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지 않은 날들에_12.28

by 소산공원

일기를 쓰지 않는 동안 이사를 했다.

오늘은 새로운 집에서 자는 첫 날. 분주하게 짬을 내 움직여 준비했는데 결국 이사에 반쯤 실패하고 말았다. 이사온 집 골목에 세워진 차 때문에 사다리차가 들어오지 못했다. 결국 창고에 짐을 내려놓고 내일 다시 시도하기로. 짐이 다 포장되어있어서, 입을 패딩과 노트북을 겨우 챙겨 첫날 밤을 보낸다. 쓸쓸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렇게 휑뎅그렁한 풍경이라니. 절간에 수련하러 온 기분이 들어 조금 웃기고 고독하다. 요상하게 이와중에도 백팩에 위스키 한 병을 챙긴 것을 발견했다. 뜨겁게 다독다독하는 텅빈 밤.


어차피 가진 살림 내에 그렇게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을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큰 고민을 하지 않고 한적한 동네에 있는 집을 얻었다. 전에 살던 안성 집은 지금껏 살던 집 중에 가장 따숩고 깨끗한 곳이었는데, 지금 집은 아마 북면 다음으로 춥고 오래된 집일거다. 보증금과 월세는 똑같은데, 다시 가난으로 걸어들어온 기분.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웅이와 이별을 했다. 요란스럽고도 긴 이별이었다. 헤어질결심을 말하고 이사를 나가는 날까지, 그동안 못해왔던-해야했던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나누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울고, 술을 마시면서도 울고 웃었다. 동거를 한 연인의 이별은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개면서도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을 끓이다가도 금새 애틋해지고, 매일 보는 안성천 앞만 지나가도 서운해졌다. '진작'과 '나중' 사이에 있는 말들만 나누며. 그렇게 다정한 12월의 이별을 마쳤다. 나는 동시에 이사를 준비했고, 웅이는 새 직장을 구했다. 인생에 타이머를 맞추어 놓은 듯이 새로운 일들이 딱딱 맞물려서 일어났다. 만약이라는 세계가 번쩍 번쩍 태어났다. 그 세계 중에 우리는 헤어짐을 결정했다.


웅이는 내가 언젠간 반드시 후회할거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그건 너무 뻔하고 당연한 일이다. 다정하고 넓은 품에 3년을 꽉 채워 기대어살았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코 그걸 찢어내고 또 앞으로 뚜벅뚜벅. 힘찬 가난의 세계를 살러 간다. 웅이가 건네어 준 용서와 이해와 사랑을 손에 쥐고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환기의 계절_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