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크리에이터 이미나
가끔, 한없이 넓고 다정한 마음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에게 품었던, 어쩌면 조금은 날이 섰을지도 모르는 소심한 의문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랑을 선뜻 내줄 수 있는 걸까?’ 어떤 때는 다정도 일종의 재능 같았으니까, 의도적으로 답이 궁금했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그 답을 미나 씨와의 인터뷰에서 얻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훈련하면 된다는 것. 아, 마음도 키울 수 있는 거구나. 재능이 아니라니 뭔가 안심이다.
사실은 나도 불친절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줄 수 있다면 늘 먼저 건네주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아주 작은 틈만 보여도 혐오와 불친절이 파고드는 세상이라고, 그렇기에 더 빳빳하게 살아가려던 내게 요가 강사이자 웰니스 크리에이터인 미나 씨는 ‘틈’의 가치와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요가를 통해 아팠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낯선 타인, 어느새 지구까지 돌보고 있는 미나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요가매트를 그리셨어요. 지금까지 인터뷰 중에 가장 작은 공간이네요.
매일 같은 걸 반복하는 장소가 딱 이 요가 매트 위더라고요.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데 거실 일부를 저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매트는 접지 않고 늘 깔려 있어요. 지금 이곳에 산 지 2년째인데 그동안 한 번도 안 접어본 것 같아요. 닦을 때 빼고는…?!
매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일상에 틈을 내주는 시간이에요. 가령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한편으론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에너지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루의 에너지 총량이 10이라면 저는 일이 5, 그리고 나머지인데 그 나머지의 시간을 유연하게, 유동적으로 쓰는 편이에요. 자유롭게 흘러가듯이 ‘어, 이 시간에는 이걸 해볼까, 아, 이번엔 저걸 해볼까’ 이런 식으로요. 저는 완전 ‘P’ 성향이어서 고정된 루틴을 지키려다가 그러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요가는 제가 일상에 ‘틈’을 낼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틈’이 미나 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요가하기 이전에 정말 많이 그랬던 것 같은데, 대부분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학생 때 뭘 결정할 때도 그렇고, 심지어 취업이나 진로를 정할 때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시선으로, 그들의 말을 채집해서 ‘나’를 만들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가 매트 위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내 시선과 마음이 뭔지 관찰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수련이 딱 끝나고 나면 조금은 명료해지는 거예요. ‘나’에 대해서요. 지금은 이게 제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기술처럼 느껴져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마치 꼭 완료해야 되는 도전 과제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로는 요가라는 게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인 것 같아요.
물론 운동인 측면이 있죠. 사람들이 그걸로 이로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좋은 방향이에요. 하지만 좀더 나아가서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욱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 어깨가 지금 이렇구나…’ ‘내 어깨의 움직임이 이랬구나…’ 내 몸의 상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을 해보면 단순히 당장의 요가 수련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앉아 있는 이 자세부터 바꾸는 일로 연결이 되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매트 바깥의 삶까지 연결이 되어야 비로소 요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매트 바깥의 삶까지 연결이 되어야 비로소 요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미나 씨는 하루에 수업을 많이 진행하는 날도 있잖아요. 그렇게 수업을 해도 또 혼자 요가하는 시간을 또 보내기도 하나요?
수업과 수련은 완전히 달라요. 수업은 다른 사람이 호흡을 하게 도와주고 안내해주는 거지, 내 숨을 쉬는 건 아니니까요. 내 호흡의 패턴과 내 숨의 길이… 그런 건 수련 때 가능한 거죠.
요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조금 웃기지만, 맨홀에 빠진 적이 있어요. (웃음) 정말 아파서 도수치료를 1년 정도 받았는데, 이게 치료받고 며칠만 괜찮더라고요. 그 며칠이 지나면 다시 아파지고, 또 병원 가면 괜찮아지고…. 내 몸을 남의 손에 맡겨서 하루하루 나의 ‘아프지 않음’을 연명해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걸 제대로 고치지 않고 이렇게 지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는 게, 몸이 아프니까 불편한 마음이 자꾸 삐져나오는 거예요.
예전에 요가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럼 요가를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했죠. 처음엔 역시 아프기만 해서 선생님이 해주시는 좋은 말씀들도 들리지 않았는데 조금씩 몸이 유연해지면서 어느 순간 다른 말들이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마음에 받아들일 만한 유연함이 생긴 거죠. 당시에 매트에서 ‘나를 계속 들여다보고 관찰하라’는 말을 계속 들었는데 어느 순간에 그 말이 저를 울게 하고 있더라고요.
뭔가 각성이 일어난 거군요. 그런데 요가를 하는 것과 강사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일 텐데, 일로 선택한 계기는 뭐였나요?
그때까지도 요가 강사가 될 마음은 없었는데 그냥 그런 과정이 계속 연결됐달까요, 제가 열심히 수련을 하니까 당시 원장님이 ‘자격증 따보지 않을래?’라고 물어봐주셨어요. 확신이 없는 한편으로 동시에 ‘사실 나는 하고 싶기도 해’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원래 뮤지컬을 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의 반대에 포기했고요…. 나중에 그 선택을 후회했는데 그때 당시의 마음이 떠올랐던 거 같아요. ‘그래,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하지 말자. 해보고 결정하자!' 한 거죠. 이번에도 부모님이 요가 강사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해주지 않아서, 몰래 한 학기 휴학까지 하고…. (웃음)
이야기가 뭔가 흥미진진해지는데요.
그때 그렇게 결심할 수 있는 선명한 힘이 저한테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강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자격증도 그냥 호기심 정도였고요. 자격증 과정을 마무리할 때 즈음에 함께 요가원에 근무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또 혼란스러워졌죠. 그때 대학교 1학년 마치고 태국 치앙마이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공원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빌린 돗자리를 깔고 요가를 하는 광경을 스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나더라고요.
그래서 치앙마이에 갔어요. 누구나 살면서 귀인이 한번쯤 찾아온다던데 정말 그때 태국에서 그런 분을 만났어요. 그곳의 요가원에서 만났던 선생님인데 그분께 요가 강사를 하면서 행복하냐고 여쭈어봤어요.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나의 삶은 여행이야. 나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태국을 여행하는 지금 요가 강사 자격증 딱 하나로 취업을 할 수 있었어. 이곳에 머무르다가 떠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다시 떠날 거야.” 당시 행복과 자유는 제게 하나의 키워드였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결정하게 됐어요.
와우, 그런 연결의 순간조차 뭔가 ‘요가적’인 것 같아요. 요가 경험이 많진 않지만 저도 처음에 요가를 할 때 느꼈거든요. ‘내가 지금까지 현재를 살고 있지 않았구나.’
맞아요. 그런 게 요가인 것 같아요. 현재에 잘 머무르게 해주는 것. 요가를 하면서 좋아진 건, 현재 행복하지 않은 것도 인정할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예전에 행복하지 않을 땐 그저 (머리를 감싸 쥐며)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지 않아…’ 이렇게 끝났다면 지금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래 맞아, 나 행복하지 않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언제든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죠.
요가원에서 제일 안타까운 경우가 하루 체험하고 떠나시는 분들, 한 달 끊어놓고 안 나오는 분들이에요. 요가원에서 몇 개월 더 지속해보라고 하는 게 상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조금 더 경험해보라는 권유거든요. 현재를 살 수 있도록요.
"그런 게 요가인 것 같아요. 현재에 잘 머무르게 해주는 것. (...)
여전히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언제든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죠."
미나 씨 소개란에서 ‘요가 문화 기획자’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요즘은 또 바꾸어서 ‘웰니스 크리에이터’로 부르고 있어요. ‘요가 문화 기획자’라고 하니까 한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요가라는 단어에 제가 너무 묶여 있는 것 같더라고요. ‘웰니스’는 웰빙, 피트니스 그리고 해피니스가 합쳐진 단어예요. 결국 ‘행복함’이죠.
웰니스 크리에이터로 다양한 일을 해보려고 해요. 물론 요가를 안내하는 게 가장 먼저이지만, 요가를 통해 연결되는 것들이 되게 많거든요. 요즘 도시재생이랑 요가를 엮어서 활동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의아해해요. ‘도시재생과 요가?’인 거죠. 그런데 도시를 재생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게 ‘도시 속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잖아요. 도시재생을 위해 무슨 건물을 보존하거나 크고 멋지게 건물을 짓는 일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온전하게 자기 삶을 꾸려야 도시를 바꿀 수 있는 힘도 생기지 않을까요.
스스로 자신을 잘 돌봐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도시 사람들도 넓은 시야로 도시 재생을 봐야 되는데 내 이익, 저들의 이익… 이렇게 이해관계로 접근하게 되니까 충돌하는 것 같아요. 도시를 바라볼 때에도 지금 도시에 사는 우리 삶의 상태를 우선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 흥성했던 과거나 아니면 보상받을 받을 미래에 얽매여 있어요. 현재가 없는 거죠.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요가를 도시재생과 연결시킨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결국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군요.
내 몸이나 마음이 힘들고 아프면 주변의 다른 상황은 잘 안 보이잖아요. 대안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우리 모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일이 환경적으로 좋다는 걸 알지만 그게 사실 나한테 좋다고 동감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으면, 지속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제 경우에는 조카가 그런 역할을 해요. 조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너무 안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나와 내 주변을 돌보다보면, 그게 사회로도 뻗어나가게 되는 것 아닐까요.
혹시 아직 선보이지 않은 새로운 프로젝트도 있나요?
‘리트릿’ 기획을 통해서 국내에 만연한 요가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은 게 있어요. 리트릿은 ‘하려던 일에서 한발 물러나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가다’라는 의미예요. 몸과 마음을 고요한 곳으로 옮겨놓고 내 안의 중심을 찾는 활동이죠.
외국에서 경험한 요가는 그냥 ‘안전한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핸드팬’이라는 악기를 사기도 했어요. 요가=어디서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춤을 추고 연주를 하면서 현재라는 시간 안에 온전히 머물러 있다면 그것도 요가다, 라고 생각한 거죠. 젠탱글이라는 그림도 그렸어요. 미술치료 요법에서 사용하는 건데, zen(선)+tangle(얽힌 것)의 합성어예요. 정해진 패턴에 하나하나씩 색칠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인데 재미있어요. 이런 것들처럼 과정 안에서 뭐든 요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녹여낸 게 리트릿 프로젝트예요. 이 기획을 통해서 제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활동을 더 기꺼이 재밌고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도시를 재생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게 '도시 속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잖아요. 도시재생을 위해 무슨 건물을 보존하거나 크고 멋지게 건물을 짓는 일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온전하게 자기 삶을 꾸려야 도시를 바꿀 수 있는 힘도 생기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일을 기획하고 또 실행하다가 지치지는 않나요?
제 프로젝트로 사람들이 변하는 걸 느낄 때가 있는데, 그분들의 보람을 이어받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은 성격이거든요. 한때는 그게 스트레스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여러 선택지를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어요. 사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불만도 잘 들여다보면 양면적이에요. 어떨 땐 일을 하는 게 싫을 수있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것처럼요.
원래 이렇게 ‘세상’이나 ‘사람’에 애정을 품어오셨나요?
자라온 환경이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공주에서 오래 살았는데 맨날 공산성 올라가서 혼자 소풍하고, 옛날 노래방에서 과일 얻어먹고. (웃음) 지금이라면 엄마들이 다니지 못하게 할 시내를 겁도 없이 다니고 그랬어요.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공동체적으로 자란 것 같아요. 부모님과 마을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제가 다시 그런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하겠다, 이렇게 정해놓은 게 있나요?
일은 삶에서 행복, 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무조건 꾸준히 하고는 싶은데… 아마 그때그때 제 상황의 흐름을 따라갈 것 같아요. 일을 꼭 끊이지 않게 해야 돼! 이런 마음도 이제는 많이 내려놓게 되었어요. 코로나 때 배운 게 많아요. (웃음)
모두에게 공평한 질문인데요, 먼저 지금 바라는 소박한 꿈이 있다면요?
소박한 꿈이라, 하루에 나를 위한 틈을 꾸준히 가져가기! 그리고 요즘은 밥을 잘 지어 먹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최근에 ‘먹기 명상’을 했거든요. 음식을 보고, 입에도 대보고, 냄새도 맡고, 소리도 들어보며 섭취 과정을 하나하나 온전히 감각해보는 거죠. 음식을 입에 넣고 멈추라는데, 순간 제 몸에서 입에 있는 음식을 바로 씹고 넘기려고 하는 욕구가 올라오는 거예요! (웃음)
명상이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원대한 꿈도 있나요?
원대하다기엔 조금 소박하게 들릴 것 같은데, 마을을 만드는 거예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내는 마을인 거죠.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줘서 내 아이도 맡길 수 있는… 그런데 이게 진짜 어렵긴 하겠지. 원대한 꿈 맞네요. (웃음)
만약 신이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면요.
나를 직면하고 알아차렸던 과정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는 것.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부(富)도 그렇고, 이 나라, 이 집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거잖아요. 요가가 아니더라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나 배움을 얻을 권리를 누릴 수조차 없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사회적인 정책과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근데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정치하라고 하더라고요. 정치를 하고 싶진 않거든요. (일동 웃음)
결국 미나 씨의 꿈은 사람들이 잘 사는 거네요.
그렇게 되어야 저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결국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행복해지기 위해선 먼저 행복과 사랑을 선물하라. 미나 씨 인터뷰의 결론은 그렇게 소박하게 집약되었다. 미나 씨가 말한 ‘틈’을 생각했다.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 나의 마음을 정확히 직시하도록 돕는 틈 그리고 그 틈으로 연결된 지금 그녀의 길들이 그려졌다.
그러다 문득 미나 씨가 실로 놀라운 유연함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앞에서 다리를 찢어 보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은 다리 찢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유연함이었다. 공주 공산성에서 태국 치앙마이 어느 공원까지 늘어나는, 요가라는 운동에서 건강한 삶까지, 나에서 낯선 타인까지, 조카에서 지구까지 뻗어 나가는 유연함.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잊지/잃지 않는 탄성(彈性)까지. 미나 씨는 그런 모양의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최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