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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Jan 18. 2023

자신의 힘으로 떠나온, 이민주

공주사는 청양청년 이민주

인터뷰를 위해 공주행 버스에 오르며 ‘간 김에 자고 올까?’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지만, 몸도 늘어지고 머리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장소에서 일하면 무언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인터뷰가 끝나고 숙소를 찾았다. 숙박시설은 많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는데 오늘 인터뷰를 한 민주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슬 님~ 괜찮으면 저희 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가셔도 돼요.”

인터뷰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방문한 그의 집은 독립을 꿈꾸는 이들이 로망으로 삼을 만한 공간이었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는 예쁜 찻잔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 테라스와 마당이 있었다. 자신의 공간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생애 첫 자취, 생애 첫 전입신고… 태어나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이 바뀌었어요.”

오래 살아온 지역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잡는 과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익숙한 곳을 떠나는 용기와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생 익숙한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이민주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주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요즘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저의 공주 집이에요. 단독주택 1층에 마당이 딸린 집인데, 집이 정말 좋아요. 침실은 잠자는 곳이라 주로 거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마당 앞 테라스에는 캠핑의자를 갖다 뒀고, 큰 창이 있는 곳에는 검은 테이블에 찻잔 두 개가 있어요. 혼자 사니까 적적해서 텔레비전을 살까 하다가 라디오를 샀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무조건 그것부터 틀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대가족이 살아서 집이 조용할 때가 없었어요. 삼남매였고, 동네도 조용하지 않았죠. 그러다 처음으로 적막한 공간에 살게 된 거예요. 한 달 동안은 너무 무서워서 불까지 켜고 잤어요. 지금도 거실에는 간접 조명을 켜두는데, 한 달 정도 지나 편하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때부터 잠이 잘 오더라고요.



민주 씨는 공주에 오기 전까지 청양에서 평생을 살았다. 마을에서 유명한 청년 활동가로, 많은 주민에게 지지받으며 5년 동안 일했기에 그가 떠날 땐 떠들썩한 송별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가 익숙한 일상을 떠나온 과정이 궁금했다.



올해 7월에 청양에서 공주로 이사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 공주로 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청양에서 태어났고 학교도 직장생활도 다 청양에서 했어요. 거의 30년을 주민등록지를 바꾸지 않고 계속 청양에서만 살았어요. 저에게는 청양이 너무 편한 공간이에요. 친구들도 다 거기에 있고, 부모님도 계시고…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데 청양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일과 삶이 분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활인데 일 같기도 하고, 활동 같기도 하고…. 그리고 한 지역에 계속 살다 보니까, 나는 예전과 달라졌는데 자꾸 과거의 나와 비교를 하게 되는 거예요. 만나는 사람들이 다 저의 과거를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지역을 옮겨보자고 결심했어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왜 공주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지역을 옮기면 어떨까 생각을 하다가, 입 밖으로 퇴사 이야기를 꺼내니까 정말 퇴사하게 되더라고요. 5월에 사직서를 내고 6월에 그만두기로 했는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까 조금 무서워졌어요. 다달이 내야 할 돈도 있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퇴사하기까지 시간이 두 달 정도 있었어요. 그 안에 어느 지역으로 갈지 정해보기로 했지요. 그때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 두 가지였어요. 첫째, 청양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하자. 둘째, 그래도 충청도는 벗어나지 말자. 한 번도 다른 지역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너무 멀리 가면 문화권이 달라져서 힘들 것 같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예전에 같이 일하던 팀장님이 연락을 해서, 일자리가 나왔는데 도전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팀장님이 이사하게 되면서 본인 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요. 공주는 제가 정한 두 가지 기준에 맞는 곳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집과 직장을 한꺼번에 구하게 된 셈이에요.


조금 전에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힘들었다’라고 할 때 의외였어요. 민주 씨를 아는 사람들은 민주 씨가 일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그래서 일과 삶의 분리가 문제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보면, 분명 일과 일상 중 일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동기를 얻는 사람인 건 맞는데요. 지역이 좁다 보니, 일이 끝나고 저녁이나 주말에 만나는 사람이 일과 관련되거나 겹치니까 뭐든 조심하게 되고, 부탁받을 때 거절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잘 끊어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한번은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내가 편했던 것을 모두 버려야 하잖아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바로 달려가야 할 텐데, 너무 멀어지면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럼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 좀 달라졌나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죠. 청양에 있을 때는 지역활성화재단의 마을만들기팀에 있었어요. 일하는 방식이 행정과 굉장히 비슷한 측면이 있죠. 그래서 다른 방식의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지금 일하는 곳은 주식회사예요. 민간영역으로 온 거죠. 처음에는 재밌었어요. 5년 동안 답답하다고 느꼈던 게 해소가 되더라고요. 의사결정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고 행정에 보고하는 절차가 없으니까, ‘세상에 이런 조직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3개월 차가 되니까 결국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더라고요. 일의 방식과 공간은 달라졌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달라지지 않은 거지요. 결국에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고민하게 됐어요. 


무척 공감되네요. 일에 관해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지금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분과 중간지원조직 퇴사자 모임을 연 적이 있어요. 게스트하우스 독채를 빌려서 ‘2020년 이후 중간지원조직을 퇴사한 만 39세 이하 청년’을 모았는데, 8명 정도 왔거든요. 너무 재밌었어요.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겠는 거예요. 중간지원조직에서 5년 이상 경력을 쌓으면 계속 그곳에 있을지, 민간으로 나올지 고민을 하게 되는데, 어떤 분야로 갈지 경력이나 전공이 애매한 거죠. 그렇다고 행정 쪽으로 가자니 중간지원조직도 안 맞았는데 행정도 그것과 비슷할 것 같고. 그래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다 비슷한 고민을 했더라고요. 저는 일단 민간에서 일의 방식을 다르게 생각해보자는 거였는데, 아직 (일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3개월밖에 안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 하는 일도 열심히 하고 계신 것으로 보여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 일하는 곳은 ‘퍼즐랩’이라는 회사예요. ‘마을스테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공주 원도심을 중심으로 숙박, 식사, 카페, 갤러리 등 각각 분리된 공간을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구성해서 고객에게 통합적인 체류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에요. 직접 ‘봉황재’라는 한옥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현재 신규 숙소도 준비 중이에요. 공주가 예전에 교육도시로 유명해서 충남의 다른 지역 중·고등학생들도 유학 와 하숙하며 지내고 했거든요. 그래서 유휴공간이 많은데, 그런 공간을 재생해서 숙소나 공유 오피스, 와인숍 등을 만들어요. ‘크림’이라는 와인숍도 그렇게 만들어서 회사에서 직접 운영 중이에요. 저는 주로 파트너사와 사업 내용을 조율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업 특성상 현장 업무도 겸하고 있고요. 마을투어를 하거나 손님맞이를 하는 등이요. 이런 점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요.


다양한 사업과 업무를 하고 있는데, 민주 씨에게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청년들이 5박 6일 동안 공주에 살아보는 과정을 10주에 걸쳐 진행하고 있어요. 매주 10명씩 새 팀이 들어오고, 10월에는 한달살이도 진행해요. 공주가 처음인 분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지역에 굉장히 관심이 많더라고요. 대학생. 워케이션을 하는 직장인, 퇴사자분들도 있지만, 지역에서 가능성을 찾는 분들이 더 많아요. 다른 지역이랑 프로그램이 똑같아도 그 안의 네트워킹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거든요. 그런데 제 장점이 사람들을 잘 챙기는 거예요. 그래서 참여한 사람들이 좋은 후기를 남기거나, 다음에 공주에 올 때 연락을 준다거나 할 때 보람을 느껴요. ‘내가 그래도 지역에서 한 사람의 인생에 일주일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돕는 역할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지역이나 세상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사실 저희 부모님은 농사만 지으셨기 때문에 어릴 적에는 세상에 관심을 가질 계기가 별로 없었어요. 청양 자체가 워낙 작고, 학교도 작은 곳을 다니다 보니 주변의 자극이랄 게 없었지요. 제가 사회문제를 인식한 건, 초등학생 때 북한이 서해로 침입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였어요. 두려운 마음으로 하교하고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고, 그래서 저는 어린 마음에 ‘나 빼고 다 피난 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다 밭일하러 간 거였지만…. 그리고 초등학교 때 작은 학교를 폐교한다고 해서 전교생과 학부모들이 서울로 시위하러 갔던 것도 영향을 주었어요. 제가 사회에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 느낀 건 고등학생 때부터인 듯해요. 근현대사를 좋아했고, 대학교 때는 친구들과 영화 <26년> 시사회를 보러 가기도 했어요. 뭔가 DNA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청년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더 관심이 커졌고요.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민주 씨를 혁신가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잖아요. 인터뷰도 그렇게 소개받아서 하게 됐고요. 혁신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인터뷰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 ‘보통의 혁신가’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저는 ‘보통’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좋았어요. 그렇다면 저도 혁신가라고 생각해요. 혁신가라고 하면 예전에는 정치인이 먼저 떠올랐어요. 저도 정치에 관심이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 저에게 집을 빌려준 집주인이자 전 동료가 해준 말이 생각을 좀 바꿔준 계기가 되었어요. 예전에는 ‘나와 내 지인, 가족을 먼저 챙겨야,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나?’라는 얘기가 들리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마음에 들리기 시작하더니 올해 서른 살이 되면서 그 말이 되게 와 닿았어요. 그래서 저도 내 공간을 살피기도 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취향을 찾아보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어떤 사람이랑 일할 때 편한지, 어떤 방식이 좋은지를 좀 찾아가는 중이에요. 제가 지금 생각하는 혁신가는 ‘자발성’을 가지고 자기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에요. 



민주 씨는 10년 가까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청양과 공주의 식당, 카페 그리고 지역행사를 소개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역의 정보를 공유한다. 지역의 정보가 개인의 관계를 넘어 다양한 사람에게 전달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스스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찾고, 개인의 성장과 지역의 상생을 연결지어 고민하는 모습에서 혁신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 씨는 ‘일과 삶의 균형’,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고민 앞에서 고개 돌리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민간과 행정의 경계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면서도, 이것이 진정 나의 일상을 바꿀 수 있을지 고심하는 그 앞에서, 30대에 접어든 지역활동가 보편의 고민이 비쳤다. 하지만 자기 공간의 문을 열어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상대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그가 말한 것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일이지 않을까?

늦은 시간, 민주 씨의 집에 들어서자 그가 차 한 잔을 내주었다. 우리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인터뷰에서 미처 못 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일과 삶 그리고 사회와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공감대가 싹텄다. 인터뷰어에게는 매우 특별한, 그리고 민주 씨에게는 보통의 하루가 저물었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안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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