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호옹이를 데리러 안성집으로. 4층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쓰레기를 다 버리고 오는 길에, 미뤄두었던 일을 마친 것이 기뻐 나도 모르게 콧노래에 몸을 찰랑거리면서 걷게 되었다. 웅이가 그 모습을 보곤 '아 두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어서 미치겠네'라고 했다. 나는 인생에 대해서 좆도 모르면서 '기쁜데도 슬픈거지. 사는게 다 그렇치 뭐'라고 했다.
슬픈 날은 슬픈 날대로, 기쁜 날은 기쁜 날대로 살았다. 이 말은 정혜윤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길어올린 말이다. 올해 세월호 8주기 추모행사의 네이밍으로 쓰기도 해서 오래 애정을 갖고 기억하게 될 문장이 될테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말과 단어에서 연결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이 책은 시내네 집 소파에서 처음 읽었다. 겨울이 가시지 않은 봄이었다. 조르바를 잃은 슬픔 안에서도 괜찮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걸 설명하는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던 때였다. 처음 겪는 상실을 살아내는 방법이 필요했던 때에 이 책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슬픈 세상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야기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처럼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 같은 단어 몇 개를 가슴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슴속에 머무는 비밀스러운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 단어들은 잊지 못할 이름일 수도 있고 사랑, 우정, 약속, 배신, 상실, 후회, 양심, 용기, 죄책감 같은 추상적인 단어일 수도 있고, 그리스 지중해, 라이카 카메라, 강아지, 태풍, 초등학교 1학년, 프레디 머큐리, wonderful to-night, 여름 호수, 바다, 보리밭, 피아노, 파란 양철 대문, 녹슨 자전거, 벚꽃, 노란 리본, 별이 빛나는 사막처럼 구체적인 단어일 수도 있다. 그 단어가 얼마나 다양할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여기 적은 단어들은 그냥 손가락이 가는 대로 쓴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의 신비로운 무의식이 이 단어들을 쓰고 싶어 한 것은 아닐가? 지금 이렇게 단어들을 써보는 것만으로도 몇몇 단어들이 몹시 그리워졌다면, 그것은 왜 그럴까? 그것에 대해서 나는 결국 알게 될 것인가? 일단은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프롤로그 중>
올 해의 흔적같은 단어들을 살핀다.
조르바, 겨울 창문, 생크림 케이크, 봄바람, 버려진 추모공간, 여름산책, 고독한 노젓기, 아끼는 마음, 끝없는 지평선, 그리울 풍경, 몽골, 더 사랑하기, 에에올, 돌과 달, 너와집, 화엄사, 사라짐과 불안, 고요한 빛, 축복의 빛, 기도하는 마음, 북과 종, 해뜨는 보리암. 일하는 마음, 진심을 다하기, 잘하고싶은 욕심,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 책임과 무게.
이별과 이사. 그리고 다정과 일기쓰기.
단어를 찬찬히 읊어내는 동안에도 그리워지는 풍경들. 슬픔 속에 주렁주렁 걸린 기쁨의 단어들. 사실은 더 기쁜 날들이 많았다. 미안해 조르바. 너를 잃고도 좋은 날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어. 마냥 슬프지 않았어.
우리는 우울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백 퍼센트 우울만도 슬픔만도 아닌 순간을 살 수 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예 하나도 없다는 것은 과장이다. 우리가 느낄 수만 있다면. 왜냐하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은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들 속에서 따스해진다는 일 아닌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 가슴에 살아남아 있는 따스한 무언가는 각자의 가슴속 빛의 영역에 속한다. 삶이란 힘든 것이고 우리를 둘러싼 조건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둠은 쉽게 물러나는 법이 없고 매번 다시 찾아오고 우리는 자주 지치고 힘을 잃고 우울하다. 그러나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 가끔은 기쁘고 질서가 잡혀 있다고 느낄 때도 있다. (...) 삶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지켰다. 우리도 그녀처럼 가볼 수밖에 없다. 우울과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면서, 먼 빛이든 가까운 빛이든 희미한 빛이든 내면의 빛이든 한 발 한 발 따라가면서.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일기, 동화책, 컵 중>
각오했던 한 해가 끝나서, 후련하다. 후련이란 말은 슬픔을 몸에 통과시켜 후련하게 뱉어낸 소리같다. 후~~련! 올해는 슬픔 안에서도 가슴 속의 숨을 찾아낼 수 있는 연습을 한 것만 같다. 함께 울어준 친구들과 함께, 찰랑거리는 작은 기쁨을 함께 발견해준 친구들과 함께.
그러니, 2023년에도 부디 슬픔 속에서도 기쁘길. 기쁜 날들 안에서도 슬픔을 미루어두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