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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Feb 14. 2023

불편하다면 그냥 넘어가지 마세요

민원의 가능성을 넓히는 김초롱

충남사회혁신센터에서 나사렛대학교 재활학과 학생인 초롱 씨를 만났다. 센터에서 기술 자문을 맡고 있기도 한 초롱 씨는 여러 기계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져보며 기능을 확인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초롱 씨는 센터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섬세하고 부드럽게 기계의 부품들을 매만졌다. 손으로 기능을 확인하다니, 어렵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꼭 필요할 일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초롱 씨는 준비해온 바구니에서 커피용품과 원두 등을 꺼냈다. 두 가지 원두의 차이와 각각의 장점을 설명하는 초롱 씨의 표정이 환했다. 하나는 산미가 강했고 하나는 부드러운 맛이었다. 초롱 씨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커피 정말 맛있네요. 커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원래 제 취미는 LP로 음악을 듣는 거였어요. 어느 날 좋은 턴테이블을 싸게 판매한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사장님이 이제는 LP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에 음악 말고 어떤 취미를 가져볼까 하다 생각난 게 커피였어요. 고등학교 때 체험학습으로 커피를 내렸던 게 생각이 났거든요. 그렇게 관심을 가졌는데 처음에는 에스프레소가 뭔지, 커피용품들은 또 뭐가 이리 많은지 모르는 거 투성이었어요. 그러다 어느새 보니 커피에 관련한 장비가 엄청 많아졌더라고요. 지금은 2년째 매일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고 있어요. 그러니까 커피 맛을 알고 찾다가 커피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턴테이블에서 다른 관심사를 찾다가 커피에 입문하게 된 거죠.



커피의 맛 말고도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나 봐요.

제가 이것저것 만지고 조립하는 걸 좋아해요. 커피용품 중에 그라인더라는 게 있는데 작년에 처음 구입하고 나서 열심히 사용하고 분해해서 청소하는 그런 게 굉장히 좋더라고요. 학교를 열심히 다닐 수 있는 것도 방학 때 신나게 운동하고 커피를 먹기 때문이에요. 공부에서 떠나서 집중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게 좋았어요. 친구들한테도 자주 얘기해요. 뭔가를 하다가 지치면 무기력해지기 쉬우니까 꼭 취미를 찾으라고요. 뭔가에 지쳤을 때 잠시 쉬면서 취미에 집중했다가 돌아오면 다시 행복해져요. 어떻게 보면 취미를 통해 스트레스나 좀 불편한 것들을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사렛대학교 재활학과에 재학중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병원에 취업하거나 좀 더 공부해서 국민체력센터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요. 필라테스나 요가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싶고요. 정말 재미있게 배웠거든요. 교수님도 너무 좋았고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보완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수업시간에 필라테스를 배우면서 처음에 옆으로 돌리라고 하는데 옆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저한테 옆은 왼쪽이 될 수도 있고 오른쪽이 될 수도 있잖아요. 참, 그래서 저는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말을 제일 싫어해요. 이쪽이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웃음)


필라테스에서 운동효과를 높이려면 자세를 명확하게 인지시켜야 해요. 그럴 때 시각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어요. 자세가 명확하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제가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필라테스를 교육한 적이 있는데, 자세나 동작을 정확히 표현해주고 인지시키니까 동작을 잘하더라고요. 지금까지는 그런 과정이 부족했던 거죠. 시각장애인들은 몸의 밸런스를 잡는 게 좀 어려운 편인데, 정확한 동작을 잡아주고 밸런스를 잡을 수 있도록 연습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직접 도구를 챙겨와 커피를 내려주는 김초롱씨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에 대해 지적하고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떤 절차를 거쳐야 되는지, 이런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오늘 자리는 초롱 씨를 혁신가로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혁신가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떠셨나요?

혁신이라는 말을 처음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한 건 교수님이 2020년도에 내준 과제를 통해서였어요. ‘네가 살면서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발견하면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민원을 넣어보라’는 과제였어요. 저는 시에서 운영하는 반다비체육관을 대상으로 삼았어요. 그 체육관에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데, 수영장에서 헬스장으로 가는 통로에 의자를 비롯해 꼭 필요하지 않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지나다니는 길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통로에 보행에 방해되는 것들이 있으니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었더니 처리하겠다는 답장이 왔어요. 민원을 넣었더니 치우더라고요. 거기서 처음 민원이 반영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후로 내가 불편함을 느꼈을 때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장애인지원센터나 나사렛대학 학생지원센터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할 기회를 많이 찾아주셨어요. 점자명함 같은 것도 자문을 하고 그랬어요. 아, 이런 일도 있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해달라는 인터뷰 요청이 있었어요. 그쪽에서 몇 가지 예시를 들고 왔는데, 시각장애인들에게 자료 지원이 잘 되고 있지 않다던가 보행이 불편하지 않느냐 라는 내용이었어요. 또 정보통신 보조기 보급사업이라고 신청하는 게 있었는데 그것도 대부분 잘 모르고 있지 않느냐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관심을 갖고 찾으면 알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시각장애인의 처지를 고민하겠다면서도 역시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거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해 사회적으로 시혜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초롱 씨의 활동 같은 것들이 그런 인식을 깨는 중요한 방법이겠죠.

저번에 한 시각장애인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기차를 타러 갔는데 탑승 지원을 하시는 분이 오셔서 ‘아, 시각 어딨냐’라고 말을 했대요. 그 말을 들은 게 너무 불편했는데 어디에도 말하질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불편을 느꼈으면 그거에 대해 민원을 넣으라고 말을 해줬어요. 이런 현실 때문에 답답함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에 대해 지적하고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떤 절차를 거쳐야 되는지, 이런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결국 불편함을 느낀 자신이 다 찾아봐여 하니까요. 앞서와 같은 경우, 코레일에 민원을 넣고, 거기서 안 되면 한국철도공사에 넣고, 또 거기서도 안 되면 국민신문고나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리면 돼요. 그런데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코레일에 전화해서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 마는 거죠. 사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편하고 무섭기도 해요. 민원사이트에 민원을 넣으라고 말을 하는데, 이게 법적 근거와 내용을 잘 정리하고 내야해서 쉽지 않긴 하거든요. 그런데 해야죠. 싸우기 싫으니까요. 민원을 받으면 3일 이내에 어떤 식으로든 처리를 해줘야 하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양한 종류의 민원을 넣어보신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내용의 민원이었나요?

앞에 이야기한 수영장 민원도 기억이 남고요, 또 작년에 충주 시립도서관에 보도블록 관련해 민원을 넣었던 거요. 도서관 4층에 장애인도서관이 있는데, 그 장애인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유도블록이 없는 거예요. 다른 데도 아니고 장애인도서관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어요. 2021년 시행령에 유도블록을 설치 내용이 나와 있다, 몇 조 몇 항에 따라서 설치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문제제기를 했더니 3일 만에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 뒤로 유도블록이 설치됐다고 들었어요. 장애인도서관에 관련한 일이었고, 근거를 찾는데 어려웠던 민원이라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민원을 넣는 게 확실하기도 하지만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일을 하게 되는 계기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이요. 내가 사회적으로 뭔가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이게 어딘가에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봐요. 그렇지만 근거를 찾지 않고 불편할 걸 해결해달라는 식이면 감정싸움이 되기 쉬워요. 귀찮지만 충분히 근거를 잘 찾아야 하는 거죠. 법이 너무 많고 길어서 어려운 일이에요. 민원 양식이 약간 넓은 시야가 필요한 서류인데 법 조항을 이 기계(텍스트를 점자로 변환해주는 기계)로 한 줄 한 줄 옮기는 게 하루 종일 투자해도 얼마 못 되거든요. 근거를 잘 갖춘 민원서를 쓰는 일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 때문에 누군가와 싸우고 싶지 않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원을 넣어요.



민원이라는 방법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 것 같아요.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엔 여러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시민들의 불편을 들어주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으니 그걸 활용하면 되는거죠. 적어도 시민의 입장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니깐요. 큰 어려움이나 해로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LP로 음악을 틀고, 한쪽에는 프라모델을 전시할 수 있는 그런 카페를 차리고 싶어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큰일 났네요,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테니까요.



"민원 양식이 약간 넓은 시야가 필요한 서류인데 법 조항을 기계(텍스트를 점자로 변환해주는)로 한 줄 한 줄 옮기는 게 하루 종일 투자해도 얼마 못 되거든요.  근거를 잘 갖춘 민원서를 쓰는 일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 때문에 누군가와 싸우고 싶지 않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원을 넣어요."




인터뷰 사이에 초롱 씨가 커피를 두 번 내려주었다. 인터뷰 말미에는 좋은 커피 원두와 그라인더를 추천 받기도 했다. 그 추천에 더해 그이의 밝은 에너지가 함께 전해졌다. 우리는 각자 겪는 불편과 장벽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물음이 들었다. 언젠가 기술과 시간이 해결해줄 것으로, 그렇게 막연히 미래로 유예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겪는 불편함과 문제에 꼭 최첨단의 놀라운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싸우기 싫어서 민원을 넣는다는 초롱 씨는 어떤 불편함도 미래로 유예하지 않았다. 그이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그것과 잘 맞서는 방법을 정하고 움직여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런 대결에서만 가능하겠지. 매일 조금씩이라도 불편함이 사라지는 세상을 바라는 초롱 씨의 마음을 응원한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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