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근황.
1. 새해라니. 작년 베오베를 기록한 것은 결국 어디에도 남기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어찌되었든 새해가 되었다. 기특하게 1월 1일 해 뜨기도 전에 공주에 갔다가 부모님과 급작스러운 여행을 시작했다. 목포와 진도, 사천과 남해, 하동을 드라이브했다. 일상에 충동적이고 무계획한 이벤트들이 많은 건 부모님을 닮은 탓이다. 어렸을 때도 종종 잠결에 차에 실려 눈을 떠보니 동해였던 날이 많았다. 네비의 경로를 무시하고 바다로 바다로 차를 옮기며 여행했다.
2. 운전은 아버지가 하고, 숙소는 내가 예약하고, 밥은 아버지랑 나랑 번갈아가면서 샀다. 지금 유일하게 돈 버는 사람은 엄마뿐인데 지갑하나 들고 오지 않고 달랑달랑 여행했다. 귀여웠다. 갑작스런 여행이라 여기어때로 잘 곳을 급하게 예약했다. 어디에나 있는, 이름만 호텔인 모텔중 가장 싸고 깨끗해 보이는 곳을 찾았다. 현관에서 키를 꽂고, 이상한 버튼으로 된 조명을 키고, 어매니티를 챙기는데 너무 능숙해보일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나는 익숙한 컨디션의 공간이었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했다. 욕조도 있고 샤워타올도 있고 가운도 새것이라며 이런 방이 5만원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때타올을 사서 때도 밀었다. 귀여웠다. 도시에 왔으니 시장통닭이 아닌 치킨을 시켜먹자고 해서 배민으로 시켰다. 어떻게 찌라시도 없는데 치킨을 시켰냐며 의아해했다. 배달의 민족도 모르는 사람들하고 함께 여행하는데 괜히 우쭐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먹는 것이라며 BHC 레드킹을 시켰는데 사실은 나도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너무 달고 매웠다.
3. 여행이 끝나고 다시 한산에 와서 오래 잠을 잤다. 일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작은 도서관 일은 결국 하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책이나 실컷 읽어보자 했는데, 아직 근처도 가지 못했다. 작년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있다.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몸에 익어서 출근을 안 하려니 몸이 쳐졌다. 게으름은 왜 이렇게 빨리 회복되는지. 일부러 몸을 많이 움직이는 일을 시작하려고 벼르고 있었던 주방에 손을 댔다. 이틀을 새벽까지 꼬박 일했다. 주방타일을 붙이고, 마르는 동안 거실벽에 스테인을 바르고, 스테인이 바닥에 떨어져서 결국 바닥까지 오일칠을 했다.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차근차근 오래 일했어도 되는데 몰아서 하는 습관 때문에 이틀만에 끝을 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딱 맞는가 싶다.
4. 떠정이가 독일 가기 전에 서미또(서정, 미카, 또르뚜가) 친구들이 한산에 왔다. 마침 목공하는 미카와 선반이 동시에 와서 선반까지 달아버렸다. 보쉬드릴을 산 지 5년만에 해머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전문가를 곁에 두고 볼 일이다.
주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평일. 새벽까지 먹고 대낮까지 낮잠을 자고 생태원과 띠섬목에 다녀왔다. 평일에 같이 놀 수 있는 프리랜서 친구들 최고!
5.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간다’ 라는 김해리 기자의 글을 많이많이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혼자인 시간을 의젓하게 꾸릴 자신이 없어 손님을 초대한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을 정돈하는 사소한 습관들이 생겼다. 화장실 머리카락, 어질러진 책상들을 서둘러 정리한다. 누가 올지 모르니까.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에서 혼자 살아갈 자신은 별로 없다. 귀찮긴 하지만 호스트의 자아를 갖는 것은 내 삶엔 중요하다.
6.
반대로, 늘 소비자이기만 했던 삶에서 남의 집 거실의 경험은 생소하다. 손님이지만 마음대로 누려선 안 되는 태도는 초대를 받으면서 배운다. 나는 좋아하는 친구들을 꼭 집에 초대한다.
7. 그래서(?) (연초에 뭔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섭섭하니까.
) 예쁘게 해놓고 나만 보면 아쉬우니까. 쌓아놨던 책 중에 하나를 함께 읽는 모임을 핑계삼아 거실쉐어프로젝트. 좋아했던 제현주의 책을 함께 읽고,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들. 퇴사자와 서울탈출꿈돌이들 모여보아요. 거실의자가 6개니 선착순 6명.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