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

by 소산공원

1.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슬픈데, 왜 슬프지? 아픈데 왜 아프지?


첫번째 뉴스를 듣고는 하루 정도는 외면한 채로 있었다. 모르고 싶은 일로 두고 싶었다.

밤이 가까워지자 가까운 사람의 일, 상상 가능한 영역으로 다가왔다. 모른 척 했던 감정이 휩쓸려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 분노가 일거나 정확히 들여다보고 싶거나 충분한 애도를 하고 있는 상태도 아니다. 그저 정말 허망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어떻게 그런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거지?


어제는 원래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친구에게 집 가까운 곳까지 데려다달라 부탁을 했다. 과한 상상이긴 하지만, 혹여나 택시기사님이 개소리를 하면 어떻게 감당해야하지? 앞으로 올 무수한 말들과 싸움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와서 이상한 무력감을 느꼈다.


출근을 하려다 말고 창문 카페에 와서 일을 했다. 산책과 환기가 필요한데. 환기라는 말 앞에서도 머뭇거려진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잃거나 오해하게될까. 벚꽃을 잃는 것처럼 단풍도 잃을까.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카페에서 나와 금석천을 걸었다. 굴다리 아래를 혼자 지나는데 갑자기 기도의 방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어둡고 고요하게. 멈추어서서 잠시 기도를 했다.

굴다리를 벗어나자마자 하천과 산책로 사이의 풀 더미에서 쥐가 한마리 보였다. 꽤나 거리가 가까웠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 사이을 대롱대롱 옮겨다니며 뭔가 분주히 먹고 움직였다. 보다보니 눈이 잘 안보이는 쥐라는 것이 느껴졌다. 5분이 넘게 기침을 참으며 쥐가 사라질 때까지 봤다. 왜인지 무거운 마음이 조금 덜어졌다. 보이지 않으면 더듬으면 되지. 더듬다가 도망가면 되지. 잡아먹히면 되지.


뭐라도 계속 읽고싶어서 도서관에 잠깐 들러 졸면서 책을 읽었다. 단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용기있게 싸워야한다. 무기들을 조용히 더듬어야겠다.




3.

주말 밤에 나는 또 친구들에게 올해의 나의 주주추바키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후련하지만 뱉고나서 주어담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글로 해야하는 이야기가 있고 말로 해야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든 실패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사건과 주주추바키 고민이 마구 범벅되어서 혼란스러운 와중에 권김현영샘 글을 보고는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쪼이는 어제오늘 홍대 클럽에 있었다. 상황을 알고도 그랬다. 새벽 4시가 넘자 이태원에서 홍대 클럽으로 넘어온 사람도 있었다. “신나는 노래가 나오고 춤추고 있어서 개념 없어 보이죠? 그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또 클럽으로 가나, 이상하죠? 제가 대화 나눈 사람은 트라우마에 절어 있었어요.” 쪼이는 혼자 집으로 가고 혼자 잠드는 게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아침 9시까지 클럽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아마 이태원에서 넘어온 그 사람도 그랬을 거예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무개념’, ‘미친놈’들도 물론 있겠지만, 이런 상황을 소화하는 단계와 방식이 다 다르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쪼이의 이런 해석이 우리를 인간으로 다시 묶어준다.

압사 당시 상황을 상상해본다. 사방에 있는 사람은 나를 구해주기도 하지만 나를 죽일 수도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타자가 입히는 상해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해내고자 하지만, 만약 상해를 막는 데 정말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이게 된다. ‘자기보존의 원칙’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우선 내가 살고 보면 된다. 그러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하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자기보존의 원칙을 따라 행동한 사람에게 “인간도 아니다”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다운 행동인가. 타자와 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 그 자체다. 그 동요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재난 상황을 브리핑하는 소방관의 떨리는 손 같은 것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관계라는 것이 주고 받음이라고 생각해서 횡설수설을 했던 것 같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요하는 내 자신에 대한 것이다. 그 동요를 들여다보고 돌보는 일에 지혜를 구하고 싶다로 이야기를 건냈으면 조금 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동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내 몫이지만, 어떻게 해야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겠냐고.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거냐고.

이 후에 이어지는 글들도 너무나 좋다. 자국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안부를 묻는 걸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로 한다. 어떤 관계는 상처만 옮기기도 하니까. 동요로 말을 걸기도 하니까. 도망가지 말아야지.



4. 덧,

요새는 대화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다. 언제나 말 문을 닫았던 것은 내 자신이었다는 것을 또한 안다. 비빌언덕을 보고 비비기. 비겁하긴 한데, 그게 날 지키는 방식이었다. 요새는 언덕들이 조금 더 풍요롭다. 그게 날 살게 한다.




그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이태원에서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참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태원동 호텔 옆 38평 정도 되는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사람들이 밀도 높게 서 있다가 앞으로 쏠리듯 밀리면서 생겼다는데 이게 우발적 참사인지, 행정력의 미비로 인한 인재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이 죽음이 정말 불가피했을까.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뉴스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공유되는 소식을 읽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책임을 물을 곳이 불분명하면(혹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을 부인하면), 사람들은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이번에 희생양으로 가장 먼저 선택된 것은 핼러윈 데이의 무국적성과 상업화된 기념일 문화였다. 한국 문화의 정통성은 혼종성 그 자체에 있는데도 말이다. 두번째 과녁은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게 겨누어졌다. 응급구조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참가자 일부가 응급차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짧은 동영상이 특히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이태원에 있던 사람 중 일부는 사건 발생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홍대 클럽으로 가서 놀았다는 고발(?)도 이어졌다. 이것은 모두 인간성 상실의 증거로 간주됐다.

쪼이는 어제오늘 홍대 클럽에 있었다. 상황을 알고도 그랬다. 새벽 4시가 넘자 이태원에서 홍대 클럽으로 넘어온 사람도 있었다. “신나는 노래가 나오고 춤추고 있어서 개념 없어 보이죠? 그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또 클럽으로 가나, 이상하죠? 제가 대화 나눈 사람은 트라우마에 절어 있었어요.” 쪼이는 혼자 집으로 가고 혼자 잠드는 게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아침 9시까지 클럽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아마 이태원에서 넘어온 그 사람도 그랬을 거예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무개념’, ‘미친놈’들도 물론 있겠지만, 이런 상황을 소화하는 단계와 방식이 다 다르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쪼이의 이런 해석이 우리를 인간으로 다시 묶어준다.

압사 당시 상황을 상상해본다. 사방에 있는 사람은 나를 구해주기도 하지만 나를 죽일 수도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타자가 입히는 상해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해내고자 하지만, 만약 상해를 막는 데 정말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이게 된다. ‘자기보존의 원칙’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우선 내가 살고 보면 된다. 그러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하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자기보존의 원칙을 따라 행동한 사람에게 “인간도 아니다”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다운 행동인가. 타자와 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 그 자체다. 그 동요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재난 상황을 브리핑하는 소방관의 떨리는 손 같은 것 말이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더 많은 행정력을 투입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며, 참사 당일 서울 곳곳에서 일어난 시위로 병력이 분산됐다고 언급했다. 기어이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이렇게 책임 회피하며 시민을 분열시키는데,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가애도기간에는 5일간 조기를 게양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무자들이 근조 리본을 단다고 한다. 이에 맞춰 핼러윈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편의점과 커피전문점에서는 핼러윈 관련 프로모션 상품들을 매대에서 치우고, 놀이공원에서는 핼러윈과 연계된 퍼레이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콘서트와 팬클럽을 위한 연예기획사 프로그램들도 중단됐다.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애도인가? 처벌이나 회피가 아니고?

황정은은 1996년 연세대, 2009년 용산, 2014년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작소설집 <디디의 우산>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내가 그것을 트라우마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어. 우리는 그 장소에서의 경험 자체를 별로 말하지 않았지. 고통스러운 기억이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같은 걸 겪었으니 다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이 사태를 가까이에서 겪은 이들의 하루가 어땠는지, 그날의 신남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온도 차이와 예측 불가능했던 비극이 어떤 자국을 남겼는지 아직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애도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곳에 있고자 했던 욕망 자체를 과녁으로 삼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애도할 수 없다.


<이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권김현영, 한겨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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