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_11.01

by 소산공원

이쯤되면 아침 알레르기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잠을 자는 면역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제는 급격하게 피로해져서 일찍 잠들긴 했다. 할무니처럼 10시정도에 잠이 들고 5시 30분 정도에 깨버린거다. 말똥한 채로 침대에 있기 싫어서 방에 와서 책을 읽다, 어제 쓰던 일기를 정돈하다가 다시 한시간 정도 자다 깼다. 주말 농도가 또 너무 짙어져버려서 그런 것 같다. 하루에 한가지 고민, 한가지 일만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


미뤄둔 책자 작업 때문에 또 오래 일 했다. 지난주 여유있게 보내면서 예고한 하루라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다. 일을 몰입해서 하게 되면 오히려 생각들이 선명해져서 좋다. 일이 없는 날에는 너무 감정적이어서 탈이고, 일을 시작하면 너무 한꺼번에 많은 일 생각을 한다. 머리가 꽉꽉 차거나 텅 비거나. 기복이 좀 있나? 요새는 내 정신건강.. 괜찮은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상담소에 찾아가본 적이 있다. 병원 같은 곳은 아니고,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상담실이었을까?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원성동에 있던 작은 사무실을 기억한다. 카모메 식당의 고바야시 사토미를 닮은 느낌의 선생님이 기억나고, 모레놀이 치료 앞에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이걸 뭘... 어떻게... 그냥 평소에 꾸미고 싶었던 방 같은 것을 꾸몄고 뭔가 말하는 중간중간에 전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지었던 어색한 표정이 생각난다. 왜 그런 곳까지 혼자 찾아가서 괜찮다고 말한거지?


그런 곳까지 찾아가서 굳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정말 괜찮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와서 누구랑 그걸 나누어야하는 것이 영 어색했던. 나만 잘하면 돼.. 라는 말로 나와 이 세계를 구원하는 방식. 지금은 그러고 싶진 않은데도 대화 앞에서 뭉툭한 자신을 발견한다.


얼마 전 여성동지들과 대화를 연습하는데 스몰토크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스몰토크가 귀찮고 어렵다고 말했다. 조금도 공감대가 없다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한담? 낯을 까는 일이 피곤하기도 하고 그 무용함이 지겹게 느껴졌달까.


근데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것을 발견. 깐도리를 좋아해, 나는 과일로 해장해 그래서 스크류바를 먹어, 이 민들레 홀씨를 좀 봐, 나는 mbti가 싫어. 이런 작은 얘기들로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나도 막 부글부글 말이 끓는 사람이 된다. 대화연습학원같다. 열심히 배워야지. 복습에 예습을 거듭해야지..


아무튼 좋은 대화를 할수록, 풍요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양적인 것이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나의 그늘을 본다. 지금은 혼자 날 구하고 싶지않다. 많이 물어봐주고 말했으면 좋겠다. 텅비거나 흘러내린 것들을 입 밖으로 뱉고 나누는 것. 이제는 정말이지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기록하고 싶은 것.

아침에 이모한테 전화가 왔다. 괜찮냐고.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물으니 아버지한테 내 번호로 보이스피싱이 갔단다. "아빠 아빠 살려줘 흑흑." 일단 난 평생을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아닐거라 생각을 하긴 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비슷해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엄마에게도 비슷한 전화가 왔다고. 나는 별일이 없다며 놀라지 말라고 괜찮다 말했다. 아버지는 뭘 하고 다녔으면 핸드폰이 털리냐고 조심하라고 했다. 보이스피싱 그거 어떻게 조심하는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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