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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Jan 18. 2023

민주주의는 회의에서부터

NGF연구소 박현미

박현미 씨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요즘은 그런 일을 모더레이터 혹은 퍼실리테이터라고 부른다. 마을만들기, 주민자치, 워크숍, 원탁회의 등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회의를 기획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현미 씨가 좋은 회의를 만들기 위해 제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회의를 하는 동안은 서로 동등하게 발언하고, 참여자들의 권한과 역할에 대해 함께 합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의’란 모여서 의견을 나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당연하고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사실 이 기본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회의는 괴롭고 지루한 시간이기 쉽다.

기본을 지키는 현미 씨의 태도는 단호하다. 그이는 적당히 감추며 넘어가는 법이 없고, 그런 일이 생기면 꼭 문제제기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불편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는 핀란드의 무해한 캐릭터 무민과 아기자기한 문구들을 좋아하고, 자기 전에 꼭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을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면모를 가진 덕후이기도 하다. 한 해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일 년 동안 필요한 규모의 벌이를 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면 일을 멈추고 덕질의 세계로 깊게 빠져드는 사람이다.

천안 북면,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다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하나둘 하다 보니 어느새 결국 충남의 전역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는 사람. 단호하고 부드럽고 귀여운,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 오랫동안 궁금했던 그의 이야기를 마침내 듣게 되었다.


 


현미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곳, 쉬면서 충전하는 곳, 힘 있게 만들어주는 공간을 말해주세요.

주로 2층 서재에 있는 때가 많아요. 이제 나이가 드니까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것보다 내 공간에서 충분히 잠겨 있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대개 서재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 주변 어딘가에 앉아 있어요. 좌석 다섯 개 중 두 개는 우리 고양이들 차지. 나머지 의자에 앉아서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문구류와 책, 음악을 두었어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요. 음악을 들을 땐 오동나무 평상에 누워서 듣기도 하고요. 틈틈이 여기 쌓여있는 자료집들을 읽어요.

아, 저는 자료집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기관이나 단체에서 만든 행사 내용이 담긴 책자나 활동 보고서 같은 것들이요. 내용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읽다 보면 소중한 뭔가가 발견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충실하게 살았던 흔적 같은 것들….


자료집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데 사실 그걸 자세히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잖아요. 누군가 열심히 보는 걸 안다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자료집을 정말 열심히 봐요. 그때그때 바로 보지는 못하지만 오래 두고 찬찬히 보는 편이에요. 가끔 읽다가 감동이 들 땐 뜬금없이 담당자한테 연락을 해서 피드백을 할 때도 있어요. “방금 이걸 읽었는데 이 내용이 너무 궁금하고, 또 이건 너무 감동이었어요.” 하고요. 종종 1~2년 묵혔다 보기도 하고, 읽은 걸 몇 년 후에 또 읽기도 해요.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거든요.

주변의 많은 사업들이 이벤트처럼 단발로 진행되는 모습을 봐요. 저는 사계절이 있듯이, 사업도 적어도 네 번은 반복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는 동안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고, 또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자료집을 통해 뭔가의 흔적을 살피고, 제 나름의 가치판단도 해보고, 또 새로운 정보도 얻곤 해요. 자원을 채집한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동굴에서 탐험하는 기분으로 봐요. 저는 사회생활 측면에서 활발하거나 친구가 많지 않아요. 자료집을 보는 건 나만의 유희 같은 거예요.


그가 열심히 자료집을 챙겨보는 서재와 고양이 두마리



자료집 얘기를 들으니 생각났는데, 요즘 문을 닫는 기관들이 생기면서 그동안 모으고 공유해왔던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어떻게 사장시키지 않고 공공의 것으로 남길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정말 열심히 백업해두고 있어요. 특정 단체나 담당자가 비용과 공을 들여 만들기도 했지만 거기엔 공공의 자원이 투입되었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말과 활동이 내용으로 담겨 있잖아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가 저에겐 아주 중요해요. 우리 사회의 민주성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을 보면 정보 소통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방금 하신 이야기가 지금 현미 씨가 하고 있는 활동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전 그냥 북면에 사는 박현미예요. 마을에 살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자치, 마을만들기 같은 지역공동체 활동과 관련한 강사활동을 하는 정도…. 사실 마을일이라는 게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주민들이 만나서 뭔가를 결정하는 일이 대부분이거든요. 의견을 나누고 결정을 하는 과정, 그런 게 다 회의예요. 그 회의에서 의사소통과 결정이 민주적일 수 있도록, 권한과 정보가 민주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고요.



마을에서 살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는 말을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살고 있는 북면이 좀 독특한 마을이에요. 마을에 골프장이 건설된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투쟁해서 막아낸 경험이 있어요. 사실 막았다기보다는 그 기업이 먼저 망했지요. 주민들이 오래 버텼거든요. (웃음) 그 다음에는 세종고속도로 문제가 터졌어요. 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르고 지나간다기에 또 한 차례 떠들썩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쫙 갈라져버렸죠.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고, 고속도로 노선에 따라 각각 입장이 달라지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100~200명씩 모여 회의를 하는데 거의 전쟁이었어요. 마을의 젊은 사람들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데다 내 땅, 내 재산이 걸린 문제였으니까요. 이해관계가 다 다르니 대립이 엄청났죠. 합의했다고 생각한 내용이 번복되고, 유언비어가 떠돌고 그랬어요. 마을 대책위에서 그런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마을 소식지를 일주일에 세 번이나 냈던 적도 있어요. 


골프장에 이어서 고속도로까지… 산 넘어 산이었겠네요. 그래도 고속도로 문제는 골프장 반대운동의 경험이 있으니 처음과는 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제가 북면으로 이사 왔을 때가 골프장 반대운동이 3년 차에 접어들 때였어요. 거의 포기하는 분위기였어요. 저랑 남편은 자료 찾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한 3, 4년치 자료들을 모아서 분석했죠. 이미 끝난 환경영향평가 자료도 다시 살펴봤어요. 거기 답이 있더라고요. 그걸 끄집어내서 문제제기하고 다시 싸우기 시작했죠. 그때 느꼈던 게 있어요. 정말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가 하나도 공유되지 않는구나. 그래서 세종고속도로 이슈가 생겼을 때, 정보의 전달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관‧단체장이나 이장 같은, 요직을 맡은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마을주민들이 중심이 될 수 있게 해야겠다. 그래서 대책위를 꾸린 후에 마을마다 설명을 하러 다녔어요. 다들 정말 궁금해했어요. 하루에 전화도 수십 통이 왔었죠. 그때 북면의 마을이란 마을은 다 돌았던 것 같아요. 안 다녀본 마을이 없어요. 


고속도로 문제는 어떻게 됐나요? 아직도 진행중인가요?

주민들이 ‘큰’ 합의를 했어요. 지금도 정말 멋진 합의였다고 생각해요. 첫째 “우리는 노선을 결정하지 않는다.” 노선을 어떻게 긋고 보상을 얼마를 받는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도록요. 또 하나는 “우리는 미안해하면서 투쟁해야 한다.”라는 거였어요. 이 마을을 피해간다고 해도 결국에 고속도로는 만들어지잖아요. 사람을 위해 자연을 해쳐야 하는 거니까 미안한 거죠. 이렇게 합의는 했지만 세종고속도로가 완공될 때까지는 대책위를 유지하려고 해요. 합의가 됐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사 중에 발생하는 환경문제들을 지켜보려고 해요. 그래서 지금도 폐기물이나 흙이 들어오고 나가는 날이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어요. 아주 성공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끝까지 지켜보는 마을과 주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와, 멋있는데요. 이거야 말로 자료집을 만들 일인 것 같은데요.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그때는 늘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제가 지금 이렇게 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 집중하는 건 그 실패의 경험들 때문일 거예요. 그 후로 더 공부하고 강의 다니는 경험을 쌓으면서 제 나름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는 거죠.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요. 


이 인터뷰의 사업 이름이 ‘혁신살롱’이잖아요. 처음 섭외 연락을 받고 어떠셨나요? 본인이 혁신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그러니까요.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뭘 혁신했지?” 제가 주로 하는 회의법 교육이나, 퍼실리테이션 같은 것들을 사람들이 새롭다고 보는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말하고 다니는 내용은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회의할 때는 동등한 발언의 기회를 가져야 하고, 권한과 역할 그리고 결정 방식에 대해 다 같이 합의해야 한다, 뭐 그런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바빠서, 또는 누군가 더 많은 정보와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최면을 걸고 사는 거고…. 저는 단지 그 기본적인 일들을 굳이 고집을 피워서 할 뿐인 거죠. 누군가가 발언과 결정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소수만 공유하고 있는 정보가 있다면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알 수 있도록 하고. 


그러다 보면 고독하거나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힘들지 않으세요?

가끔 외로울 때가 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요? 호불호가 있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욕도 먹어야지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재미있나요?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올해는 홍동마을 분들과 만나며 일하고 있는데 정말 즐거워요. 가끔 강의를 나가다 보면 현타가 오는 순간들이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의뢰한 내용으로, 적당히 시간을 때워주길 바란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런 현타가 오죠. 요즘도 종종 그럴 때가 있어요. 아마 올해 홍동마을을 만나지 않았다면 좀 힘들게 지냈을 것 같아요. 그분들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문제제기도 엄청나게 하거든요. 저도 더 신나서 준비하게 돼요.

이건 최근 일인데요, 제가 2018년도에 논산에 마을회의법 교육을 다녔어요. 얼마 전에 다른 기회로 논산의 한 마을에 갔었는데, 글쎄 이장님이 그때 제가 교육했던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으신 거예요. 너무 감동이었죠. 이렇게 회의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얻어요. 


사실 적당히 시간 때우고 오는 교육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는데, 애정과 열정이 엄청난 것 같아요. 이렇게 세상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고등학교 때 학급회의 대신 ‘우리만의 회의’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학생주임한테 복도에서부터 옥상에 올라가는 내내 따귀를 맞았어요. 결국 모임은 깨지고 말았고요. 고등학교가 철학 시범학교여서 철학을 배웠던 기억도 있고, 전교조 선생님도 계셨고요. 대학 때는 학생회 활동을 했었어요. 그냥 그런 몇몇 기억들이 남아 있네요.

이건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부평에 살았거든요. 거긴 노동운동이 엄청났어요. 대자보가 집 가는 내내 쫙 붙어 있었고… 그러니까 길을 가다가 자연스레 그런 내용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죠. 그땐 그냥 그런 시절이었어요. 저는 우리 세대가 스스로를 잘못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를 되게 정의롭게 보는데, 실은 당시 분위기가 그랬던 거거든요. 운동하고 저항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정의롭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런 착각이 지금의 꼰대문화를 만든 건 아닐까? 저도 그 착각을 벗어던지는 게 힘들었어요. 모두들 빨리 벗어던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신이 세상에 단 한 가지의 문제만 해결해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것을 말하고 싶은가요?

음… 그건 정말 고민되네요.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됐어요? 이건 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해결해달라고 해봤자 어차피 인류가 또 다 망쳐놓을 것 같고….

사람들에게 꼬리를 달리게 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에게 꼬리를 달아서 감정을 드러나게 하는 거지… 그러면 이제 말로 사기를 못 칠 거잖아요. 꼬리로 다 표현될 테니까. 앞에서 친한 척 하지만 경계하는 꼬리, 거짓말 하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게 다 드러나는 꼬리… 아 정말 완벽한 마무리 같아요.  



공식적인 인터뷰가 마무리 된 후에도 우리는 한참을 꼬리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꼬리를 컨트롤하는 기술을 배우는 학원을 다닐 거라는 둥, 꼬리가리개를 차고 다닐 거라는 둥, 잘 배우고 잘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꼬리 격차가 생길 거라는 둥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며 웃었다. 사람에게 꼬리라니….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마을, 감추거나 독점하지 않고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흐르는 사회를 꿈꾸는, 정말 앞뒤 없이 솔직한 현미 씨다운 소원이다.

얼마 전 참여한 컨퍼런스 행사에서 마음에 박힌 이야기가 있었다.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들 중 그만둬야 할 것들을 그만두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는 용기라고. 현미 씨는 인터뷰 중에 ‘민주주의’, ‘다들 아는 이야기’, ‘약속’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현실과 편의라는 핑계는 관성으로 굳어지기 쉽다. 동그란 웃음 너머로 현미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우리 그 익숙함에 지지 말자고, 모두 다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약속을 지키자고.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임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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