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적정기술공유센터> 센터장 이승석
잘 모르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가령 ‘적정기술’ 같은 말. 검색해보면 적정기술은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누구나 이용 가능한, 지역의 자원을 이용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보기 좋고 의미도 깊을 것 같은 단어들로 설명되어 있다. 함께 검색된 이미지들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도구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적정기술을 적용해 만든 도구들이라고 한다. 검색으로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적정기술은 도대체 뭘까, 한국에도 그런 걸 다루는 사람이 있는 걸까.
있다! 예산에서 농기구를 만드는 이승석 씨는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개발하는 사람이다.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그래도 이승석 씨와 나눈 대화에서 적정기술이 구현되는 장면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밭을 갈아엎는 농기구도 되었다가, 손에 겨우 잡히는 칩과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첨단 기술도 되었다가, 적정기술의 변신과 포용성이 대단했다. 그중에서도 이승석 씨가 더 골몰하는 분야는 농부와 자연 모두를 위한 농기구! 농업의 새로운 변화까지를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어디인가요?
적정기술공유센터 뒤쪽에 있는 작업 공간이에요. 센터 앞에 설치되어 있던 나무 데크를 이용해서 만든 작업용 테이블인데 이걸 좋아해요. 튼튼하고, 제 손때가 묻어 있고, 세월도 담겨 있어서요. 주로 여기서 제품 도면을 그리거나 시제품을 만들어요. 대외적으로도 활동을 많이 하지만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밖에 있을 땐 주로 이 테이블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해요.
그 테이블에서 적정기술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시는 거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적정기술이 무엇인지 아직 감이 안 와요.
적정기술은 경제적 이윤을 벗어나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술이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요. 적정기술이라는 명칭은 이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을 부르기도 하고 또 기술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해요.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산업자본에 거의 종속되어 있어요. 편리와 이윤을 우선하다 보니 세상에 이익이 될 때도 있지만 해가 될 때도 많아요. 또 특허권을 설정해서 아무나 못 쓰게 하죠. 돈이 우선이니까요. 적정기술은 그 반대라고 보시면 돼요. 기술의 혜택을 최대한 공유하기 위해 기꺼이 기술을 공개하죠. 기본적으로 사람과 자연 모두를 포함해 사회에 더 이득이 되는 방향을 추구해요.
사례를 찾아보니 전기 없이 사용 가능한 빨대형 정수기나 식수 이동을 편하게 해주는 바퀴 형태의 드럼통 같은 게 있던데, 주로 아프리카 등지에서 사용되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적정기술이 20년 넘게 해외원조용 기술로 연구됐기 때문이에요. OECD 가입 기준에 해외 원조 실적 같은 게 있어서, 우리나라는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적정기술이 시작됐어요. 그래서 적정기술 자체가 해외원조용 기술이라고 아직 많이들 오해를 하죠.
그러다 적정기술이 해외용으로만 개발되는 것에 대해 반성하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지구의 생태위기를 가져온 것은 화석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고 온실가스도 가장 많이 배출하는 OECD 국가들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적정기술로 풀어보자는 국내형 적정기술 운동을 시작했지요. 전국에 15개 단체가 생겼는데 그중 10개가 충남에 있어요. 그 단체들이 모여 2012년도에 충청남도 적정기술 협동조합연합회를 만들었고, 이후에 충청남도에서 이 센터를 세웠죠.
그런데 이승석 님은 어쩌다 적정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서울에서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허리 디스크와 녹내장 말기 진단을 받았어요. 세상에 무해하면서 만족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농부의 삶을 선택했고, 좋은 먹거리 만들자고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몇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스트레칭 비슷한 몸살림 운동이란 걸 하고선 병을 고쳤어요. 이건 더 알아야겠다 싶어서 공부를 하고, 동네부터 다른 지역에까지 몸살림 운동을 전파하러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농부들이 아픈 현실을 보고 농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어요.
농부들의 몸이 많이 망가져 있더라고요. 조사해보니 10년 이상 전업으로 농사를 지은 사람들의 83%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 수치가 다른 나라의 평균에 비해 3.5배 이상이라는 거예요. 이상하잖아요. 농사일이 원래 힘든 일이라서 당연히 아파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건데 농업이나 농사는 별로 중요하다가 여기지 않으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거죠.
그때 느꼈던 문제의식이 농기구로 이어진 거군요.
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몸살림 운동을 전파할 순 없으니까, 그렇다면 몸이 망가지는 원인을 고치면 어떨까 싶었어요. 따로 연구된 게 없어서 제가 나름대로 고민을 하다가 농기구가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소농용 농기구로 나온 것들은 다 몸을 굽혀서 써야 하거든요. 관절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농법과 기구들이 그냥 계속 유지되어 온 거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도 농부니까 이 상황을 개선할 농기구를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네요. 농사일은 쭈그린 채 작은 도구를 쓰거나 트랙터 같은 기계를 쓰거나…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네요.
1960년대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화에 나서고, 거기 필요한 많은 노동자를 농촌에서 공급했어요. 그렇게 농촌이 비게 되면서 경운기가 급속도로 보급됐고요. 그런데 호미와 경운기 사이에 단계적으로 있어야 할 농기구들은 누구도 관심을 안 가졌어요. 그래서 아직도 작은 규모의 농사에는 호미 수준의 도구를 쓰는데, 우리나라에 소농으로 분류되는 사람이 아직도 300만 명에 달해요. 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쓸 농기구가 없다는 게 문제인 거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니만큼 참고할 만한 게 없었을 것 같은데요.
기계는 잘 몰랐지만 농민들은 땅과 농사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시간이 걸려도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자고, 지속가능하고 현실성 있게 가자고 목표를 정했어요. 초기 3년 동안 전 세계의 농기구를 연구해서 그중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한 농기구 30개를 뽑았고, 그 농기구들을 개발해서 현재 11개의 제품이 나왔어요.
"농사일이 원래 힘든 일이라서 당연히 아파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건데 농업이나 농사는 별로 중요하다가 여기지 않으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이제 10년째인데, 그동안 공장을 차리거나 영리사업으로 진행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각자 삶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도록 운영하는 걸 우선으로 해요. 그래서 농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 체제로 가는 거고요. 공장을 차려 사업으로 진행하면 농사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으면 자본을 유지하거나 불리기 위해서 무리를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우선은 소량 제작 체제로 가면서 기구를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중이에요. 제품 완성도가 높아지면 대량 생산을 고려하겠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라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적정기술에 대한 이승석 님만의 기준이나 정의가 있을 것 같아요.
적정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저만의 기준은 있어요. 누구나 쉽게 접근해야 한다,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처럼, 학자들이 만든 적정기술의 7원칙이나 9원칙 같은 게 있지만 그 원칙들을 전부 충족시키는 건 어려워요. 그래서 그 원칙을 지켰는지 혹은 특정 제품이 적정기술인가를 따지는 것보다도, 기술을 바라보는 태도 즉 ‘기술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가’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면 이해가 잘 될 것 같아요.
가령 첨단기술은 그 특징이나 모습 때문에 적정기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비닐하우스 스마트 장비로 설명해볼게요. 겨울에 하우스에서 수막으로 보온을 하며 재배할 때, 스마트 기기의 24시간 원격 관리 기능을 통하면 수도관 동파로 채소가 어는 사고를 막을 수 있어요. 이런 기술이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으로 1억 가까이 팔리고 있는 게 현실이죠. 만약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들이 스마트팜 비슷한 기계를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을 공개해요. 그러면 1억원짜리를 200만원에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기술의 경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적정기술의 원칙 중 ‘누구나 쉽게 접근해야 한다’에는 위배돼요. 내 생각에는 이런 첨단기술이어도, 이윤에 종속되지 않고 삶과 환경을 더 낫게 만들게 설계되었다면 적정기술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거죠.
흥미로운 주제네요. 적정기술의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적정기술로는 불릴 수 없는…. 좀 다른 얘기로 이승석 님이 만든 것 중 세상에 꼭 선보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제품도 있나요?
상용화시키기 어려워서 못 나온 제품이 있어요. 페이퍼 포트라는 건데요. 원래는 플라스틱 그릇에 모종을 하는데, 그 그릇을 종이로 만드는 거예요. 자연 생분해되는 포트라 포트째로 땅속에 심을 수 있어서 작물의 입장에선 뿌리 손상이 적어 좋아요. 육묘기간도 절반으로 줄고, 연료를 쓰지 않는 전용 이식기를 사용하면 기존보다 최대 10배 빠르게 심을 수 있으니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개발과 생산은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이게 기존에 없던 원지를 개발해서 만든 건데, 모종 포트를 만들려면 제지공장의 전 라인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원료를 넣어 일정한 양을 만들어야 해요. 거기에 드는 비용이 최소 5억이에요. 아무리 사회적으로 필요한 제품이라 해도, 그걸 사업적으로 성공시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어요.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그 이상의 이익을 얻어야 될 테니, 지금 상황에선 당장 상용화하기 어려운 거죠.
"기술을 바라보는 태도 즉 ‘기술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가’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냥 좋아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어렵지 않나요? 세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일에 끌려갈 것 같은데요.
어릴 때 다니던 공장에서 친한 동생이 근무 중에 잠깐 졸았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있는데 공장 관리자가 오더니, 다친 사람을 질책하고 산재처리도 안 해준다는 거예요. 14시간씩 맞교대를 하는 시스템,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기계… 그런 게 사고의 원인이었는데 말이에요. 정말 화가 나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조합을 만들었어요.
전 모든 인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 인(人)자는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하잖아요. 실제로도 그래요. 내 주변이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행복할 수 있나요?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나 홀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요. 그래서 언제나 주변과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어요.
그 사건이 이 모든 활동의 계기가 된 거군요.
그렇게 시작한 거라 그런지, 적정기술도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풀고 있어요. 단순히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시작한 거니까요. 그러다보니 이 활동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제로 연결이 되고, 지금은 충남사회경제연대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대표도 맡고 있어요.
여러 단체의 대표 자리를 맡고 있는데, 그 자리에 있어서 감당하기 힘든 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의도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계획대로 안 될 때 힘든 건 있죠. 그래도 감당은 가능해요.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없고요. 저는 어떤 일이 의도대로 돼도 좋아하고 안 돼도 좋아해요. 의미와 가치를 위해 이 일들을 하는 거라, 무보수이고 힘들더라도 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일이 잘 안 되면 덕분에 시간도 생기고 덜 고생하게 되니까, ‘왜 뜻대로 안 될까’ 하면서 스스로 고통스러워 하지 않아요. 아직은 때가 아니다 생각할 뿐이죠.
본받고 싶은 태도네요. 그런데 지금 맡은 직책들이 전부 무보수라는 이야기인가요?
하는 일의 1/5 정도는 농사짓고 강의하는 경제 활동에 쓰고 있고, 그 외 공적으로 나서는 일들은 다 무보수예요.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재밌으니까, 의미 있으니까 하고 있어요. 아마 보수를 받았다면 안 했을 거예요. 일이나 자리에 메일 것 같아서요. 언젠가는 맡은 직책들을 내려놔야 할 때가 올 거니까, 그 이후엔 집에 있는 대장간에서 이 일에 더 집중하며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의미를 추구하며 이 일을 해왔다 하셨는데, 가장 보람찬 순간이 언제였나요?
우리가 개발한 농기구로 농업이 유지된 현장을 봤을 때가 생각나요. 겨울에 하우스에서 냉이를 재배하는 마을이었는데, 땅이 얼어 호미가 안 들어서 농사를 포기하셨대요. 저희가 현장을 방문해서 필요한 농기구를 개발하고 보급을 했죠. 그랬더니 다시 냉이 재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큰 보람이었어요.
"혁신은 ‘나와 내 주변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혁신의 과제가 주어져요.
개인의 삶부터 커다란 공동체까지, 어디든지 개선이 필요한 일은 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달려온 시점에서, 이런 건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개인적인 소원이 있나요?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 가끔은 제 일들이 경제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싶지만, 엄청나게 바라는 건 아니고요.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는데, 돈도 주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웃음)
하하, 저도요! 그러면 실현 가능성을 떠나, 소원 하나를 이룰 수 있다면 무엇을 바라시겠어요?
저는 소풍 가듯이 잘 놀다 가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하는 일들도 저만의 노는 방식이고요. 그래서 아직까진 후회가 없어요. 고생을 했어도 다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살다가, 마지막에 눈을 감을 때 “이 세상에서 내 방식대로 후회 없이 잘 놀다 간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제 마음에 들게, 그렇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하고 싶어요.
오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승석 님이 그 누구보다 혁신가처럼 느껴져요. 이승석 님은 혁신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혁신은 ‘나와 내 주변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혁신의 과제가 주어져요. 개인의 삶부터 커다란 공동체까지, 어디든지 개선이 필요한 일은 늘 있으니까요. 각자 관점에 따라 개선점이 적게 보이냐 많이 보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제가 아프지 않았을 때 시골 분들이 보행차 끌고 다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처럼요. 주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혁신을 할 수 없다고 봐요.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혁신가라 생각하시나요?
흠, 혁신가라는 타이틀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굳이 하자면 안 어울리진 않을 것 같은데요? 누가 붙여준다면 거부할 이유도 없죠. 사실 붙이든지 말든지 상관없긴 하지만요!
적정기술이란 명칭에서 적정이란 단어가 어색해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했다. 보통 적정이란 단어보다 적절이나 적당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지 않나. 대화를 하다 이승석 씨에게 적정기술은 영단어를 직역한 것이고, 적정기술에 대한 오해 때문에 대신 생활기술, 사회기술, 전환기술이란 이름을 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승석 씨는 내일 당장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몫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적정기술의 ‘적정’이란 표현이 기술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몸담는 사람들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 적절, 적정. 세 단어 전부 ‘알맞음’이라는 뜻이 있지만, 적당에는 ‘대충’이란 의미가 더해져 쓰일 때가 많고, 적절은 그때그때 관계나 상황 속에서 맞춰간다는 느낌이, 그에 비해 적정에는 ‘옳다’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승석 씨 같은 태도로 주변을 눈에 담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은, 적당이란 말에도 적절이란 단어에도 없는, ‘적정’만이 가진 무엇으로만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상황에 꼭 알맞으면서도 이치에 옳다는 뜻을 가진 ‘적정’이라는 단어만으로 말이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성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