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많이 힘들지만...
2018년부터 시작 된 모종의 사건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했고, 그 시간들을 보내며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
정말 그냥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의미 없던?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그동안 활동했던 것들이 다 꿈만 같았고 다시 사회로 나갈 용기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단기 직장을 다니고 있던 때 친구들이 재미있는 걸 한다고 했고, 그 말에 예전 생각을 하며 같이 참여를 하게 되었다. 열심히 해보겠노라고 다짐 했지만 전에 있던 일들이 많이 힘들었는지 점점 사회와는 단절하는 삶으로... 말 그대로 지하 나락으로 들어갔다.
몇 개월이 지나도록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있는 시간이 늘면서 무기력 감이나 자책들이 많아지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예전에 일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할 만큼...(코로나가 한몪 했다고 생각한다... 밖에 못나갔으니까)
하지만 구판장을 하며 잘 안하던 인스타를 하고 자주는 아니었지만 사람을 만나 회의라는 것을 하고 한 달에 한 두 번 이었지만 외부로 나가서 활동을 한다는 것, 그것들이 나를 조금씩 치유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단기이지만 일을 다시 시작했고, 조금씩 사회성을 회복하는 단계인 듯 싶다. 앞으로는 활동 위주가 아닌(조금 미안하지만 이해를 부탁합니다!!) 예전에 나를 되찾기 위한 활동이 하고 싶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힘이 닿는데 까지는 함께 하고 싶다. 우리가 더 나이를 먹어 4~50대가 되었을 때 우린 엄청 재미나고 신나는 일들을 했어! 하고 자랑 할 수 있을 만큼..
그런 의미에서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느지막이 10시쯤 일어나 캡슐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예열이 되길 기다리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아침에 들을 음악을 찾는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저절로 행복해지는 음악이라고 선곡해 놓은 플레이 리스트를 찾아 켜놓는다.
그 사이 커피는 내려져 있고 그대로 들어 한 모금 마시니 아침을 시작하는 것 같다.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인데 왜 난 몇 년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상황은 그때보다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20대 때는 정말 쉼 없이 밖에 나갔던 것 같다. 놀러도 가고 행사도 쫒아다니고, 일도 하고.
아니 30살이 될 때까지였던 것 같다.
아프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집, 회사 생활을 주로 하고 누구를 만난 다기보다는 온라인 게임에 연연하며 지내왔었다.
그나마 주박이랑 같이 살았었기에 여러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분가(?) 하면서 더욱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내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고, 다른 사람들이 “몸 좀 어때?” 하고 묻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는 걸 기피한 게..
지금도 가끔 길 가는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어 엄청 움츠러들지만 이 또한 극복해야 하는 일이겠지...
며칠 전 면접을 봤는데 아직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좀 어색하긴 하다...
확실히 너무 쳐져 있다가 다시 나오는 과정은 힘든 거 같다. 여러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만나려 하는 과정이 원래의 나로 돌리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 조금 부담되는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해봐야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참 어색하다. 회사생활을 하는 몇 년은 보고서를 쓰느라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는데 뭔가 어색하고 좋은 느낌
일주일의 일들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이 지금 나에겐 너무 소중하다.
이제 지금 일하는 곳도 퇴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다.
왜 그럴까... 다음 주에는 그걸 탐구해 봐야지
일주일 동안 내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생활하고 있음에 참 감사한 주말이다.
마지막 주
직장을 그만두기 정확히 일주일 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까?
나는 또 끝에 다다라서야 이런 생각을 한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도 처음은 아니지만. 마냥 두렵기만 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수많은 일들을 하며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언제인가부터는 내가 너무 우유부단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 소위 말하는 ‘쉽게 질려’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의식했었고, 그 와중에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을 찾아봐야겠다.
같은 회사의 일 못하는 어린 직원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해 주는 게 나을까? 그럼 꼰대로 보지 않을까? 결국에 내 선택은 역시나 착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내면 깊숙이 있던 응원의 말들을 꺼내 이야기한다, 그 사람은 고맙다며 또 나에게 무언갈 갔다 준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진심으로 저 사람이 잘되길 바라 주지 못해서...
이상하게 일을 그만두기 일주일 정도 전에는 어느 회사든 일을 많이 안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긴 이상하게 그만두기 일주일 전부터 야근을 엄청 한다. 아.. 하기 싫다....
무사히 일주일을 넘기고, 이제 월요일만 출근하면 일단은 마무리가 된다. 인력을 더 뽑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지원을 하긴 할 테지만, 그래도 며칠은 놀겠지.....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뭔가 마무리가 잘 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천안을 이제는 벗어나야 하나 싶기도 한 밤인 것 같다. 복잡하고 잠도 오지 않는 밤이다.
다시 직장을 구하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과연 나는 새로 시작할 준비가 되었나였다.
무얼 하고 싶은지, 또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보다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퇴사를 하고 쉬면서, 마냥 즐거웠다. 돈도 나오는데 놀 수 있다니!! 가장 큰 걱정이었던 ‘돈’ 문제가 해결되니 좋았다. 그래서 난 퇴사를 하며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휴식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참 쉽게도 했던 것 같다. 타이밍 좋게 코로나가 터지고, 센터가 어려워졌다.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몸이 안 좋아지며 내가 느끼던 힘듦을 양분 삼아 자라온 퇴사라는 아이는 거침없이 나를 퇴사의 길로 인도했다. 쉬면서 영상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벌이가 좋았다. 안일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쉬려고 마음먹었으나 쉬지도 못하고 또 돈을 따라가는 인생이라니...
기간이 길어질수록 또 돈이 줄어들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 6개월간 너무 좋았지...
후배의 추천으로 대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자 노력했고. 결국은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3번의 퇴사를 하고 다시 직장을 구하는 이 시간이 나에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냥 출근하고 퇴근하고, 내일 같은 일상만 보내던 나에게 나를 돌아볼 시간을 준 게 아닐까?
퇴사하고 5일이 지나갔지만, 이젠 두렵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으니 이제 직접 움직일 때야!!!’라고. 그리고, 연애하고 싶다 ㅋㅋㅋㅋㅋㅋ
봄이 왔다.
너무 추운 겨울이었다. 실제 느끼는 몸의 온도도, 마음으로 와닿는 느낌도.
눈이 오고 녹고를 반복하는 사이, 하루가 다르게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어느덧 지나고
나에게도 봄이 왔음을 느낀다.
어려웠다. 사람을 대하고 만나는 것들이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봄이 와서일까?
전에 쉴때는 못 느꼈던 ‘휴식’이라는 것을 지금은 느끼며 지내고 있다.
집에만 박혀있는 날들이 지겹고, 나가서 어디라도 가자는 생각에 평소 가지 않던 카페를 가기 시작했다.
매일은 나가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카페에 가면 커피를 시키고 햇빛이 제일 잘 드는 곳으로 가서 몇 시간을 앉아 있는다.(민폐인가...)
햇빛을 받고 있으면 그냥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일하러 나온 사람처럼 괜히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던지, 할 일 없는 사람을 불러 같이 카페에 가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한다.
별거 아닌데 기분 좋은 느낌을 가져갈 수 있는 것 같다.
곧 있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텐데, 그때까지만 행복함을 더 느껴보자!!
새로운 봄이 오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나는 지금 너무 설레인다.
3월 20일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그간 걸릴까봐 노심초사 하며 몸을 사릴때는 안걸리더니 조금 돌아다녔다고 바로 걸리는 나란 사람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겠다고 생각 했다.
처음 2일은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 코로나 걸렸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전화를 주셨는데 그래도 인생을 헛살진 않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코로나 걸리고 7일 동안 자가 격리라 7일은 어떻게든 버티겠지 했는데, 막상 3일 지나고 몸이 좀 괜찮아지니 너무 지루하기 그지없는 나날이 되었다.
설거지는 하루에 3번 한다는 것, 아침 저녁으로 방을 쓸고 닦는 것 외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도 전무였고,(그나마 읽던 책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 중간에 끊기를 반복..)
식욕도 떨어져 먹는 즐거움 또한 멀리 사라졌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자가격리를 하는 와중에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할 수밖에 없었다가 맞는 듯??)
최근 힘을 쏟는 일이 있었고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들어가는 in put만큼 out put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고민하다가 격리가 헤제되는 날 같이 그만 둬 버렸다.
조금 더 노력을 해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미련없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애초에 가능성이 없다면 포기해 버린 지금이 나았을지... 적어도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다면 아마도 조금 더 붙잡고 있을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1. 4월이 가까워 온다. 벌써 학교 일 마무리 한지 1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뭔가 힘내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했었는데 나는 잘 쉬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아침엔 역시 일찍 일어나고 낮에는 낮잠도 못 자고 밤엔 예전처럼 늦게 잠이 든다. 그냥 피곤해서 주저리...
2. 대학교에서 일하던 선생님들과 점심식사 약속을 잡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들 시간에 쫓기는데 나만 아니라는 짜릿함이란.... 식사를 하고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기다리는 것도 싫고 해서 서류를 준비해서 갔는데 잘한 듯싶었다. 코로나 확진 문자를 캡처해서 담당자분 휴대폰으로 전송하고 나니 가도 된다고 한다. 역시 준비가 철저해야 금방 끝난다.
3. 이제 4월 1일부터 출근을 할 것 같다. 오늘내일 이틀간 교육을 받고 나면 이제 계약서를 쓰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될 테지.. 새로운 시작을 엄청 기대했는데 막상 눈앞으로 다가오니 조금 더 열심히 쉴걸 하는 생각이 든다. 날이 따뜻해지고 꽃이 필락 말락 해서 그런가... 맘이 싱숭생숭 울컥울컥 간질간질하다. 껄껄
4. 친한 후배와 그의 여자 친구와 식사를 했다. 부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부럽다 젠장..... 아무튼 그런 자리가 나도 처음이라 어색하고 했는데 술이 한잔 들어가니 분위기는 금방 풀렸다.(역시 술) 이런저런 이야기에 내 진심을 다해 좋은 아이라고 말해주었다. 친한 사람이라 팔은 안으로 굽는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진심을 담았다. 깊은 이야기도 하고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맘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 음...... 괜찮겠지...?
5. 어느새 시간은 흘러 토요일이 되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는 핑계로 계속 밖에 나갔다. 햇빛은 따뜻하고, 이젠 정말 반팔을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은 날씨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코끝이 간질간질해서 집에만 있다가는 정말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일단 샤워를 시작했다. 매일 샤워할 때 듣는 음악을 틀어놓고 미지근한 물에 몸을 맡겼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이 너무 좋아 한참을 서있었다. 샤워를 다 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어디를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은 벚꽃 보러 가자!! 하는 생각에 출발을 했다. 차를 타고 나가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개나리는 만개했고, 기대하던 벚꽃이...... 거의 없네...? 그래서 호떡 사서 집에 왔다... 결과는 어땠든 과정이 너무 설레고 좋았다. 다음 주에는 진짜 만개할 것 같은데 그때도 혼자겠지...? 아무렴 어때 꽃이 엄청 예쁠 텐데 껄껄.
1.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했던 첫 출근
너무 어색하고 정신도 없었지만 느낌이 좋다. 3일 동안 듣는 교육이 얼른 끝나서 일하고 싶다. 노는 것도 지겨워....
2. 온양과 아산을 왔다 갔다 하며 3일간의 교육이 끝났다. 나보다 3주 먼저 들어오신 선생님과 같이 과제물을 하다 보니 입사동기 느낌도 나고 너무 좋은 것 같다. 여태껏 일을 하며 OJT라는 것을 처음 겪어본 나로서는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경험이었다. 직원들이 직접 회사에 대해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입장이 되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조금 더 늘어나지 않을까? 여태 만난 분들은 전부 다 표정이 좋았는데...
3. 벚꽃이 만개했다. 회사 근처에 벚꽃이 만개한다는 건 너무 축복받은 것 같다. 봄을 흠씬 느끼며 자리로 찾아가서 앉으니 이제 진짜 회사 일원이 된 거 같은데 과제물이...... 급한 거 서둘러서 끝내 놓고 나니 그래도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난 아무래도 일을 해야 하나보다 zz
4. 토요일 오전 주민자치 회의가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를 받았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골목에서 어떤 차가 나와서 엄마 차를 박았다고. 덜컹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급하게 운전을 해서 간 현장은 보험사 직원들과 경찰과 상대 운전자 등이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많이 놀라셨을 엄마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는데 당장은 괜찮다고 하셨다. 상대 운전자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며 이야기했고 다행히도 상대방이 과실 100%라고 인정했고 치료비 렌트비 등 전액 보험 처리하기로 했다.
차는 이미 오른쪽이 심하게 긁혀서 문을 교체해야 할 정도였고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놀랐는지 자꾸 열이 난다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니 긴장이 풀리니 더 아프시다고 하셨다. 맘 같아선 병원에 입원시키고 오고 싶었으나 극구 싫다고 하셔서 일단 한수 접었다.(편하게 있는 게 좋을 테니까) 집에 모셔다 그러고 나서도 계속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아프시다고....(입원시키고 왔어야 해) 우선 병원에서는 아프면 바로 오라고 했으니 심해지시면 바로 모시고 가야겠다.
토요일 이것저것 계획했던 것들이 전부 틀어졌지만, 그래도 크게 다시시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하루였다.
꽃은 어느새 떨어지고, 새싹이 파릇하게 올라온다. 어느덧 완연한 봄을 지나 이제 여름을 향해 가나보다. 계절은 새로운 시작하는 여러 사람들을 응원 하지만 어느새 봄을 훌쩍 지나 여름과 가을 즈음에 있는 나에겐 이제 시작이라는 단어는 조금 어색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지난주 0416 기억 마켓을 진행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벌써와 이제라는 단어의 차이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말하는 사람의 억양이나 표정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말이다. 그냥 단지 ‘잊지 말아 주세요.’, ‘기억해 주세요.’인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얼마 전 잘 보지 않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는 어려서 기억도 안나는 사망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아이들이 죽었고, 가게 사장은 영업정지인데도 장사를 하겠다고 창문을 다 막아놓고 장사를 하다가 실내에서 불이 났고, 주은이 막아놓은 창문 때문에 아이들은 대피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불법영업을 할 수 있도록 눈감아준 공무원과 영업 정지인데도 장사를 한 주인에게 잘못이 있음에도 단순히 아이들이 술을 먹었다고 해서 모든 화살은 아이들에게 향했다.
사건 이후 부모들은 다신 우리 아이들 같은 사고가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었지만, 돌아온 건 고등학생이 술을 먹었으니 불량학생 아니냐, 불량학생은 죽어도 싸다.. 애들 팔아서 돈 버는 게 좋냐 등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당시 사고 학생의 부모님이 나와서 하는 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아이들 팔아서 돈 벌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고, 그중 반 이상을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며 자주 들었던 말이다. 아직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써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나는 아직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책임을 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볼 것이다.
사람은 기억 속에서 잊힐 때 비로소 죽는다는 한 애니메이션 대사처럼 누구라도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있을 테니까. 퇴근 후 술도 안 마시고 감성에 취한 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애써 상대방의 입장을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며, 내 마음을 다스린다.
어려웠다. 누구를 용서 한다는 것이,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몇 년 전 일련의 일들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가족의 일부와 좋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아직 풀리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는 그 일들을 잘 잊고 살고 있었다고 생각 했는데.....
한통의 전화로 그 일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잘 지내고 있었는데, 잘 잊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흔들어 놓는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냥 이대로 모르는척 넘어갈지, 아니면 마주할지 마주한다면 불편함은 나의 몪일테지만...
부모님이 만날 것을 ‘부탁’하셨고, 선약이 있음에도 그 약속을 깨고 가기로 했다.
마주한 그분은 내가 본인을 만나러 왔다는 것이 용서를 한다고 생각 하겠지만 내 심정은 아니었다.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없이 무작정 이런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너무 불쾌했다.
부모님의 부탁이었기에 나간 자리이긴 했지만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
불편한 속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고 빨리 자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그 불편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은 적막만이 흘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모든 상황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용서 하기로 했다. 자주 만날 것은 아닐거란 것을 알고 있고, 훗날 책잡히기 싫어서.
만남을 가지고 이틀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찝찝하고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고 계속 불편할 것이고..
싸이월드가 복구 되었다.
아마 내 동년배는 싸이월드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것이다.
우스갯 소리로 판도라의 상자일지, 추억 상자일지 까봐야 한다. 라고는 하지만
다시 내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을 간직해 둔 싸이월드를 맞이한다는 것은 다시금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일테니까.
2022년 5월 4일 밤 10시 34분 싸이월드가 복구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설레임에 사진을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밤새 보느라 잠을 못잘 것 같아서... 그리고
10대와 20대의 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지냈었지?
사진첩을 열어보니 고등학교부터 20대 초중반 까지의 사진들이 있었다. 이런 사진들을 찍었었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기도 하고 때론 지금은 별거 아닌
고민 들을 엄청 심각하게 하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하곤 했다.(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별거 아닌 것들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10대, 20대의 나는 힘들었지만 행복해 보였다.
항상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고 그 어린 모습에서 보이는 풋풋함이란...
30대 중반이 되고,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는 현재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보내주는 선물 같았다. 과거에도 잘 버텼으니 지금도 잘 버틸 수 있다고 말이다.
무언가를 책임 진다는게 어색했던 철없는 20대(지금도 없지만)를 지나 이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들이 익숙해진 30대 중반의 지금..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건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다이어리나 방명록이 복구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걸로도 충분하다.
그때 처럼만 힘내자. 아직 많이 늦지 않았으니까.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사진이나 글이라도 적어서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지만 기억들을 남기는 일들일 테니까.
어느새 6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나에게는 삶의 목표가 생겼다.
어릴때는 이 말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몰랐지만 점점 커가면서 느끼게 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다.
어릴 때 느꼈던 ‘책임’ 이라는 단어와 지금 느끼고 있는 ‘책임’ 이라는 단어의 뜻은
많이 다르지만 꽤나 오랜 시간 나를 움직이고 지탱을 하게 만들었던 말이었다.
몸이 아픈 이후로 ‘책임’ 이라는 말은 나를 짓누른 느낌이었다. 예전처럼 하지 못했고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걸린 시간이 4년이다.
항상 의욕 없었고, 몸도 사렸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 또한 하지 못했다.
자신감이 없었고, 밖에 있으면 누군가 나를 보고 수근 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지금도 간혹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친구들과 있는 거겠지.
친구들과 처음 호두와글을 하자고 했을때는 솔직히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과연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말을 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자는 마음으로 첫 글을 썼던 것 같다.
처음은 너무 어색했었는데, 지금은 호두와글을 제외하고 짧지만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은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내 하루를 돌아보는 일은 아주 좋은 것 같다. 같이 하자고 해 준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아직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고, 이것이 30대 삶의 무게인가 생각하면서
이제 나도 어른이지 하는 생각에 쓴 웃음 짓게 된다. 30대 중간의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나를 이 자리에 서있게 한거겠지.. 생각이 많아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22년은 어쩌면 나를 돌아보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좋은 일들도 많이 있었고, 3년째 살고 있는 집에서 6월에 이사도 하고 직장도 새로 얻었고...
앞으로도 좋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삶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번써 1년의 반이
지나갔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보자.
힘내줘 나의 3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