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게을러서 늦었지만, 한참 전 일이다.
코로나로 도시는 꽤나 조용하지만, 농촌은 이제부터 바쁘다. 전염병이 와도 밭은 일궈야하는 모양이다.
앞집 할머니는 바로 집 앞에 밭에 나오면서 마스크를 끼셨다. 조금 귀여워서 웃음이 났는데,
들어줄 사람도 말할 사람도 없는데 입부터 막는 조심스러움에 조금 서글퍼졌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뒷마당을 갈았다. 오래 비어있던 곳이라 뒷마당에 죽은 나무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몽땅 태워버리고 불 내는 김에 고구마도 몇 개 집어넣고, 남은 재는 음식물찌꺼기 모아둔 것에 털어 넣었다. 다음 날은 흙을 뒤집었다. 일단 뒤집긴 했는데 응달이라 뭐가날까 하며 일단 그대로 두었다. 뒷마당에서 담 위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사이사이에 머위와 상사화가 났다. 리틀포레스트 일본편에서 본 머위된장을 해보고 싶었는데, 머위꽃이 피지 않아서 일단 다져서 된장에 버무려 먹고 있다.
앞마당은 흙밭이었는데, 급한대로 자갈을 깐 마당이다. 좀처럼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냥 두고 있다. 예쁘고 돈 안드는 마당에 대한 적절한 레퍼런스를 찾고 싶다. 텃밭을 만들 공간이 없어서 일단 담 밑에 돌을 걷어내었다. 빈집에 관리가 안되서 주인이 중간중간 계속 제초제를 뿌렸던 땅이라, 흙상태가 엉망인 것이 가장 걱정이 되었는데, 중간중간 개구리도 나오고 지렁이도 나와서 안심이 되었다. 담 밑은 예전에 닭장을 만들어두었던 곳이라 그런지 돌이나 시멘트, 벽돌 무더기들이 나왔다. 땅을 엎으면 엎을수록 답이 없었다. 겨우 여서일곱 이랑을 만들었는데 반나절이 지났다.
마당에는 허브를 좀 심을 요량이다. 인터넷으로 사둔 루꼴라와 바질 파종했다. 민트는 그냥 흩뿌려두었다. 조금 따뜻해지면 싹이 드는 것을 보고 꽃씨를 심을거다. 나흘정도 지났는데 벌써 루꼴라는 싹을 틔우는 것 같은데 아직 못 본 체 하고 있다. 조금 더 크면 애정을 두어야지.
서천은 음식물찌꺼기 봉투가 따로 없기도 하고, 버리기 귀찮기도해서 음식물찌거기를 모아두고 있다. 집에 마침 허리높이정도 되는 대야가 있어서 밑에 낙엽을 깔고 음식물을 모으고 가끔 효모를 뿌려준다. 근데 제대로 퇴비가 될 지는 모르겠다. 북면에서도 음식물찌꺼기통이 큰 불편함을 주지 않았으니까, 언젠간 썩겠거니... 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오늘도 재와 나뭇가지를 모아 쌓아두었다. 혼자살면서 이만큼의 음식물찌꺼기를 만들며 살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시골에 있을수록 쓰레기 엔트로피 감각이 더 가까이 와 닿는다. 아파트처럼 분리수거장에 해결해버리면 되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니까.. 무언가 쓰레기를 버리게 될 수록 더 의식하게 된다. 집을 공사할 때 본래 있었던 오래된 싱크대가 마당 한 켠에 바닥에 널부러져있어서 드디어 오늘 그걸 정리했다. mdf로 된 흔한 싱크대는데 오래되기도 하고 비를 맞고 밖에 노출되어있다보니 많이 부식(?)되어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톱밥으로 뭉쳐진 합판이 힘없이 부숴졌다. 마대자루에 옮겨 담아두긴 했지만, 쓰레기장으로 가는 것이 맞는건지 이 집에서 그냥 시간을 두고 썩게 기다리는 것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본인이 만들어낸 쓰레기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나마 시골에 있으니 에너지 순환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비닐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만들어내고 , 플라스틱이고 캔이고 모조리 태워버리거나 쌓아놓는 세대의(우리 부모님같은) 관행적인 농촌생활에서 벗어난 생활 실험을 하는 것이 새로운 세대들의 몫인 것 같다.
새로운 세대들의 몫이 생각난 김에 하나 더. 청년 여성으로 시골에 사는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살고 있던 일상과 만남과 배움들은 이리도 빠르게 변하는데, 농촌의 일상은 매순간이 시험이다. 퇴비를 사러 동네에 농약사에 갔는데 아저씨가 퇴비를 차에 실어주며 '근데 아가씨는 어디살아.' '동자북에 살아요'. '아 그려, 부모님이 누구야.' '혼자 이사왔어요.' '오잉@_@?' 하는 표정은 이제 익숙하다. 직접 퇴비를 옮기려고 하니까 만지며 큰일난다며 뒷자석에 박스까지 깔고 직접 옮겨주신다. 퇴비 사러 온 사람한테 큰일날 것이 뭐람... 농촌 젠틀맨들의 배려에 몸둘바 모르겠다. 그나마 혼자 이사온 것이 아니고 노랑달팽이 청년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빠르다. 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촌 같은 폐쇄적공동체에서는 개별자로 존재하기보다는 뭉뚱그린 그룹의 이미지로 살아남는 것이 조금 더 편안하다. 갈 길이 멀기도 하고, 안 가고 싶은 길이기도 해서 걱정이다.
채식주간을 일주일간 해보려고 엄마가 준 시래기를 삶았다. 집에서 나는 느끼하고 꿉꿉한 냄새가 시래기 삶는 냄새라는 걸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말린 시래기를 그냥 삶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한시간 가량 삶고, 잡내를 없애기 위해 마늘을 넣어 그대로 두고, 껍질을 사방으로 까고, 또 불려 보관해야하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요리를 하면 할 수록 그냥 '먹을 줄만 알았던' 사람인 것을 계속 배운다. 이번주 내내 시래기 된장국, 시래기지짐, 시래기 무침으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