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와글2_3주차
by.뽀솜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 주제를 던져놓고는 바로 화나는 일이 생겼다.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기울어져있는… 당장에 목소리크고 우기면 일이 되는듯이 보이지만 나중엔 다시 처음부터 해야되고 민망한 순간들이 생기는데 여성, 외국인, 장애인, 나이, 직급, 연차 이 모든 차별이 하루에도 몇번씩. 그냥 지나가는 말로도 툭툭 나오는 차별이 어른이라면 그러지않을거란 일말의 희망이 와장창.
긴급품 요청 전화를 마친 어른의 말: 지지배가 어디서 떽떽거려??
듣고나서 기분이 나쁜나: 일하는데 지지배가 어디있으며 사무실에 그래 지지배 많다 근데 그렇게 말할일??? 언제나 얕보고 있다니 나쁜xx
외국인에게 지시하는 어른의 말: 야 이 xx 이걸 저렇게하라고 문을 닫으라고 xx 너네가 안하면 나도 안해
듣고나거 기분이 나쁜나: 아니 xx 본인 선임한테 그렇게 해봐 할 수 있나 xx
옆에서만 보고 들어도 이정도인데 이 화를 어떻게 풀어야할까…
이제 동년배들도 자녀교육이라던가, 신입과의 생활이라던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의 경력과 지위를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나누는데 실수하고 실패하고있지만 간간히 성공적인 경험도 나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마음의 여유, 넉넉함이 언제까지 커질 수 있을까 체력이 줄어들면서 신경쓰지 못해서 저절로 좁아지기도 하던데 끊임없이 다듬고 다듬을수밖에 없는걸까
지난주에 호두모임을 마치고 엄마집으로 갔는데 교회를 다녀온 엄마를 데리러나가야했다. 차가없던 시절엔 걸어서, 자전거타고 아주 가끔 데리러 갔는데 버스에 내려서 다솜! 이러는 엄마의 모습에 나 쫌 어른같네 싶었다. 엄마를 옆에 태우고아직 장거리는 못가봤지만 마을길을 천천히 얘기나누며 가다니 감격이다. 신뢰를 쌓아 장거리도 가봐야지
전에는 부당하고 화나고 힘들면 빼엥 눈물부터 났는데 요새도 마찬가지지만 마음 속에 눈물이 찬다.. 그러다 눈알이 촉촉해지는데 딱 거기까지다. 그러고나서 할말을 조금 한다. 어휴 더 하고 싶어..이제 집에와서 조금만 이불을 차면 되는거겠지. 점점 더 눈 앞에 대고 다다다 말할 수 있게되겠지.. 어휴 괜찮은 어른되기 어렵다.(xx)
by.탱
무려 7시간 째 썼다가 지우길 반복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릴 적에는 얼른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하지만 그 시점에서 20년 이나 흐른 지금은 강제로 으른(?)이 된거 같아 얼떨떨하다.
어느정도 책임감도 생겼고, 아이들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젊다는 이유로 낭비해가며 살았는데
이젠 힘에 버겁다고 해야하나..
예전에 다이나믹 듀오 노래 중 'Go Back'이라는 노래처럼 시끄러운 곳을 피해 산에도 가고 싶고(산은 아니고 조용한 곳)
오토바이 보다는 안락한 차가 좋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밥주고 옷 주고 하던 시절이 가끔 그립긴 하지만.
딱히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나는 부족하고 미성숙한 인간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금요일 책모임에서 내가 미움받고 싶지 않은 사람임을 고백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하고, 거절도 못해 항상 일정이 꼬이긴 하지만,
친구들덕에 다시 한번 나를 생각 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주 글에 중학교때 일기를 발견했다고 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마치 흑염룡이 나올것 같아...
이제 채 2개월도 남지 않은 35살.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이 내가 살아갈 시간 중 제일 어린 시절이라는 말처럼 오늘도 즐기자. 너무 두서 없고 그런 글이지만 내 정신 상태 반영이니까 ㅋㅋㅋ
지금의 나도 소중하다.
어른이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힘내줘 나의 30대!
by. 산
나는 굳이 쓸쓸한 아이였다. 나보다 돌보아야하고 지켜야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애쓰던 아이. 인생 최고로 쓸쓸했던 대학시절에, 어느 교수님이 나에게 이런 메일을 보낸 적 있다. “소산은 얼굴에 ‘말 걸지마시오’라고 써져있는 사람 같다”고. 처음으로 그 누구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솔직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에 나는 정말로 말 걸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혼자 지냈다. 도서관에 숨어있으며, 김경주의 시를 읽으며 이 세상에 사라진 계절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마구 늦은 사춘기였다.
그러다 말을 걸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쓸쓸함을 조금씩 잊었다. 마구 돌봄을 당했던 시절이었다. 숨기지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 고독한 밤을 보내지 않게 도와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난만한 시간을 보냈다. 쓸쓸한 것만큼 좋은 것은 같이 웃는 것이구나, 같이 좋은 순간들을 간직하는 일이구나.
쓸쓸한 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천진한 것은 부지런히 따라 다니고 싶은 것이다. 부지런히 따라다니고 싶은 친구들이 늘어나는 만큼 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나의 몫이 아닌 쓸쓸함을 떠안게 되는 만큼 나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아이와 아이 아님, 어른과 어른 아님이 어느 시절에 결정이 나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까지고 쓸쓸하고 천진한 채로 있고 싶다.
주저흔 /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된 화삭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 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 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ps. 지금은 별 감흥이 없지만 예전에는 이런 시를 싫으면서 시발 이게 시지....,. 막 이랬던 고독한 역사.)
by. 경주
어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1.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결혼을 한 사람
일단
2번 어른은 너무 상대적이고 3번 어른은 난이도가 높다.
1번 어른에 대해 적어보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일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부담감을 항상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맞벌이와 교회활동, 누나들의 타지생활로 혼자 있을 때가 많았고 알아서 견뎌내야 하는 착한 막내아들이자 장남으로서의 든든한 역할을 부여받았는지 내가 자처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그 역할로 어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갔고 그때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태어나서 처음 부모님의 싸우는 모습을 봤다. 그 후로는 못 봤지만 큰 충격이었고 더욱더 누군가의 도움없이 나 자신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강화되었다. 이런 일들 때문인지 나의 힘듦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게 익숙지 않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의 숙명 같은 과제 중 하나였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창업이 하고 싶어졌고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창업하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불안한 시기들이었다. 불규칙한 매출, 모호한 사회적 가치, 동업자와의 관계 등 오롯이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걸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때쯤 나의 바닥을 확인했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천안의 사회적 경제 기업 네트워크에서 일도 하고 또 창업이 하고 싶어 언더독스 교육도 듣고 당장 나의 욕구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건 회사 안에서 책임지려는 어른은 많이 없었고 다들 회피하거나 도피하면서 나도 모르게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성장촉진제 맞은 과일 마냥 몸만 커지고 있었다. 나란 사람이 부풀어 터져버릴까 불안하던 시기들도 있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어느덧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익숙해지고 책임져달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위치란 걸 지금 조직에 온 지 3년 만에 알아차렸다.
그때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나의 바닥을 아는 어른,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어른, 나의 모든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by. 시내
중학교 1학년 때 였던가, 학교를 일주일정도 다닌 시점. 강단에 서있는 선생님들, 무사히 어른이 된 것 같은 사람들만 봐도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고작 중학생의 하루가 무거워 죽겠는 내가 어른이 될 수는 있는걸까 싶어 아득했다. 중학교도 다녀야 하고, 고등학교도 다녀야 하고. 그다음에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스무살,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을때 ‘그렇다면 이제 어른인가?’ 생각해봤지만 여전히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직 어른 같아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서른살이 되던 밤엔 정말 엉엉 울었다. 여전히 나는 애송이 같은데 이제 서른살이란다. 이제 더이상 ‘어려서~’ 와 같은 이유로 넘어갈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직감했다. 내가 먹은 나이에 이유가 필요한 시기가 왔구나 싶어 덜컥 겁이났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때는 주로 사소하고 사사로운 순간들이었다. 사고 싶은 만화책을 한꺼번에(엄마 눈치 없이!) 샀을 때. 접촉사고가 나고 내손으로 보험사를 부를 때. 대출을 받기위해 이서류 저서류 챙겨서 은행에 갈 때. 대리운전을 불러서 집에 갈 때. 친구한테 청첩장을 받을 때, 친구들의 결혼식에 갈 때. 회의할 때 듬직하게 보이려고 애쓸 때… 아무튼 고작 나 하나를 책임지는 일들을 할때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이정도의 어른이다.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어른이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도 계속 고민해야겠지. 바라건데, 그때그때의 몫을 하는 어른이고 싶다. 책임질 줄 알고, 고집스러워지지 않고, 유연하게.
by.빈
어른이 뭘까나. 나이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주변에 나이 먹고도 한심만 사람들이 많거든.
나는 어른인가. 나이는 먹었는데 어른인 줄은 모르겠다. 나이 듦을 느끼는 경우는 많아졌다.
얼마 전에 누가 몇 살이냐고 물어 보길래 몇 년생이라고 대답했는데 나이를 물었을 때 정확히 몇 살이라고 말하면 요즘 mz세대이고 몇 년생으로 대답하면 옛날사람 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몇 살인지 잘 안 세어 봐서 누가 물어보면 생각하느라 답하는데 한참 걸린다. 생일 케이크에도 나이에 맞춰 초를 꽂지 않는다. 옛날사람 맞그나.
또 최근에 20대 초반 친구들이랑 대화 할 일이 있었다. 내가 뉴진스 소속사 맞춘게 그렇게 오올 하고 박수 칠 일일까. 그들에겐 내가 뉴진스를 알고 하이브를 아는게 신기할 정도로 옛날사람처럼 보이는 누가 싶어 조금 낯선 느낌을 받았다. 나도 나의 옛날사람들에게 그래 왔었는데 말이다. 썩 즐겁지 않아서 다신 맞장구 쳐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작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는 조금 시시하긴 하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참지 않고 표정으로 라도 욕을 하거나 대놓고 무시해서 불쾌함을 표출 할 때 느낀다. 당연한 거지만 그간 잘 못했던 일이라 하고 나면 좀 속이 시원해진다. 개복치 같은 마음이었는데 슬픈 얘기지만 사람들한테 기대와 미련을 버리니 담담해지고 편해졌다. 쓸데 없는 일에 연연하지 않을 때 에너지 쏟는 것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좀 어른이 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침착하고 확실하고 포용력과 이해심을 갖춘 우아한 사람이다. 지금 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표정으로 욕을 할 수 있는 정도지만 좀 더 단단해져서 웃으면서 우아하게 무안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by. 이성철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때
혼자 아플때, 월급날, 먹고싶은걸 먹을때, 시발비용을 지불할때, 누군가 내게 일을 맡겨줄 때, 체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낄 때, 더 이상 약속이 가볍거나 기쁘지 않을때, 번아웃이 와도 어쩔수 없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때, 거절이 미안하거나 마음아프지 않을 때, 큰 일을 겪어도 덤덤할 수 있을때.
아마 초등학생때부터 의젓하다는 말을 들었던가. 아니, 아기때 아기 같지 않게 잘 울지도 않아 이쁨을 받았었다고 하니그냥 그렇게 태어났다고 믿고 살아왔다. 집에서 나온지 11년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살기 시작했고 리에서 읍으로 충남에서 경기도 그리고 서울로 집에서 점점 멀어지기를 성공했다. 그러다 다시 집과 가까워지고 있다. 3년 전 아빠의 몸이 다시 아프기 시작하며 아빠랑 가까워 지고 같이 조금 많이 늙었다. 아빠의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을때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든 엄마와 동생이 일을 빼는 것 보다 서울에 있는 내가 아빠를 모시고 병원을 가는게 합리적이었다. 3년전 암 선고를 받았을 때와 얼마 전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때, 의사 선생님은 아빠를 내보내고 내게 말을 전했다. 아직 아빠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겠지. 진료실에 앉아 항암치료를 받는 아빠 앞에 앉아 ‘장례 절차’를 검색했다. 합리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보호자가 되었다. 엄마에게 아무렇지 별일이 아니었다는 듯이 따로 말을 전했을 때 담담하게 말할수 있게되었다. 집에서 나온지 11년이 지났고 다시 집과 가까워지고있다. 집을 나와 혼자 살 수 있을때 어른이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다시 집과 가까워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것만 같아 싫다.
by. 임카
와 어른이다...
이것은 나이로 가르는 물리적인 어른 말고, 참어른을 보았을 때, 나의 온 마음을 다해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나오는 진심어린 찬사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못남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 나의 치기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다정하고 너그럽게 대답해주는 사람, 그리고 임신, 출산, 육아라는 그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거나 해내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존경에 겨워 나오는 최상급의 표현.
정말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습관처럼 다짐하며 산다. 솔직하고 담백하고 다정하고 너그러워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너무 애써서 저녁만 되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뭐가 됐든 열심히 흉내 내며 살려고 하는데, 임신 출산 육아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와는 너무도 먼 이야기,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
결혼은 싫어도 아이는 원하는 여성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둘 다 시큰둥한 사람. 아니 오히려 결혼은 해도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나는 그러지 못하겠다고. 사실 이건 그럴싸한 핑계이고 나는 도무지 아이들이 예쁘지가 않다.
아이는 시끄럽고 성가셔. 말을 못할 땐 막 시도때도 없이 울고, 말을 좀 하기 시작하면 계속 뭘 물어보잖아. 그러면서 자기들은 낮잠 잘 때 주변에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깨버려서 눈치 보게 만든다니까. 걸음마라도 시작해봐, 집이 엉망이 되는 건 한순간이야. 그러다 조금 더 크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자꾸만 심심하다면서 관심을 요구하지. 다 같이 가는 여행에 아이가 끼어있으면 신경 쓸 일이 또 얼마나 많아. 취향도 입맛도 아닌 관광지와 식당을 들어가게 된다니까.
와 너무 못나고 인색하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에 대한 나의 좁은 마음. 친구의 아이를 만났을 때도, 단톡방에 아이 사진이 올라와도 진심으로 귀여워해주지 못해 뚝딱뚝딱 리액션이 나와버린다.
언니가 임신을 했다고 했을 때 너무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언니가 엄마가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버거웠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모가 되는 경우의 수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이모가 된다니...... 내가.. 이모가....? 조카가 예쁘지 않으면 어쩌지? 예뻐하는 척을 해야 하나? 그런데 열달만에 세상에 나온 조카는 생각보다 예뻤고, 모성애라는 것과 함께 떠올리는 것조차 소름 돋았던 언니는 몸과 마음과 일상이 무너져버리는 시간들을 울면서 씩씩하게 해쳐나갔다. 심지어 다정하고 너그럽게. 정말 어른처럼. 그리고 이모가 될 준비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듯, 조카는 그냥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모가 되고, 내게도 사랑하는 어린이가 생기면서 비로소 나의 좁은 마음을 살펴보게 됐다. 나는 무서워서 싫었던 게 아닐까. 품을 깜냥이 안 되니 시끄럽고 성가셨던게 아닐까. 한없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작고 소중한 존재, 끝도 없는 물음을 던지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 이리저리 뛰고 뒹굴면서 쑥쑥 커가는 몸과 마음을 못나고 인색한 나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으니까.
언니는 나와 성격도, 취향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다른 사람이지만, 우리는 자매니까, 같은 부모와 시절을 나눴으니까, 많은 것들을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함께 느끼나보다. 언니가 울면 나도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조카와 함께 사랑하는 언니의 분투를 지켜보며 좁은 마음이 한 평 쯤은 넓어진 것 같다. 큰소리를 내며 온 공간을 휘젓는 아이를 봐도, 울상을 진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뒤를 따르는 보호자를 봐도, 시끄럽고 성가시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