서 사는 나에겐 인종차별의 이야기도,교육현장의 이야기도 그다지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라는 말이 젠더나 위계라는 말과 포개어져, 얼마 전 술마시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하며 읽던 책을 자주 멈추고 한참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공동체라는 말이 괜히 밉고 민망하던 때가 있었다.

처음 일을 하기 시작 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공동체가 마치 만능키처럼, '육성'하고 '함양'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고 느껴졌다. 내가 감히 공동체란 무엇이고, 어떤 공동체가 옳다라고 평가할 수 있겠나. 단지 무언가 찜찜했던 거다. 저것을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게 숭고한 것일까. 지금 말하고 있는 그 공동체가, 말하려고 하는 그 공동체가 맞는 건가. 공동체라는 것을 당위성과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위험하진 않은가. 애매한 것들이 공동체, 공동체성이라는 말로 퉁쳐지는 것은 아닐까. 협동과 호혜, 공동체가 공동체답기 위한 전부일까


'그 공동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공동체를 숭고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은 나일지도. 공동체라는 말이 괜히 밉고 민망하지 않게 된 것은 내게 숭고한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곁들이 생겼기 때문. 가르치는 일이 돌보는 일이라는 것. 그리하여 나를 살게 해주고 키워주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나에게 그것이 공동체 속에서 가능했다는 것 또한.


"배움은 교실 안에서도 일어나지만 교실 밖에서도 일어난다. 이 배움에 공부의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배움을 총체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은 아주 좋게 말해서 돌보는(caring)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돌보는 일이 평가절하된다"

"우리는 학생들이 학습자들의 공동체에서 자신의 취약함을 경험하도록 할 수 있다. 그 공동체는 수치심이라는 과거의 시나리오 때문에 학생들이 흔들리거나 실패할 때 용기있게 그들을 지지해 줄 것이다. 지속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 일 것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정부가 도서관법을 개정하면서 은근슬쩍 작은도서관 지원근거를 삭제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도서관 뿐 아니다. 크고 작은 시민 모임 지원이 사라지고, 공간이 축소된다. 막 화를 내는 나에게 누군가 시민단체 지원이 끊겨서 그러냐고 묻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산절감이나 밥줄의 문제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수많은 가능성의 공간들을 없애는 것 같아 화가 나는 것일뿐이다. 감춰져 있는 질서를 드러내고 무지함을 고백할 수 있는 공간, 가르치고 배우는, 모여서 이야기 하며 함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진다. 공동체를 축소시킨다. 공동의 것들을 파괴한다.


"신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우리를 갈라서게 만들고 다르게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차이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솔직하게 차이를 드러내어 말할 때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사실은 차이의 현실을 부정하면 모든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가 현실에 직면할 때,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이야'와 같은 감상적인 생각을 버릴 때, 우리는 분별력을 더 갖게 됩니다. 또한 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차이를 즐기고, 그 차이들이 그러날 때의 긴장감에 엄중히 직면하면서 우리는 그 차이에 참여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파커 파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에서 나오는 지식의 목표는 상처 입은 자아와 세계를 재결합하고 재건하는 것이다. 공감하는 지식은 착취하고 조종하는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지식의 화합을 목표로 삼는다. 마음이 사랑으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공감으로 동기 부여된 이성은 앎을 향해 뻗어 나간다. 따라서 앎의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고, 타인의 현실과 만나고 그것을 포용하는 행위이며, 타인이 나와 만나고 나를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다. 그러한 앎에서 우리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알게 되고, 우리 또한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알려진다.” 이것이 바로 경쟁을 통해 파괴하려는 공동체 정신이다."


아니 이 얘기가 어쩌다 또 일 얘기가 되었을까. 이 책은 9.11 때 나왔다는데, 심지어 지금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니 희망은 여전히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도 무기력과 두려움에 지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를 붙잡는다.





우리

by. 시내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렸을때 나는 조금 멀리, 여기 아니고 저기에 떨어져 있고 싶었다. 가능하면 혼자 방에서 노는게 가장 편안한 아이였는데, 엄마는 틈만 나면 나를 YMCA 캠프 같은 곳에 보냈다. 그러면 나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선생님들이 무서워서 몸이 빳빳해졌고, 아무튼 말은 잘 듣는 아이로 컸다. 가끔 만만해보이는 대학생 선생님들을 아주 난처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선택할 무렵에도 여기가 아닌 저기 어딘가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담양에 있는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두발자유와 교복이 없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동생이 같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면접을 볼때, 선생님들이 ‘너희 언니가 전교생을 왕따시키고 다니는데 아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도 아마 나는 울타리속에 폭 들어가길 원하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이 쉽진 않았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친구를 갈구하지 않는 나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었다. 심심하면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다, 방에 있는 친구들과 놀면 되었다.


하지만 이 학교는 우리가 ‘우리’라는것에 엄청나게 자부심을 갖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게 내내 불편했다. 이 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자연히, 당연스럽게 우리가 되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특별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학교에 입학했을 뿐이고, ‘우리’가 되기 위해 ‘특별’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입으로 주구장창 우리를 외치는 몇몇 선배들을 보면서 절대 그 ‘우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렇게 주입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곳에서는 주구장창 내가 ‘우리’를 말하고 다닌다. 그것이 낯뜨거워서 가능하면 참아야지 생각하지만 종종 내뱉고 만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하나의 매끄러운 도형은 아니다. 어딘가 울퉁불퉁하게 이어져있는 덩어리. 강한고리와 약한고리들이 서로서로 이어져있다. 그 연결이 매끄럽게 단단해지는 일을 오히려 경계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는 일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자기의 시간을 내어주었을때 그것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용기, 감사하는 하는 마음을 알려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다음엔 나도 그런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안에서는 그런일들이 일어난다. 서로의 존재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고마워하고 가끔은 내버려두며. 어딘가에 입장 하는 기분이 아니라 조금씩 울타리를 짓는 느낌이다. 그 울타리는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았는데, 어느새 울타리 안쪽에 있는 기분을 느낀다. 그럴때 나는 우리가 ‘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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