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예상했던 모든 약속을 제껴둔 채 혜빈이랑 햇밀장에 갔다. 혜비니가 마르쉐에 가고 싶다고 오래 얘기했었는데, 이제야 겨우. 갑자기 논산 시골 한 폭판에 있는 부스와 브랜딩이 탐나는 공간에 갔다.
빵을 만들거나, 커피를 볶거나. 섬세한 일들을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다. 아름답다는 얘기다. 나는 좀처럼 그런 사람이 못되어서, 그저 동경하고 존경할뿐이다. 우리 혜빈이는 섬세한 빵을 만들고, 섬세한 요리를 지어내는 일을 잘한다. 언젠간 서울에서 마크로비오틱 강의를 듣고 북면 집에 와선 몇 시간 동안 만들어주었던 식탁을 기억한다. 꼭꼭 씹어먹을 수록 단맛이 돌던 현미밥, 달큰한 무볶음, 소금과 채소맛. 나는 흉내를 내보려고 해도 못하는 일, 닿을 수 없는 일. 그냥 고마운 일. 너는 그런 게 재능이라는 걸 잘 아나몰라.
논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주 원도심에 들렀다. 골목을 제대로 돌아본 건 처음이었는데, 공주 너무 재밌는 동네였잖아! 길담서원이 공주로 이사왔다는 인스타 피드를 보고 바로 찾아갔다. 질문을 만들어냈던 세계가 요기에 있었다니! 얼마나 반가운지. 밥이란, 일이란, 똥이란, 무무엇.. 시리즈를 보면서 얼마나 동생들에게, 친구들에게 말을 전했는지. 마음맑던 시절.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었던 책장이었으나 땀이 줄줄 났다. 조만간 해가 좀 누그러지면 다시 와서 이 동네 산책을 해야겠다. 공주로 이사를 와도 좋겠구나! 이런 생각이 줄줄 들던 좋은 시간.
혜빈이를 천안에 내려주고 집 앞에서 세차를 했다. 지난 7월 워케이션 이후로 처음..........강릉과 태안의 모래들을 훌훌 털어냈다. 세차장에서 나는 무능하고 씩씩하다. 무능해서 씩씩하려하고, 무능해서 돈을 많이 쓰게 된다. 세차의 세계는 왜 이리도 남자의 세계만 같은지, 아니 태어나서 세차를 배워본 적이 없는 걸! 집 청소는 쓱쓱 해내겠는데 세차는 하면 할수록 지친다. 나는 차를 사랑하는데, 차를 아끼는 법을 잘 몰라 답답하다.
세차를 하고 돌아가는데 백미러로 붉은 해가 일렁일렁. 바로 차를 돌려 해를 쫓아갔다. 무지무지무지무지무지 커다란 해가 도시의 산등성이로 아주 빠르게 넘어가고, 나는 부지런히 쫓다가 우회로가 있어 잠시 돌아가는 길에 그만 해를 잃어버렸다. 좁은 강변길을 따라 아무리 가도 해는 보이지 않고. 허탈해 돌아오는 길에 내가 본 무지무지무지붉은 해랑 상관없이 뽀송한 분홍 하늘. 동네 어귀에 오니 할머니 한 분이 멀리 부농하늘을 보고 있다. 할머니가 되도 하늘은 예쁘겠지? 빨간 해를 놓쳐버리다 그리워하는 할머니가 되겠지?
집에 오니 웅이가 밥을 차려두었다. 6개월 전인가 웅이가 달걀찜을 한 번 해준 적이 있는데, 웅이는 달걀찜도 장인정신으로 만들고.. 여튼 무척 맛있게 감탄하며 먹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웅이는 밥상을 차릴 때마다 달걀찜을 한다, 몇개월째. 나는 매번 감탄하며 먹는다. 웅이가 '밥을 해놨어', 하면 '오늘도 달걀찜이구나..'하며...헤헤
밥을 먹고 맥주 네 캔을 먹으며 산책. 옛날 노래를 들으며 가다 웅이가 비의 랩소리 뮤직비디오 얘기를 해줬다.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 장례식을 치르던 와중 유리관에 갇혀있었던 몸을 훔쳐오고 시체랑 같이 추억이 가득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어디 바닷가 땟목에 싣어 불태워버리고 자신도 죽는 슬픈 사랑이야기............
집에와서 찾아보니 과연 사실이었다. 오열하는 박용우 아저씨 시발.....ㅠㅠㅠㅠㅠㅠㅠ
내 사랑은 존나 아직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