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근을 하고, 오늘 안했어야하는데! 밤부터 폭설이 내렸다.
폭설. 폭설. 폭설이란 말은 정말 폭설과 잘 어울리는 말 같다.
그런데 폭설의 폭은 무슨 뜻이지?(물음표대장)
사납고, 해치고, 모질다는 뜻이군. '폭력'할 때의 '폭'자가 되겠다.
그런데 한자를 만들어낸 구성 이야기가 재밌다.
햇빛에 곡물을 말린다는 뜻으로 만든 단어라는데, 나중엔 너무나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라는 단어로, '사납다'라고 쓰였다잖아! 폭력의 폭자가, 동물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식물과 자연물에서 온 것. 재밌다 히히.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사나울 폭자가, 앙상할 박으로 쓰일 때도 있는 것이다. 사나움과 앙상함을 동시에 말하는 단어라니. 사납다는 것은 결국, 성기고 앙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의미심장한 글자였다니. 폭설폭설. 희고 사납고 앙상한 눈.
아무튼. 폭설을 해치고 출근을 하려는데 차에 눈이 빽빽하게 쌓여있다. 차를 살 때 받은 신개념제설기(그냥 빗자루임)로 차에 쌓인 눈을 쓱쓱 치우고, 4층까지 두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따순 물을 받아 언 창문을 녹였다. 눈을 치우고나니 25분정도 지나있고 온 몸에 눈이 묻어 있었다.
세차를 한다거나, 얼어버린 차를 녹이거나 집 앞 대로의 눈을 치우는 일. 그러니까 대체로 아버지들이 주로 하는 일을 몸소 해낼 때 나는 되게 큰 효능감을 느낀다. 스스로가 너무 뿌듯하고 대견하다. 나 이렇게 씩씩한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기분이다. 일을 잘 해낼 때와 누군가를 돌볼 때와는 전혀 다른, 상쾌한 효능감. 아침부터 몸을 써서 좋았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고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좋았달까.
사실 집에서 일을 해도 되지만 낮에 마라샹궈가 놀러오기로 해서,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샹궈랑 내년 초 일도 꾸리고, 올 해 미쳐 못 이룬 꿈. 다이어리를 만드는 회의를 했다. 뭐랄까.. 다이어리를 만드는 일은 지역 디자인 업체로서 위치를 가늠하는 어떠한 지표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 사실 다이어리를 만들지 못해 조금 초조한 마음이 들었었다. 올 초에 플래너 하나를 만들면서 연말에 다이어리를 열심히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샹궈가 준 일을 겨우 받아서 하게 되었다.
책자의 꼴을 갖춘 것, 다이어리나 노트를 만드는 일은 조금 더 잘해보고 싶은 일에 가깝다. 복잡한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아 심플하면서도, 소재나 마감 방식에 따라 만듦새가 달라지니까. 종이, 적절한 크기, 제본을 실험하기에 좋은 작업물이다. 샹궈의 (현)직장에서 하는 마지막 일을 꼬옥 함께 했으면 좋겠다.
다이어리는 지역 업체에서 안 만들고,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에서 만드는데 견적 문의를 했더니 진짜 졸라졸라 친절하게 종이의 크기, 결에 대한 세세한 강의를 해주신다. 지금까지 이걸 모르는 나도 한심하지만, 사실 인쇄소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것은 감탄할만한 일이다. 인쇄 공부는 깊게는 못하게 될 것 같지만... 여튼 찬찬히 배울 것들이 많이 있어 기쁘다!
시내랑 내년도 얘기를 찬찬히 시작했다. 일단 몇 월에 쉬고 싶은지부터 얘기하고. ㅎㅎㅎㅎ 지금과는 크게 다르지 않게, 규모에 맞는 선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리고 싶다. 장기 계획을 세워야하지만, 첫 삽을 뜨고 싶다. 재정을 잘 다룰 줄 알고 용기도 있는 조언자가 필요한 시기다.
요새 뭔가를 도모하고 있는데...! 이 계획의 중심에 어찌 되었든 사과나무가 있다. 일을 조금 더 집중해서 할 시기라는 생각을 하곤 이리저리 일상을 배치한다. 그래도 별로 싫지 않은건, 노는게 일, 일하는게 노는거.. 뭐 이런 균형을 잘 맞춰나가고 싶기 때문일거다. 폭설폭설. 폭일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