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의 계절_12.20

by 소산공원

일기가 뜸한 몇가지 이유.


1. 밤에 너무 졸리다. 8시-9시 사이가 고비일 때가 많다.

2. 비밀일기를 쓴다. 일기가 3겹 정도로 늘었다.. 대체뭐야......

3. 졸립거나, 비밀일기를 쓰지 않은 날에는 보이는 일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종종거린다. 아아 일기도 써야하는데, 일도 해야하고.. 밥도 먹어야하고 설거지도 해야하고.. 젠장...... 그러다가 일기 쓰기가 대체 뭐길래 이런 집착을 만드나! 싶어서 마음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짧은 메모들로 기록을 해둔다.

4. 산책을 못하기 때문에.


날이 추워 산책을 안 한지 꽤 오래 되었다.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 겨울에 걸을 일이 특히 없다. 하루에 200보나 걸으려나. 그러니 몸과 발이 둔하다. 걸으면서 마주하는 것들이 적어서일까. 별로 할 말도 없고 그냥 종종거리는 마음뿐이다. 걷거나 종종거리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지.


그렇지만 이렇게 추운 날에도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안성천변을 힐끗 보면 늘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하 -4도가 찍히는데도 멀리서 보일 정도로 입김을 뿜으며 뛰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걷는 할머니, 털모자를 쓰고 천천히 걷는 사람들. 오늘은 나도 꼭 산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차를 끌고 나온다.


인터뷰가 끝나고 온양민속박물관을 산책할 요량으로 까페 온양으로 갔다. 까페 온양은 그림자 맛집. 해가 질 무렵엔 안쪽 공간과 창밖의 산책로가 고르게 예쁘다. 카페 공간에 있는 화분과 도자기, 식물에 그림자들이 겹겹히 쌓이고 커다란 유리창 바깥으로 보이는 눈 쌓인 길과 나무에 주황색빛이 찬찬히 고인다. 문을 닫을 시간과 볕을 거두는 시간에 맞춰서 알람을 맞추어두고 짧게 일을 했다. 노트북 전원이 꺼지고 결국 알람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새로 산 모자를 눌러쓰고 짧은 산책을 했다.


볕이 잘 들지 않은 곳엔 고스란히 눈이 쌓여있다. 길이랑 길 아닌 곳이 구분되지 않아서 눈이 덮힌 곳들을 그냥 함부로 걸었다. 눈 쌓인 돌 사진을 찍었다. 걷다가, 몇 개의 돌을 찍다가. 마침내 양 석상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돌이, 돌들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돌이 쓸쓸한데 내가 왜 눈물이 나지. 미쳤나보다, 막 이러면서 짧은 산책을 했다. 내 몫이 아닌 슬픔을 감당하려 하지 않아야할텐데.


커다란 환기의 계절. 맘에 소란스런 바람들이 슝슝 드나드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아 조금 갑갑했나보다. 몸과 마음의 온도를 맞추어야지. 단단한 돌멩이처럼, 따뜻하게 드나드는 것들을 오래 기록해야겠다. 찬바람의 계절 안에서도. 3겹의 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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